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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앞바다. 지난해 416, 국민 전체를 충격 속에 빠뜨린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그 바다 속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홉 분의 실종자들. 그들은 오늘도 외치고 있다. ‘세월호에 아직 사람이 있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 광화문 광장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를 만났다.


다윤이 아빠 허흥환 씨



"유가족이 되고 싶다"

  다윤이 아빠는 유가족이 되고 싶다. 세상 천지에 유가족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냐만,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그렇다. 다만 뼛조각 하나라도 찾았으면. 다윤이가 어둡고 추운 물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하루 빨리 찾아서 밝고 좋은 곳에 보내주고 싶은 마음 뿐이다. 아빠로서 최소한의 도리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이 막막하다.


  “아흔이 다 된 내 어머니는 오십 넘은 아들과 통화를 하면 아직도 밥 먹었냐고, 아픈 데는 없냐고 묻는다. 그런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는 자식을 버리지 못한다. 속을 썩이면 혼을 낼 수야 있지만, 그 순간 뿐이다. 부모는 자신이 죽어야만 비로소 자식의 손을 놓을 수 있다. 하루빨리 다윤이를 찾아서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싶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친구들이 다윤이를 많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다음주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도 1. 하지만 아빠에게 그 시간은 의미가 없다. 시간은 흘러간다는데. 사계절이 한 차례 흘렀다는데. 낙엽이 지고, 눈 내리는 겨울 지나 또 봄이라는데. 아빠의 시계는 아직 지난해 416일에 머물러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팽목항으로 달려갔던 때와 현재가 변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

오히려 현재가 더 참담하다. 당시에는 진도 체육관에서 기다리다 구조작업이 진행되면 바지선으로 바로 달려갔다. 다윤이의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그런 희망도 사라졌다. 지난해 11, 수색 종료 후 5개월이 지났지만 공식적인 인양 발표는 없다. 아빠는 거리로 나섰다.


다윤이는…

  다윤이는 어려서 많이 아팠다.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를 했다. 아빠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여유도 없이 다윤이를 안고 병원으로 한 달음에 달려갔다. 병원에서는 열없는 경기라고 했다. 흔치 않은 병이라고. 서울대병원에 다니며 3년 동안 치료하고 나서는 괜찮아졌다. 그렇게 나았는가 싶었는데, 또 아팠다. 가게에서 놀다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히고 난 뒤, 쓰러진 것. 아빠는 그 날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다윤이의 온 몸이 굳어서 못 움직이더라. 5분정도 정신없이 아이의 팔 다리를 주물렀다이후 2년간 또 병원을 다녀야만 했다. 다른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아무 걱정 없이 뛰어놀 시기. 다윤이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아팠다. 그런 아픈 시절을 지나, 이제 겨우 건강해졌는데. 이제는 아프지 않고, 행복할 날들만 앞에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 떠난 다윤이가 아빠는 너무 아프다.


  아프면 빨리 성숙해진다고들 한다. 다윤이가 그랬다. 악의가 없고, 순한 아이. 말 한마디를 해도, 오랜 시간 생각하고 건네던 속 깊은 딸.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진솔하게 사람을 대할 줄 알았던 다윤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먼저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 아이였다. 방학이나 연휴면 보육원 같은 곳에 봉사를 많이 다녔다. 어린 애들을 좋아했고, 아픈 아이들을 먼저 살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다. 다윤이의 장래희망은 유치원 선생님. 다윤이에게 딱 어울리는 꿈이었다.


  다윤이는 부모 속을 썩인 적이 없었다. 엄마 아빠한테도 내가 속을 안 썩여서 너무 좋지?”라며 해맑게 웃던 아이. 어려서는 너무 많이 아파서, 속 썩일 시간도 없었다. 아빠는 속을 썩여도 좋으니 옆에만 있었으면한다.


집안 걱정에 가지 않으려 했던 수학여행

  마지막이 된 그 날의 수학여행. 다윤이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보름 전부터 출발하는 당일까지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을 생각하고, 아픈 엄마를 먼저 걱정했다. 다윤이 엄마는 뇌종양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다. 다윤이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에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아빠는 그런 다윤이가 안쓰러웠다. 평생에 다시 오지 않을 수학여행. 학교 친구들 전체가 갔다 오는데, 다윤이만 친구들과의 추억을 만들지 못할까봐.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한동안 그 이야기로 꽃을 피울건데, 다윤이가 친구들의 대화에 낄 수 없겠다는 걱정도 됐다. 아빠는 이 기회에 공부하느라 받은 스트레스도 풀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라고 다윤이를 설득했다. 착한 딸 다윤이는 이모가 마련해 준 돈으로 어렵게 수학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아빠는 가지 않겠다던 다윤이를 자신이 설득했다는 것이 아직도 한으로 남아있다.


  아빠는 다윤이와 함께 여행을 다니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 다윤이는 아팠고, 아빠는 바빴다. 직장 생활하느라 바빴던 아빠는 가족끼리 제대로 놀러 가본 적이 없었다. 사고 나기 한 해전 여름, 부산에 사는 이모네에 놀러 갔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 여행이었다. 마지막 가족여행일 줄 알았더라면,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걸, 더 많은 사진을 남겨 둘 걸. 아빠는 다윤이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아쉽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다윤이

  다윤이의 생일은 101. 그날도 아빠는 진도 체육관에서 다윤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많은 희생자들이 나온 시점, 그래도 아직 수색작업을 한참 열심히 할 때였다. 부모 생일이나 애들 생일에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단원고 황지현 양도 생일에 돌아왔다. 아빠도 생일엔 나오겠지조그마한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그 전날 태풍이 부는 바람에 바지선이 철수했다. 결국 다윤이 생일에는 수색작업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다윤이 생일에 팽목 등대를 찾아갔다. 손에는 조그마한 케익 하나를 들고.


  지난해 11, 실종자 가족들은 초주검이 됐다. 수색 중단. 날벼락을 맞은 것 같았다. 정부에서는 인양도 수색의 방법이라고 실종자 가족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인양은 결정되지 않고 있다. 아빠는 화가 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인양을 검토하겠다는 말을 했는데, 검토는 5개월 전에 시작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은 공식 발표를 하고 인양작업을 시작해야할 시점이다. 바다에서 작업을 하는 건 4~7월이 시기적으로 좋다고 한다. 8, 9월 되면 바람 불고 태풍 불고. 이런 상태로는 올해 안에 인양 작업을 시작이나 할지 모르겠다.”



"다윤이 뼈라도 품에 안아봤으면"

  엄마 아빠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9시 안산 분향소에서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교복 입은 학생들을 마주친다. 다윤이와 닮지 않은 아이들을 봐도 다윤이 얼굴이 떠오른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다 딸 같다.


  희생자 가족들을 거리로 내모는 현실이 아빠는 화가 난다. 지난 2일에는 삭발식에 참여했다. 아빠는 다윤이를 건질 수만 있다면 삭발이 아니라 더 한 것도 할 수 있다. 부부는 오전에는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오후에는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엄마 아빠를 버티게 하는 힘은 오로지 다윤이. 다윤이를 바닷속에서 꺼내주고 싶어서 버틴다. “쓰러지더라도 다윤이 꺼내고 나서 쓰러지겠다. 엄마로서,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니까라며 아빠는 건져낼 때까지 버티겠다 다짐한다.


  지나가던 시민들의 빈정대는 말을 들을 때, 이제 그만하라는 말을 들을 때 아빠는 화가 너무 난다. 원래 아빠는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분한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따져 묻는 성격이었다. 그런 걸 아는 엄마는 다른 사람 어떤 말을 해도, 뭐를 해도 찾을 때까지는 삼키라고. 가만히 있으라고신신당부 한다. 다윤이를 찾기 전까지 아빠는 어떤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삼킨다. 그 화가 아빠의 속을 까맣게 태워도, 그래서 건강이 더 나빠진대도 아빠는 삼킨다. 화낸다고 해결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 그리고 혹여 다른 사람한테 낸 화가 돌아와 다윤이를 찾는데 방해될까봐, 그것이 겁나서 아빠는 오늘도 참고 넘어간다.


  다윤이 아빠는 건강이 좋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리를 구부릴 수가 없을 정도. 허리도 아프고 왼쪽 다리도 아프다. 30분가량 스스로 왼쪽 다리를 주물러 주는 것이 다윤이 아빠가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 그러지 않으면 잠시 걷는 것조차 힘이 든다. 신경섬유종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다윤이 엄마는 참사 후 상태가 급속히 나빠져 뇌와 양쪽 귀에 종양이 생겼다. 이제 한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다. 의사는 병의 진행속도를 늦추려면 집에서 쉬어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엄마는 집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다윤이가 아직 차가운 바닷속에 있기 때문에.


  아빠의 지금 꿈은 단 하나다. 다윤이 뼈라도 만져보는 것. 다윤이의 유품은 이미 물 밖으로 나왔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 다윤이가 운동화를 사달라고 해서, 같이 고르러 갔다. 다윤이가 좋아하던 민트색 운동화. 그 운동화가 다윤이가 들고 간 여행 가방에 담겨 돌아왔다. 아직 한번도 신겨지지 않은 채. 언니에게 빌린 검은색 모자, 휴대전화, 엄마가 선물한 지갑도 가방에 들어있었다. 다윤이만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유품은 필요 없는데, 다윤이가 돌아와야 하는데아빠는 혼잣말을 한다.


  아빠는 다윤이 유품을 감식할 때 보고 이제껏 보지 않았다. 다윤이를 만날 때까지 보지 않으려 했는데, 그제 찾아온 취재진의 요청에 꺼내보였다. 유품을 보는 것이 너무 아파도, 지금은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해야 할 상황이니까.


  “정부는 못믿지만, 국민은 믿는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이니까. 세월호를 잊지 말아 달라. 아직 그 안에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기억해 달라. 또한 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를 인양해야 한다. 우리의 바람은 오직 그 것뿐이다. 딸아이를 제발 품으로 돌려주세요.” 다윤이 아빠의 호소는 오늘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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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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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고 희생자 가족들이 416시간 집중 농성을 선포하고 다시 광화문에서 풍찬노숙을 시작한 지도 보름이 넘었다. 봄이 왔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추운 날씨, 노숙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터.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행색도 초췌해져간다. 하지만 눈빛만은 힘을 잃지 않고 있다. “그렇게 힘은 들지 않다. 몸이 힘든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묻어있다.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광화문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김영오씨는 지난해 일어난 세월호 사고로 딸 유민이를 잃었다. 평소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아빠는 딸 유민이에게 미안해서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유민이가 그 어두운 물 속에서 죽어야만 했던 이유를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그것이 유민이를 위해 아빠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못난 아빠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국가에서 알아서 진상 조사를 할 줄 알았다. 지난해 516일 청와대 면담에서 받은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의 약속을 믿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만 지나갈 뿐이었다. ‘세월호 특별법은 여야간의 정쟁에 발목을 잡혀 진척이 없었다.


  유민아빠는 지난해 716, 단식 투쟁에 나섰다.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라는 요구였다. 유민 아빠는 당시엔 “3일 정도 단식하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유민아빠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갔고, 건강은 악화됐다. 치아가 약해졌다. 통증 때문에 양치질도 할 수 없게 됐다. 기억력도 상당히 나빠졌다. 또렷하던 기억들이 희미해졌다. 하지만 아빠는 왜 자신이 단식을 하고 있는지, 목적만은 잊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해 그 진실을 밝혀야 했다.


  각계에서 유민아빠의 건강을 걱정했다. 대신 단식 할테니 건강을 돌보라는 분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빠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유민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 아빠는 이미 한 번 죽었기 때문이다.


  살이 46킬로그램까지 빠졌다. 허리와 다리 관절이 아파 걷거나 서는 것이 힘들었다. 근육을 다 소진하다보니 앉아있으면 갈비뼈가 장기를 찔러 장기가 붓기도 했다. 그래서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펴고 있었다. 그런 몸으로 청와대로 향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것마저도 힘겨운 유민아빠를 경찰은 막아섰다. 단식 40일 째, 결국 유민아빠는 쓰러졌다.


  병원에서도 링거만 투약할 뿐, 단식을 이어갔다. 그래도 정부와 여당은 꿈쩍하지 않았다. 이 때 아빠는 대한민국은 정부가 국민을 국민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에게 국민은 그저 세금을 내는 기계일 뿐이다. 사람이 죽어도 그저 기계가 망가졌네, 할 사람들이라고 유민아빠는 느꼈다. 자신이 아니라 천 명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명의 존엄보다 돈의 가치가 우선인 사회, 이 사회를 바꾸기 전까지 아빠는 편히 죽을 수도 없었다. 46일 만에 유민아빠는 단식을 중단했다. 단식은 중단했지만, 진상규명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단식하던 때를 돌아보면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동조단식에 나선 수많은 국민들, 서명을 하고 광화문에 나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국민들, SNS에 응원의 글을 올려주는 분들까지. 그 중에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들도 있다.


  나이 많은 분들 중에는 보수층이 많다고 한다.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앉아있으면, 들릴 정도로 비아냥거리며 가시는 어른들도 있다. 하지만 마음 따뜻한 어른들도 많았다. 단식을 하고 있는데, 팔순 다 되신 분들이 오시더니 큰 절 하고는 눈물을 쏟았다. “유민아빠 미안해. 내가 사회를 잘못 만들어서 유민아빠가 굶고 이 무슨 고생인가.” 그 한마디에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그 말의 진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 눈시울을 붉혔다.


  어린 학생과 젊은이들이 찾아올 때면 더 힘이 났다. 어린 학생들이 벌써 특별법이 왜 중요한지 내용을 다 알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기특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서 유민아빠는 희망을 봤다.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거나 우울증으로 자살하려던 아이들이 편지를 써서 오기도 했다. ‘다시 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됐다’ ‘왜 살아야하는지 알겠다이런 편지를 많이 받았다. 그런 모든 성원이 유민아빠가 46일을 버티는 힘이 됐다. 유민아빠는 그런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46일이나 단식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그런가하면 마음 상하게 하는 일들도 벌어졌다. 일간베스트(일베) 회원들이 단식하는 유민아빠를 조롱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왔다. 이른바 폭식투쟁이었다. 부아가 치밀고 속이 뒤집어졌다. 하지만 단상도 설치해주고, 체하지 않게 물도 갖다 주라고 민우아빠한테 부탁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편히 식사할 수 있게 하자. 싸우지 말자. 저 사람들도 같은 나라에서 안전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니까.”


  당시 유민아빠를 더 힘들게 했던 것은 출처 없는 루머들과 그걸 퍼나르는 언론이었다. 유민아빠의 단식이 길어지고, 언론의 관심을 받자 인터넷에는 온갖 루머들이 나돌았다. 아픈 가족사를 들춰냈다. 마치 보상금을 많이 받아내려고 환장한 사람처럼 몰아갔다. 유민아빠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한주먹씩 빠졌다.


  언론은 사실을 확인하지도 않고, 루머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 그 보도로 루머는 확대재생산 되어갔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유민아빠는 언론을 믿지 않게 됐다. “기자들이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보고 방송을 내보내든 기사를 쓰든 해야 하는데, 알아보지 않는다며 언론사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또한 일부러 왜곡된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라 하더라도, 정곡을 찌르는 기사를 쓰는 기자가 없다. 겉으로 보이는 면만 보도한다. 그 속을 파헤치고, 물고 늘어지는 기자가 없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유민아빠 김영오씨


  지난해 11, 결국 세월호 특별법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진 반쪽짜리로 만들어졌다. 아빠는 반쪽짜리 특별법이라도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특별조사위원회가 출범되면, 제대로 진상조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바랐다. 세월호 사고의 진상을, 왜 딸 유민이가 죽어갔는지, 사회 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밝혀지길 기도했다. 하지만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해양수산부가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안을 입법 예고한 것.


  아빠는 다시 광화문 농성장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가족들은 지난달 30일부터 ‘416시간 집중 촛불 농성을 선언했다. 이번에도 유민아빠 자신의 건강은 생각하지 않는다. “건강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몸 망가지더라도 시행령 폐기하고, 특별법이 제대로 시행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지난 1, 정부는 배보상 기준을 발표했다. 언론이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4억이니 8억이니 떠들어 댔다. ‘왜 세월호 가족들이 다시 광화문으로 나왔는지’, ‘정부시행령안의 문제점은 무엇인지광화문 광장에서 외치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언론에서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은 유가족들이 돈을 더 받으려 생떼 쓰는 줄로만 안다. 그래서 임원진 11명이 삭발 결의했다. 임원진의 결단에 희생자 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참여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현재 70여명의 희생자 가족들이 삭발을 한 상황, 유민이 아빠도 당연히 앞장섰다.


  유민 아빠는 정부시행령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시행령은 모법인 세월호 특별법의 입법취지를 완전히 무력화 시킨다. 쓰레기 같은 시행령이다. 이 시행령대로라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출범시키지 않는게 낫다. 기획조정실에서 실장과 총괄담당, 조사1과장이 상임위원의 업무를 조정하게 되어있다. 결국은 파견공무원들을 통해 정부가 특조위를 조종하겠다는 말이다.”


  “해경에서 8, 해수부에서 9명의 공무원이 파견되는 것도 말이 안된다. 해경과 해수부는 수사를 받아야 할 대상이다. 해경과 해수부에 대해 갖가지 의혹들이 풀리지 않고 있다. 이들이 특조위에 참여하겠다는 것은 내가 죄를 지었는데, 스스로 수사를 하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들의 수사를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상조사 소위원회의 조사 범위를 정부가 조사해온 것을 검토하는 수준으로 축소 한 것도 문제다. 이렇게 할 것이면 왜 특별 조사를 하는가. 형식적으로 대충 덮고 가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수많은 의혹이 산적해있다. 이 의혹들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직접적인 재조사를 실시해야 하는데, 시행령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서는 포괄적인 재해와 재난에 대한 안전을 점검, 안전사회 건설을 추진하게 돼있다. 하지만 시행령에서는 선박과 해상으로만 축소했다. 재해 재난이 해상에서만 일어나는가, 말이 되지 않는 시행령이다라며 정부 시행령안의 폐기를 요구했다. 또한 수정이나 협상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한 주 앞으로 다가왔다예정대로였다면 추모행사 준비에 한창 바쁠 시기. 희생자 가족들은 시행령이 철회가 안 될 경우 1주기 행사 또한 취소하겠다는 마음이다. 유민아빠는 시행령 이대로 통과되면 진상 조사는 물건너 가는데, 추모행사를 하고 싶겠나. 1년이 지났는데,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유민이를 추모할 면목이 없는 것이다. 1주일 내에 진상을 밝힐 수는 없어도, 최소한 정부가 내놓은 쓰레기 시행령안을 폐기하고, 특조위의 원안대로 시행하겠다는 약속, 세월호 선체 인양을 하겠다는 약속 정도는 받아내야 유민이 볼 낯이 생긴다상징적으로 416시간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시행령안이 폐기될 때까지 사실상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것이라며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유민아빠는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가족들 가슴에 상처 주지 말라. 돈 받으려 여기 앉아 있는 것 아니다. 왜 내 자식이 죽었는지 밝혀달라고, 안전사회 건설하자고 앉아있는 거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아프니까 두 번 죽이지 말아 달라. 광화문으로 모여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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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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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국민모임)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난 건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였다. 지난 13일 국민모임 지도부가 세월호 동조농성에 들어갔다. 세월호 광장에서 만난 김세균 대표에게서 세월호 참사와 보궐선거, 진보정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국민모임 창당준비위원회 김세균 상임공동대표

 

국민모임이 세월호 동조농성에 들어갔다.

  국민모임과 세월호 문제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국민모임이 여기 세월호 광장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작년 8월 세월호 광장에 사회 각계인사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결집했다. 세월호 특별법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문제로 정치권이 한창 싸우던 때였다. 그때 참여했던 사회 각계인사들은 정부 여당에 대한 분노를 넘어 야당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박근혜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세월호 문제를 처리하려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 여당에 동조하는 야당에 대한 분노심이 생기면서 이런 야당을 해체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해 수많은 서민 대중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제대로 된 야당이 있다면 암울한 현실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여당의 제2중대 역할을 하고 있는 제1야당의 모습에서 그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다. 새로운 야당을 만들어야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그것을 계기로 국민모임이 만들어졌다.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시간만 흘렀을 뿐 지난 1년간 바뀐 것이 없다. 정부에서는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시행령안을 내놓았다. ·보상금 이야기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 했다. 지난 주말에는 유가족과 시민을 향해 캡사이신을 뿌리고, 연행했다. 이에 대한 분노로 국민모임이 농성에 나서게 됐다.


  국민모임은 세월호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세월호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바라는 국민들과 함께 행동할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우선 왜 침몰했느냐는 것이다. 선령제한 규제를 완화해 노령선박이 운행하게끔 허가, 과적 등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점을 확인하고 고쳐야한다.


  또한 승객들을 왜 구조하지 못했는가의 문제다. 왜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304명을 수장시킬 수밖에 없었는가, 자발적으로 나온 승객을 제외하고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했는가를 밝혀야한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야한다. 더 나아가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사회 체제를 만들었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권력과 자본의 유착관계를 근절시켜야한다. 인간의 생명과 안전보다 돈과 이윤을 중시하는 한국의 신자유주의 체제로부터의 결별을 할 수 있는 시스템 만들어야한다. 진상규명은 그 출발점이다.

 

세월호 참사 문제와 관련한 현안들이 있다.

  아직 실종자 9명이 바다 속에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뼈라도 가족 품에 돌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다.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유해라도 수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종자 수습을 위해서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야한다. 진상규명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인양을 해서 참사 원인데 대한 철저한 검사를 해야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정부시행령이다. 세월호 특별법은 처음 특별법 만들 때부터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세월호 진상규명의 핵심은 독립성에 있다. 해수부·해경을 비롯한 정부 부처가 잠재적인 조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로부터의 독립된 기관인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의 반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


  부족한 세월호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특조위가 열심히 조사하면 일정부분 진상이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말도 안 되는 시행령안을 발표해 진상조사를 막으려 하고 있다. 진실을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정부는 추모주간을 넘기고 보궐선거를 지나가면 이 문제가 덮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보궐선거까지 넘어가면 전 국민적 관심을 끌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번 4월동안 역량을 최대한으로 쏟아 부어 정부가 진상 규명을 안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보궐선거가 한창이다. 국민모임에서는 정동영 전 의원을 후보로 내세웠다.

  국민모임은 아직 제대로 갖춰진 정당이 아니다. 창당과정이다 보니 제대로 잡혀있는 게 없다. 창당준비와 함께 정동영 후보의 보궐선거 운동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주가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분수령이라고 판단해 국민모임을 양분해서 동조농성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국민모임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시켜 세월호 문제 해결과 보궐선거 승리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신당 창당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우선 창당준비 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창당준비 위원회를 만들면 6개월 이내에 당을 만들어야 한다. 아직 창당이 되지는 않았지만 국민모임 내부 논의를 거쳐 정동영 후보를 출마시켰다. 정동영 후보가 당선된다면, 국회의원 의석 수 하나 얻는 의미 아니고 한국 정계 전체를 바꾸는 태풍의 눈이 되어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본다. 힘없고 가난한 서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고, 결집한다면 큰 힘으로 조직될 수 있다. 이 힘을 바탕으로 내년 총선에서도 큰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완전한 새로운 노동자 서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이 집권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국민모임의 희망사항이자 목표이다.


  가능 불가능 여부를 떠나 어쨌든 현재의 정치 구도를 바꿔야한다. 현재 야당으로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본다. 설령 정권교체에 성공하고, 집권한다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 현재 절망에 빠져있는 대중의 눈물 고통과 동떨어진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야당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높아지고 있다. 이 국민적 열망이 새로운 야당, 대안야당의 탄생의 조건이 되고 있다.

 

정동영 후보가 낙선하게 된다면.

  물론 이번 보궐선거에서 정동영 후보가 낙선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안야당을 향한 국민의 열망은 식지 않을 것이다. 국민모임의 동력은 이런 국민들의 열망이다. 정동영 후보가 낙선하더라도 국민모임은 지금까지 준비해왔던대로 차근차근 준비해서 더 좋은 성과를 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정의당·노동당 후보가 사퇴하며 사실상 진보통합을 했다.

  이동영 정의당 예비후보와 나경채 노동당 예비후보가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두 후보가 큰 결단을 내려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국민모임,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4자연대 제안했다. 후보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우리 측의 본의 아닌 불찰로 연대의 신뢰가 깨져서 4자연대는 현재 무산됐다. 국민모임과 노동당, 노동정치연대는 연대해서 이번 보궐선거에 대응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정의당과도 서로 신뢰를 회복하고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민 모임이 신뢰 회복을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

 

국민모임과 다른 진보정당들과의 차별점이 무엇인가.

  국민모임은 진보결집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정의당·노동당 등 기존 진보정당들을 배제하고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 보다는 창당작업을 하면서 다른 진보정당들과 합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내년 총선 이전에는 하나의 정당으로 힘을 합쳐서 정치현실을 바꾸길 바란다.

 

통합진보당을 창당할 때 진보 진영을 통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열했다.

  지난번 진보 통합의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중심이 된 통합이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에서 분리된 평등파가 만든 정당이었다. 그런 면에서 통합진보당은 소위 자주파와 평등파의 재결합이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진보정치운동의 한 사이클이 끝난 것이라고 분석한다. 1987년 이후 성장했던 민주·노동 운동 등 대중적 진보운동의 성장에 힘입어 성장해왔던 진보정치운동의 순환이 끝난 것이다. 진보정치 운동은 이제 다시 출발선에 섰다. 이전의 진보정치운동은 자주파가 중심이 된 진보운동이었다. 헌법재판소에서 정당해산심판을 통해 통진당을 해산한 것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해산 판결을 하기 전에 통진당과 정의당이 분당되는 것을 목격하게 됐다. 2년 전 소위 통진당 분당 사태를 보면서 자주파 중심의 진보운동은 종결이 났다고 판단하게 됐다.


  이제는 비자주파 중심의 새로운 진보운동을 구축해야할 시기다. 국민모임은 새로운 진보정치운동을 주도해서 만들어 나가고 있다. 국민모임운동과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정의당 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들이 함께 힘을 뭉칠 때다.

  진보진영이란 이름으로 묶을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의당 노동당과 노동정치연대 각각 다양성이 있다. 이 다양성을 잘 조정하면서 진보의 대의 속에서 뭉칠 수 있도록 잘 만들어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조정에 실패하면 분열되는 길로 가는 가능성도 있다. 분명한 것은 분열하면 공멸한다는 점이다.


  발전하려면 차이를 극복해야한다. 차이점은 내부에서 잘 작동하면 오히려 조직을 탄력적으로 발전시키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긴장과 갈등요소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 요소들 때문에 활발한 토론이 일어난다면 진보진영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를 동력으로 삼으면 진보정치 운동이 성공할 것이고 아니면 실패할 것이다.


  물론 자주파를 완전히 배제하고 진보정치를 논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평가도 이루어져야 한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일흔이다.

  아직 농성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다. 나 같은 사람 역할도 필요한 것 같다. 마중물 역할을 하려고 한다. 펌프로 물을 올릴 때 그냥 펌프질만 한다고 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위에서 물을 부어줘야 올라온다. 새로운 진보정치 주체들이 설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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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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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장애인 30여명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故송국현씨의 1주기 추모제를 겸해 열렸다. 송국현씨는 지난해 오늘 화재로 사망했다.


지난 17일은 故송국현 씨가 사망한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420공투단)은 1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등급제 폐지를 외쳤다. 이 날은 故 송국현 씨의 1주기. 420공투단은 “故 송국현 씨는 장애등급제의 희생자”라며 “억울한 죽음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을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정명호 씨는 “송국현 씨는 27년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생활했다. 2013년 지역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며 자립생활을 할 꿈을 안고 거주시설을 나왔다. 혼자서는 불편한 점이 많았기에 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으려 했지만, 장애등급 3급인 그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13일 자립생활체험홈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지난해 4월 17일 결국 숨졌다”고 전했다.


  정명호 씨는 말을 할 수 없어 태블릿 피씨를 통해 소통한다. 그마저도 손이 불편해 머리에 연결한 펜을 이용해 한 자 한 자 힘겹게 써내려갔다. 비장애인의 경우 1분이면 말할 수 있는 내용을 10분이 넘게 걸려 전달했다. 하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 자신의 뜻을 전하는제 문제가 없었다.


정명호씨는 태블릿 피씨를 이용해 타인과 소통한다. 속도는 조금 늦지만 소통하는데 문제는 없다.


  노들장애인야학 한명희 교사는 “장애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것은 겉으로 보기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서비스를 받는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송국현 씨의 사망사건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라고 말했다. 또한 “서비스를 받으려면 자신의 장애 정도를 증명해야한다. 이것은 장애인에게 엄청난 모욕감을 준다”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했다.


  420공투단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무총리 공관으로 이동해 요구안을 전달할 예정이었지만 경찰 병력이 이들을 막아섰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겠다고 요구했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국무총리실 민정민원 비서관실에서 나와 요구안만을 전달 받았다. 이들의 요구안은 ▲장애등급제 폐지 및 대안 논의를 위한 국무총리 산하 범정부기구 설치 ▲장애종합판정체계 재논의이다. 이들은 오는 19일까지 국무총리실의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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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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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남미순방을 떠났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에 초대했지만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초대장이 잘못 전달된 것일까. 팽목항에서 알맹이 없는 담화를 7분간 진행하고 남미로 향했다. 지난해 단 한명도 구조 하지 못하고 304명을 수장시킨 국가의 리더는 그렇게 또 유가족들과의 대화를 회피했다.


광화문 누각 건너편에서는 시민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경찰은 유가족이 보이지 않도록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웠다.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해야하는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돼 곤혹스러운 상태다.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경찰은 1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골목 골목을 막아섰다. 100여대의 경찰 버스로 차벽을 쳤다.


  시민들은 2008년 FTA 반대집회 때 등장한 ‘명박산성’을 떠올렸다. 경찰은 당시보다도 더 가혹하게 시민들을 막아섰다. 당시에는 세종대왕상 앞의 광장까지는 시민들의 진입을 허락한데 반해 광장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시민들은 세월호 광장에서 분향도 할 수 없게 됐다. 신원확인 후 인근주민들에게는 길을 비켜주던 경찰이 이번에는 얄짤없다. 그저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퇴근길이 경찰에 의해 봉쇄된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터져나왔다. 경찰은 유가족과 행진 참가자들에게 캡사이신을 뿌렸다. 10여명은 연행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광화문 누각 앞까지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경찰은 병력과 버스를 이용해 유가족들을 감금했다. 유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갔다. 광화문 누각 앞은 전기도 물도 화장실도 없다. 기본적인 생활도 유지할 수 없는 곳에 유가족들은 고립되었다. 416연대는 “자식 잃은 부모에게 국가가 이런 모욕까지 안 깁니다”라며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파란색 플라스틱 상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 아래로 액체가 흘러있다. 유가족들이 최소한의 부위만 가린 채 소변을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416연대 페이스북

  17일 저녁, 경찰들은 횡단보도를 지키고 섰다. 횡단보도를 건너겠다는 시민들에게는 우회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취재기자라고 신분을 밝혀도 통제를 당했다. 경찰 간부 하나는 “지금은 곤란하니 20분 후에 오라”고 말했다. 다시 갔을 때 그 간부는 없었고, “건널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17일 밤 경찰이 횡단보도를 막고 있다.


  그때 건너편에서 유가족들이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화장실 통제는 어느 정도 풀렸다고 했다. 재욱이 엄마는 “도시락은 전달 돼 식사는 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우리나라 인권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유가족들을 이렇게 대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재욱이 엄마는 “낮에는 잠깐 취재 허락했었는데, 다시 막나보네. 우리 사이에 끼어서 한번 들어가보자"라고 제안했다. 유가족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기로 했다. 영석이 엄마는 “경찰이 막아서면 그냥 돌아가. 괜히 마찰 생기면 우리 엄마들도 못들어가게 할지 몰라”라며 신신당부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냥 돌아섰다. 길 건너에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작부터 꾸준히 지적받고 있지만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해외 순방을 떠났다. 세금을 들여 마련한 경찰버스로 차벽을 치고,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의경이란 이름의 저임금 경찰 병력으로 뽑아 국민과 반목하는데 낭비하고 있다. 유가족에게서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하고, 누가 볼 까 접근까지 막고 있다. 언제까지 피해서 해결될 문제는 없다. 시민들은 오늘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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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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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12월, 엄동설한의 추위에 지상 70미터의 굴뚝에 올라간 사람이 있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이다. 그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지난달 23일 내려오기까지 101일을 굴뚝에서 버텨냈다. 그는 굴뚝에서 내려온 뒤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창근 실장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굴뚝에서 내려온 지 20여일 쯤 지났다 건강은 어떤가.

  이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처음엔 계속 어지럽고 몸이 무거웠다. 병원에서 치료 잘 받고, 지난주 금요일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서 쉬다보니 많이 건강해졌다. 굴뚝 위에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는데,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100여 일 만에 가족들과 만났다.

  그저 좋다. 굴뚝 위에서는 영상통화를 하는 중에도 그리웠다. 아들과 아내 손을 잡을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 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있다.


농성 중 어떤 생각을 했나.

  처음엔 ‘나의 약함’을 인정하게 됐다. 그동안 여길 못 올라와서 동료들이 죽었나 싶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나면서는 세상이 만만하더라. 세상의 허점, 모순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가 많이 났다. 80일을 넘기면서는 오히려 좀 차분해졌다.


농성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굴뚝에 올라갈 땐 한겨울이었다. 100일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봄이 왔다고는 하는데, 굴뚝 위는 여전히 춥다. 추위와의 싸움이 힘겨웠다.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불면 굴뚝이 흔들려서 불안하고 괴로웠다.


굴뚝 위에 오른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오른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출처 = 이창근 실장 페이스북


내려올 결심을 한 계기는.

  이유일 사장에서 최종식 사장으로 경영진이 바뀌게 됐다. 해고자들이 새 경영진과 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굴뚝을 지키는 것이 새로운 경영진에 부담을 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교섭 과정에서 혹여나 굴뚝농성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이 선임되는 주주총회가 지난달 24일에 있었다. 그래서 23일 내려오게 됐다.

 

내려온 심경을 말해달라.

  다른 건 모르겠고, 쌍용차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만을 바란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조만간 쌍용차 현장에 복귀할 생각이다.


내려올 때 신임 사장 믿고 내려온다고 했다. 그 믿음은 아직 유효한가.

  유효하다. 교섭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신뢰다. 상대에 대한 신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를 신뢰하지 않고 교섭을 진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꾸 의심하면 자신만 괴로워질 뿐이다. 최종식 신임 사장을 비롯한 중역 그리고 사무관리직, 현장직 등 옛 동료들을 믿는다. 희망과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다만 교섭 진행내용을 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26명의 희생자 문제를 포함해서 노사 협의가 형식적 측면만 부각되는 것 같다. 내용적 측면에서의 진전이 부족하다.


복직자 명단에서 스스로를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년이란 긴 투쟁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이란 시간을 잃었다. 이 시간은 복직한다고 해서 보상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고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던져버리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쌍용차 해고자가 아닌 심리치유센터 ‘와락’ 기획팀장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쌍용차 문제에 도움이 될 땐 도움을 주고, 빠져야 할 땐 빠지려 했다.

  하지만 무위로 돌아갈 것 같다. 복직자 명단 삭제에 대한 전권은 지부장에게 있고, 아직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까지도 김 지부장에게 설득 전화가 왔다. 


좋은 결말 있기를 기도하겠다. 건강관리 잘하고 다시 굴뚝에 오르는 일이 없기를 바래본다.

  늘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 힘이 돼준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하단 말씀 꼭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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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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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역,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주요 관문. 갓 상경한 시골 촌부들의 입을 다물지 못 하게하는 화려한 빌딩들. 그 화려함의 뒤편, 서울에서 가장 어두운 곳 동자동 쪽방촌이 있다. 쪽방촌은 한국 전쟁 후 생긴 주거형태. 여인숙 주인들이 손님을 더 받기 위해 방을 여러 개로 쪼개 장사를 한 것이 그 유래다. 동자동은 서울시의 쪽방촌 중 가장 큰 규모. 거주민이 1100명이 넘는다. 목련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 동자동 쪽방촌에 찾아가봤다.


  동자동 주민들을 만난 건 서울시청 앞. 한 손에 피켓을 든 동자동 주민 20여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피켓을 들어본 경험이 없다”는 수줍은 고백처럼 그들의 모습은 어색했다. 변변한 구호 한 번 외치지 않고, 묵묵히 피켓을 들고 앉아있을 뿐. 손에 든 피켓만 아니었더라면 영락없이 동네 마실 나온 어르신들이다. 덩치가 큰 오세영(남.61) 씨가 앉은 간이의자가 휘청하더니 이내 오 씨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뒹굴었다. 그 모습을 본 김 모 씨는 “의자가 부서졌다”며 핀잔을 준다. 오 씨는 “사람이 다치지 않았는지 먼저 묻는 게 도리 아니냐”며 툴툴댄다. 김씨는 “돌바닥이 부서지진 않았는지 봐야겠다”며 너스레를 떤다. 지켜보는 경찰들도 크게 경계하지 않는 눈치다.


6일 동자구 주민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종착역이라 생각했는데…

  이날 시청 앞에 모인 이들은 용산구 동자동 9-XX번지에 사는 주민들. 44년 된 이 건물은 동자동 쪽방촌 중에서도 가장 월세가 싼 편에 속한다. 그런 이유로 이곳 주민들 대부분이 이 건물에서만 10년 이상씩 살았다. 그들은 동자동이 인생의 종착역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 모 씨는 “이렇게 살다가 망우리나 벽제로 가겠거니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2월 이곳에 퇴거 공고문이 나붙었다. 건물의 개보수와 안전보강공사가 이유라고 했다. 주민들은 비상대책위를 세우고 합의를 통해 해결하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건물주는 지난 3월, ‘아시바’(공사를 위해 건물 외벽에 설치하는 철골 구조물) 설치를 강행했고, 주민들과의 마찰이 빚어지면서 중단된 상황. 건물주는 조만간 추가 설치를 강행하겠다는 입장. 현재 주민들의 월세 두 달치도 받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월세 두 달치 해봤자 30만원인데, 그 돈으로 어딜 갈 수 있겠나. 동자동 일대의 다른 쪽방에서도 우리를 받아줄 여력이 없다”고 했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최 모 씨는 “여기서 밀려나면 서울역에서 노숙을 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데 주거지가 없으면 기초생활 수급비도 받을 수 없다”며 사정을 얘기했다.

  이들의 요구는 “그저 지금처럼 살게 해 달라”는 것. 하지만 말처럼 간단하게 해결되기 힘든 실정이다. 서울시가 중재에 나서긴 했지만, 개인의 사유재산이라 적극적인 개입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주민 대표들과의 면담에서 “서울시에서 일정한 조건 하에 있는 주거취약계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은 많이 했다. 지난 임기에 8만호, 이번 임기때 8만호 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이 방에 몸만 누인다고 되는 게 아니고, 자신의 삶과 연결된 생태계가 있어야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며 건물주와의 중재를 통해 동자동 공동체가 이어질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끝내고 나온 이들의 면담 결과를 듣는 주민들의 표정이 밝지 않다. 사실상 해결된 것은 없기 때문. 당장 공사가 단행되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 앞선다. 상심한 주민들은 터덜터덜 동자동으로 걸어서 돌아갔다. 주민들과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까지 동행했다. 동자동 9-XX번지 앞에 나와 있던 주민들이 걱정되는 얼굴로 맞이한다. 결과를 전해들은 주민들의 표정이 어둡다. 주민들이 집을 비운 사이 우체부가 다녀갔다. 건물주가 내용증명을 보내온 것.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건물주의 의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용증명을 받고 보니 더 착잡해진다.



"누군가 내 죽음 슬퍼해주면…"

  뇌병변 장애 4급 판정을 받은 오세영(61) 씨는 요즘 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퇴거 공고장이 붙은 이후 계속되는 불안증세 때문이다. 그는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든다. 고아원에서 유년을 보낸 그는 이곳 동자동을 고향이라 생각한다. 

  “고아원에서 나와 16세부터 혼자 살아왔다. 이곳저곳 떠돌다 정착한 곳이 동자동 쪽방촌이다. 9-XX번지에 산지도 벌써 15년”이라며 남은 시간도 이곳에서 보내길 원한다고 했다. “혼자 살다보니 외롭다.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도 내가 죽었을 때 다만 한두 사람이라도 소주 한 잔 올리며 슬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다른 곳으로 간다면 어찌될지 모를 일 아니냐.”

  그는 “지난겨울 동자동에서 네 사람이 죽었다. 그 중 셋은 무연고다. 한 달간 보관되다 화장터 근처에 뿌려졌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마을의 가운데 위치한 조그마한 공원에서 합동 장례식을 한 차례 치른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동자희망나눔센터


  지난해에는 ‘동자동 희망나눔센터’가 KT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주민을 위해 빨래방과 공동샤워시설을 개방하고, 자활프로그램도 꾸준히 운영하고 있다. 한 카페프렌차이즈업체의 지원을 받아 운영 중인 1층 마을 카페에서는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1000원에 커피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에겐 그마저도 사치다. 담뱃값마저 올라 가뜩이나 빡빡한 살림이 더 어렵다. 희망나눔센터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전찬우(남.50) 씨는 “담뱃값이 올라 올 초에 금연을 결심했다. 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금연클리닉에도 가봤다. 6주간 금연 패치를 지원받았는데, 6주 이후에는 지원이 되지 않더라. 이후 다시 피게 됐다”고 말했다.

  전씨가 동자동 쪽방촌으로 오게 된 건 1999년. 1997년 IMF 한파로 운영하던 인쇄공장이 문을 닫을 상황에 처했다. 친척들에게 돈을 융통하려했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그렇게 떠돌다 전씨가 찾은 곳은 남산. 죽기 위해서였다. 전 아내와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려 했다. 자해를 해 팔뚝에서 피를 흘리고 있던 그를 지나가던 가톨릭 신부가 데리고 내려왔고, 동자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세상은 쪽방과 쪽방 아닌 곳으로  

  전씨는 쪽방촌의 현실을 보여주겠다며 본인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가 사는 곳은 9-XX번지에서 불과 5분 정도 떨어진 쪽방. 가는 내내 그는 “이쪽은 쪽방이고, 이쪽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어쩌면 그에게 세상은 쪽방과 아닌 곳으로 나뉘어있는 줄도 모르겠다. 그의 안내에 따라 들어간 건물의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건장한 성인 남성 두 명이 마주하게 되면 누군가는 길을 비켜줘야 할 정도. 좁은 복도를 사이로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의 방은 10호. 붉은 가림막을 걷고 들어가자 살림이 한 눈에 보였다. 옷가지들이 한켠에 수북이 쌓여있고, 바닥에는 이불이 깔려있다. 곰돌이 인형이 두 개 있는데, 순이와 돌이란다. 순이와 돌이는 쿠션이자 전씨의 말동무.

  한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TV, 냉장고가 들어가 있다. 그런 이유로 월세는 20만원이 넘는다. 이 동네 쪽방 중에서 제법 비싼 편이다. 전씨는 “없는 살림에라도 손님 대접은 해야 한다”며 굳이 매실주스를 권했다. 




  전씨에게서 쪽방촌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쪽방촌에서는 취사에 어려움이 많다. 휴대용 버너를 이용해 통로에서 취사를 한다. 겨울에는 춥다보니 방 안에서 취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간이 협소해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역의 무료급식소를 찾아가 해결하기도 하고, 동자동 사랑방에서 500원을 주고 사먹기도 한다. 싼 값에 먹지만 김치·밥·국 세 가지만 나오는 식단이 맛있을 리 없다.

  화재 위험 때문에 개인 난방기기를 사용할 수도 없다. 정해진 시간동안 전기패널을 통해 공동으로 난방이 된다. 난방시간은 보통 밤 10시에서 아침 6시까지 정도. 조금의 온기나마 오래 잡아두기 위해 겨울철엔 이불을 개지 않는 것이 쪽방촌 생활의 지혜.

  쪽방촌에는 40여만원씩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들, 노인연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이 산다.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아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 경제적 취약계층인 이들에겐 실질적 도움이 절실하다. 일용직 잡부로나마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그마저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전씨는 “이 동네에 건강한 사람들은 없다고 보면 된다. 일을 나가는 날보다 못가는 날이 더 많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전 씨는 병원에 다녀왔다. 척추와 허리 쪽이 많이 아프다. 전씨는 인터뷰 중 약을 먹을 시간이라며 약봉투에서 약을 주섬주섬 꺼냈다. 한 번 먹는 양이 열다섯 알은 넘어 보인다. “배고플 때 먹는다”며 웃음을 짓는다. “저녁에 먹는 약은 더 많다”고 했다. 달력에는 다음 병원 예약 날짜가 적혀있다.

 

언제쯤 동자동에도 봄바람이

  전씨는 9-XX번지의 상황이 남 일 같지가 않다. 언제 나가랄지 모르는 건 이곳도 마찬가지. 9-XX번지 문제가 건물주의 의사대로 진행이 된다면 그 다음엔 어느 곳이 될 줄 모른다는 것이 동자동 주민들의 공통적인 불안.

그는 “시에서는 서울 외곽의 임대주택으로 가라고 한다. 모두 뿔뿔이 흩어지라는 말이다. 그래도 이 동네에 함께 살며 부족하나마 이웃의 정을 가지고 살았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쉽지 않다. 이미 임대주택으로 이사를 갔다가 돌아온 주민들도 있다”고 했다.
작년에 돌아온 주민 한 명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단다. 다행히 미수에 그쳐 지금은 정신병원에서 요양 중이다.



  쪽방촌 낡은 건물 앞에는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그 모습이 이질적이다. 서울역 쪽으로 내려가는데 바람이 스치고 지난다. 온기를 품은 봄바람이. 언젠가는 이곳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에게도 봄바람 부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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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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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인양 검토 발언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들과 국민대책위는 못 믿겠다는 입장이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인양의 기술적 검토는 이미 끝났다. 그런데 기술적 검토를 한 뒤 결정하겠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유가족들이 박 대통령의 발언을 반기고 있다는 보도를 봤는데, 아무 발언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말을 침소봉대한 것이라며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래군 416일의약속국민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믿지 않는다. 세월호 선체 인양의 기술적 검토가 끝났다는 사실을 유가족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인양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지자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벌인 쇼라고 평가 절하했다. 또한 우는 아이 달래듯 하는 정부의 태도에 유가족들이 분개하고 있다. 시행령안의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 문제를 결정할 때까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기술적 검토를 한 뒤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이야기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백 번 해오던 이야기다.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 나온 발언이라고 특별히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할 때라며 정부의 세월호 선체 인양 결정을 촉구했다.


  한편 이완구 국무총리는 7일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에 문제가 있다면 유족의 입장을 반영하겠다. 유가족의 입장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이번주 유가족을 만나겠다. 전향적으로 모든 문제를 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박주민 사무차장은 수정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문구 몇 개 고치자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고, 본질을 흐리는 발언이다. 폐기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7일 일부를 제외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농성을 쉬었다. 지난달 30일부터 계속된 강행군에 심신이 지친 것. 특히 지난 4일과 5일 안산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의 도보행진과 6일 세종시 해수부 앞에서의 농성은 유가족들을 지치게 했다. 끝날 기약이 없는 농성을 위해 7일 하루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


  4.16 촛불 문화제는 계속 이어졌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5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 세월호 특위 비상임위원인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가 강연을 했다. 김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감사해야할 대상이다.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숭고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월호 진상조사는 단순히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밝혀 유가족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일이 아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200억원이 아니라 더 큰 비용을 치르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교수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 파견된 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이 조사를 조정하는 업무를 맡게 되는데, 사실상 조정이 아닌 조종을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 시행령안대로 조사가 이뤄진다면, 특위 위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른바 세금도둑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이완구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는 문제점들을 다 고치면 이미 지난 2월 세월호 조사특위에서 제출한 안과 똑같을 것이라며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특조위 원안 채택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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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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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의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세월호 1주기, 추모를 해야 할 기간에 농성을 하게끔 만드는 정부가 유가족들은 이해되지 않는다. 이번엔 2학년 3김도언 학생의 어머니를 만나봤다.


4월 3일. 광화문 광장 퍼포먼스

 


우리 도언이는

  엄마가 기억하는 도언이는 구김 없고, 정의감 있는 아이였다. 집에서는 동글동글 도언이라고 불렀다.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동그란 안경을 썼기 때문. 성격도 동글동글해서 친구도 많았다. 바른생활부 활동도 하고, 연극도 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던 아이였다. 1학년 때는 연극을 해서 금상을 받아오기도 했다. 전교에서 도언이를 모르는 친구들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피아노 연주도 잘 하고, 춤도 잘 추고, 사물놀이도 잘 하고. 다방면에 재능이 있던 도언이. 엄마, 오빠, 이모, 사촌오빠들 까지 6명이 한 팀이 되어 사물놀이 봉사를 다니기도 했다. 엄마는 그때 그 시절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도언이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누구보다 친근한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어했다. 누구보다 선생님을 잘 따르는 아이기도 했다. 그 또래 아이들이 선생님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다반사. 하지만 도언이는 진로와 관련해서는 꼭 선생님하고 상담했다. 선생님이 함께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뒤 다은이 친구들로부터 알게 된 사실 하나. 친구들 사이에서 상담사로 통했다는 것. 고민이 있는 친구들은 항상 도언이에게 이야기를 했다. 도언이는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조언도 해줬다. 친구의 비밀을 다른데 가서 떠벌리는 성격도 아니라 친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아이였다. 외가쪽에서 막내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도 어른을 만나면 배꼽인사를 할 정도로 예의가 바른 아이였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런 딸을 잃었으니, 엄마는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하다.

 

  아들은 든든한 맛이 있고, 딸은 살가운 맛이 있다. 도언이 오빠도 있지만 도언이는 특히 친구 같은 자식이었다. 도언이랑 커플링도 맞췄다. 도언이가 엄마를 졸라서 맞추게 된 것. 도언이는 학생들 하는 티타늄 같은 것으로 하려 했는데, 엄마의 제안에 화이트 골드로 맞췄다. 도언이는 그 커플링을 항상 손에 끼고 다녔다. 엄마와 교감하는 징표였다. 지금 반지는 평택 추모공원에 도원이랑 함께 있다.


  도언이는 엄마의 살아가는 낙이자 의미였다. 항상 도언이를 끼고 잤다. 자다가도 뽀뽀하고, 만질 정도로 엄마와의 스킨십에 스스럼이 없을 정도였다. 도언이가 잘 때 볼을 만지면 ~하면서 잠투정을 했다. 그러다가도 엄마야하면 안도하고 다시 잠이 들었다. 또 엄마가 이불을 안 덮고 자면, 조심히 이불을 덮어주던 속 깊은 아이. 그런데 지금은 손을 대도 없으니 미칠 노릇이다. 자다가 습관적으로 손을 뻗는데, 그 곳에 도언이가 없다. 엄마는 자신을 너무나 닮은 딸의 사진을 휴대폰에 저장해 놓았다. 포토샵으로 수정을 하지 않아도 예뻤던 딸. 하루 종일 그 사진을 보고 있어도, 허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지난 1년의 기억

  도언이가 나오기 전까지, 물에서 시신이 올라오면 가족들이 확인을 하러 가야했다. 특이사항이 도언이와 비슷한 여학생의 시신이 건져질 때마다. 마음 약한 엄마가 무너질까봐 도언이 오빠가 그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오빠라고 하지만 아직 20대 초반, 시신을 보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힘든 내색하지 않고 감당해냈다. 그 슬픔과 분노가 어느 정도의 크기일지, 엄마도 가늠하지 못한다.

 

  오빠는 제대로 된 심리치료도 받지 못하고 작년 6월 군에 입대했다. 연기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17년간 함께 살았던 동생이 죽었는데,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가족들의 곁에 남아 힘을 보태려 했다. 엄마는 그런 아들을 설득했다. 제대하고 나왔을 때도 엄마 아빠가 밝히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때 행동하라고 했다. 권리는 보호해주지 못하면서 의무를 강요하는 나라가 싫었지만, 의무를 다 해야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입대하는 아들이 엄마는 걱정됐다. 혹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할까봐. 그랬을 때, 혹시나 세월호 유가족 전체가 욕을 먹을 수도 있으니까. 여느 엄마들 같았으면 몸 건강하란 말하기에도 바쁜 그 시간, 엄마는 군대에서 문제 일으키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아들이 입대한 지 벌써 10개월이 지났지만 면회 한 번 찾아가지 못한 것이 엄마는 못내 미안하다. 그런 상황을 만드는 정부가 밉다. 아들은 1주기에 맞춰 휴가를 나온다. 휴가 나온 아들을 위한 음식 장만할 시간도 없는 현실이 엄마는 또 미안하다.

 

  엄마는 동네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한다. 그전에는 편하게 하던 행동들도 조심하게 된다. 주위 시선을 자꾸 의식하게 된다. ‘딸을 잃었는데 저렇게 행동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동네 슈퍼도 가지 않고, 세탁소도 가지 않는다. 사고에 대해 물어볼까봐, 부담스럽다.

 

  이런 이유로 유가족분들 중에는 이사를 하신 분들이 많다. 도언이네도 이사를 하려고 생각했다. 집을 알아보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아빠는 도언이 흔적이 남아있는 집을 떠나기 싫다. 도언이의 흔적이 남은 곳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사는 것도 싫었다. 도언이 방은 그대로 뒀다. 책상, 침대, 옷장도 그대로 뒀다. 도언이 신발, 우산 할 것 없이 도언이가 사용하던 모든 물건도 모아뒀다. 학교에서 신던 실내화도 집으로 가져왔다. 심지어 사용하던 칫솔도 그대로 뒀다. 그런데 도언이만 없다. 그래서 물건들로 가득찬 그 방은 엄마에게 그저 빈 방이다.

 

  돌아온 도언이의 생일. 엄마는 생일상을 집에서 직접 차렸다. 살아 있을 때도 항상 집에서 생일상을 차려줬으니까. 도언이가 좋아하던 김치찌개, 카레, 튀김, 잡채 등 한 상 차렸다. 김치찌개는 특별히 아빠가 끓였다. 도언이가 아빠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좋아했기 때문. 생일상을 도언이 책상 위에 차려줬다. 다른 부모님들은 함께 생일잔치를 하고, 서로 챙겨주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도언이 생일은 우리 가족끼리 있고 싶었고, 다른 가족들을 만나면 더 아플 것 같았다. 그리고는 도언이가 있는 평택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엄마는 도언이가 매 순간 그립고, 또 그립다. 특히 아침에, 애들 학교 가는 시간에 생각이 많이 난다.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미어진다. 매일 데리고 등교하던 기억이 떠올라 더 힘들다. 오전 여섯시 반, 도언이랑 함께 집을 나서던 그 시간. 엄마는 또 도언이 방에서 눈물을 훔친다.


4월 5일. 안산~광화문 1박2일 도보행진을 마친 유가족들

지난한 싸움

  사고가 난 뒤 엄마는 운영하던 가게를 닫았다. 진행하던 건강 관련 강의도 접었다. 도언이의 장례를 치르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슬렀다. 지난 6월이었다. 엄마는 아빠랑 진도 체육관, 팽목항을 돌아다녔다. 음식 싸들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면서 다녔다. 도언이 친구들이고, 선생님이니까. 수중수색이 종료될 때까지 그렇게 실종자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엄마 아빠도 위로를 많이 받았다.

 

  엄마는 연약하지 않다.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1920일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물론 힘들었다. 한 발짝 한 발짝 걷는 것조차 힘든 순간도 있었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그 물집이 터지고. 근육통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엄마는 도언이 생각하면서, 실종자 분들 생각하면서 걸었다. 아침이면 근육 이완제를 먹었다. 저녁이 되면 파스를 붙이고. 아침에 또 일어나면 힘들지만 약 먹고, 함성 한 번 지르고, 힘을 얻어 걸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겠지, 정부에서 세월호 인양 등 문제를 해결해주겠지. 기대하며 걸었다.

 

  팽목항에 도착했을 때, 전국에서 4000명이 넘는 분들이 유가족들을 맞이했다. 도보행진은 학부모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언론에서는 보도해주지 않았다. 제대로 보도했다면 현재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추모기간에 쓰레기 시행령안이나 배·보상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유가족 마음을 제대로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언론이 제 역할을 할 것을 요구했다.

 

교육계 변화해야

  엄마는 세월호 이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계는 세월호 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육청의 허가를 받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겠다고 인솔하고 갔지만 지켜주지 못했다. 엄마는 학교를 믿고 애들을 보냈다. 하지만 아직 교육부는 변화지 않고 있다.

 

  “아이들 안전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 교과서적인 내용 말고 실제 위험이 닥쳤을 때, 생명을 지키는 방법과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또한 세월호의 진실을 가르쳐야한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과 현재 과정을 알려줘야 한다. 진실을 알아야 아이들이 행동할 수 있다. 그래야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엄마는 교육청 등 교육계와 연계된 활동을 많이 한다. 지난 1일과 2일 도언이 엄마는 경기도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청년 문화 콘서트 기억과 약속에 참석했다. 1일에는 약 1200명의 청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세월호 사고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2일에는 의정부에 있는 북부 청사에서 교장선생님, 교육부 직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교장선생님들 모시고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 경기도 이재정 교육감이 추진한 덕분에 마련된 자리였다. 세월호에 대해, 교육부의 부패, 세월호 이후 달라져야할 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 일정 때문에 엄마는 삭발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마음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오는 길에 유가족들이 단체삭발식 하는 모습을 인터넷 생중계로 봤다. 너무 마음이 미어졌다. 유가족들이 삭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그렇게 몰아넣는 정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주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추모기간에 추모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정부는 느닷없이 배·보상 이야기를 꺼냈다. 돈을 흔들며 유가족을 모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언론은 분별없이 배·보상에 관련된 뉴스만 보도했다. 마치 우리가 광화문 광장으로 다시 나선 것이 더 많은 보상을 받아내기 위함인 것처럼 비쳐지게 만들고 있다.


4월 6일. 광화문 촛불 문화제

도언이만을 위해 울고 싶다

  비가 오면 엄마는 제일 먼저 도언이 우산이 생각난다. 도언이는 노란, 빨간, 하얀 우산 세 개를 준비해두고 옷에 맞춰 들고 다닐 정도로 멋쟁이였다. 우산에는 예쁜 공주 도언이라고 표시해 두었다. 우산 뿐만 아니라 자기 물건에는 꼭 예쁜 공주 도언이라고 표시를 했다. 하늘나라에도 비가 올 텐데, 그 곳에서 우산은 쓰고 있을까. 도언이 우산은 내가 쓰고 있는데혹여나 비를 맞고 있지 않을지 여느 엄마와 같은 걱정을 한다.

 

  또한 이 비가 침몰하는 대한민국에 단비가 되어주기를 기도한다. 물은 생명이다. 메마른 대지에 비가 쏟아지면 그 토양에서 생물이 다시 살아난다. 메마른 대한민국에 생명을 불어넣는 근원이 되기를 바란다. 하늘에서 아이들이 도와줄 거라고 믿는다.

 

멈춘 시간 움직일 수 있는 건 언론

  그날 모든 시간이 멈춰졌다. 엄마 아빠들 애간장이 녹아내렸다. 생각도 멈춰버렸다. 작년 416일이나 지금이나 바뀐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게 중요한 사실이다. 애들 희생된 건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진상을 밝히고자 1년을 버텨왔는데 지금까지 밝혀진 것이 없다. “멈춘 시간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언론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지만 국민들도 깨우칠 수 있다. 우리는 그 시계를 움직이게 하려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다.”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데,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다. 언론이 제대로 서있다면 지금처럼 정부에서 추모기간에 배·보상 이야기를 했겠나. 빨리 진상규명이 됐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면 온전히 내 딸 도언이만을 위해 울 수 있으니까. 기도할 수 있으니까.”

 

  엄마는 지금 울 수가 없다. 밖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다. 울면 지치니까, 지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도언이 방에서 소리 죽여 운다. 엄마는 진상이 규명되고 도언이만을 위해 울 시간이 오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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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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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광화문의 날씨는 흐렸다. 봄바람 같지 않게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다.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 준비 위원회의 주관으로 부활절 예배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약 8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예수의 부활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렸다.


  예배가 마칠 즈음 세월호 유가족 250여명과 함께 도보행진을 한 시민들이 세월호 광장으로 들어섰다. 광화문 광장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은 상복을 입고, 영정사진을 든 유가족들을 박수로 맞았다. 지나가는 유가족들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건네고, 포옹하며 위로했다. 유가족 중 일부는 오랜 도보행진에 물집이 잡힌 탓에 걸음을 절기도 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자리를 잡고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4월 5일. 안산~광화문 1박2일 도보행진을 마친 유가족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딸 예은이의 영정사진을 안고 시민들 앞에 나섰다. 그는 쉰 목소리로 예은이의 꿈이 가수였다. 노래하고 즐기는 자리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 앞에 예은이와 함께 서고 싶었다흐린 날씨에도 세월호 광장을 가득 채워준 많은 시민분들께 감사하다. 하지만 더 많은 분들이 나서주셔야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며 더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위회 대책위원장은 국민들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세월호 진상규명이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첫 걸음이라며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진상규명의 의지를 밝혔다.


  이번 12일 도보행진에 함께한 시민 안승혜씨는 오는 동안 비가 오락가락 했다. 영정사진에 빗물이 한 방울이라도 맞을까, 꼭 안고 가는 유가족들을 보며 눈물이 흘렀다우리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고 있다. 더 많은 빚을 지기 싫어 함께 걸었다고 세월호 유가족의 12일 도보행진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무대에 오른 세월호 가족들은 정부에 욕을 하기도 했다. 유경근 위원장은 이제껏 욕을 참았다. 할 말이 많아도 참았다. 참고 또 참으면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하지만 우리가 속았다. 앞으로는 해야 할 말들을 가감 없이 하겠다고 밝혔다.


4월 5일. 안산~광화문 1박2일 도보행진을 마친 유가족들


  광장 옆에는 119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 시민이 구급차에 다가가 치료를 요구했다. 12일의 도보행진 동안 8개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것. 본인을 트위터리안 서패후라고 소개한 시민은 군대 간 아들과 고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는 평택에 사는 평범한 엄마다. 내 자식도 언제든지 이런 가고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안전사회를 건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12일간의 도보행진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은 6일 세종시 청사로 내려가 해수부에 항의 방문 할 예정이다. 오는 11일에는 집중 촛불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유경근 위원장은 “11일에는 오늘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야 한다며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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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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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삭발식이 거행됐다. 이미 아이들과 함께 죽은 목숨, 기꺼이 내던질 각오가 되어있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단원고 희생자 이재욱 학생의 엄마 홍영미씨도 이날 길었던 머리를 다 밀어버렸다. 싹둑 잘린 머리에도 미소를 잃지 않은 단원고 이재욱 군의 엄마를 만나봤다.


단원고 故이재욱 군의 엄마 홍영미씨


  재욱이 엄마는 아직 삭발한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화장실 갔을 때 살짝 봤다.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조금 다르더라. 내 머리가 뒤통수가 납작하다. 재욱이도 뒤통수가 납작하다며 낯선 모습 속에서도 아들을 찾았다.


우리 재욱이는…

  엄마가 기억하는 아들 재욱이는 밝고 자유롭고 건강한 아이였다. 재욱이는 워낙 활발해 이런 저런 활동도 많이 했다. 1학년 때는 2학년이었던 누나와 함께 학생회 활동을 했다. 재욱이가 학생회에 들어갔던 이유는 축제를 멋지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 홍보부장을 맡아 제 역할을 충실히 했고, 덕분에 그 해 단원고 축제는 어느 때보다 성공적으로 마쳤다.

 

  대외 활동도 활발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코스프레 축제에도 3년간 친구들과 함께 쫓아다녔다. 파쿠르 전국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파쿠르는 주변 환경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극복하는 훈련으로 스턴트맨처럼 벽을 타고 뛰어넘기도 한다. 재욱이는 한 달에 한두 번 주말이면 동아리 모임에 나가 비디오를 찍기도 했다. 홍씨는 사고가 났을 때 동아리 친구들이 많이 찾아와줬다며 분향소에 찾아와 함께 힘들어하고 울어준 아들의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재욱이는 또 애인처럼 살가운 아들이었다. 엉덩이나 팔뚝 같은 데가 튼튼했는데, 엉덩이를 팡팡 때리에이엄마!” 하면서도 엄마와의 그런 스킨십을 싫어하지 않았다.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가끔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재욱이를 느낄 수 없는 것이 엄마는 속상하다. “재욱이 사이즈만한 인형을 만들까하는 생각도 해봤다며 농담을 해본다.

 

  재욱이는 누나랑 방을 같이 썼다. 나이를 먹어가며 방이 필요해져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기로 했지만, 이사를 하게 됐을 때는 이미 사고가 난 이후. 엄마는 재욱이의 방을 꾸몄다. 방에는 평소 사용하던 물건들로 가득하다. 이사를 할 때면 의례 물건들을 버리지만 엄마는 아들의 물건을 작은 것 하나까지 놔두고 올 수가 없었다. 책상도, 옷장도 그대로 뒀다. 모든 게 다 그대로인데 재욱이만 없다. 엄마는 재욱이의 향취를 느낄 수 있을까 가끔 옷장을 열어본다.

 

지옥 같았던 지난 1

  지난 1년 재욱이네 가족의 삶은 지옥 같았다. 운동을 좋아해 건강에 자신이 있던 재욱이 엄마는 건강을 잃었다. 위도 아프고, 소화도 잘 안 된다. 물만 먹어도 살이 붙는다. 순환이 안돼서 그렇다. 세포 활성화가 잘되면서 노폐물들이 땀으로 배출이 돼야하는데 안되면서 결국 피부병이 생기는 단계까지 왔다. 아픈 몸을 이끌고라도 농성장에 나오는 것이 엄마는 좋다.

 

  엄마는 사고 당일의 기억은 떠올리기도 싫다. 그날은 몹시 추웠다. 몸도 추웠지만 마음까지 추웠다. 으슬으슬하고 세포가 떨렸다. 심장이 멎고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심정이었다. 재욱이가 잘못됐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엄마니까. 그 순간부터 무너지고 엄마도 같이 죽었다. 그리고 삶의 목표를 잃었다.

 

  사고가 난 직후에는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힘들었다. 재욱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해야하니까. 잊기 위해 잠을 자고, 잊지 못해 뜬 눈으로 밤을 새우던 날들이 이어졌다. 재욱이가 좋아하던 치킨·피자를 시켜 먹을 때, 같이 갔던 음식점 앞을 지나갈 때면 잘 먹던 모습이 자꾸 떠오르다. 하루에 수십번은 냉장고 문을 여닫던 아이. 길을 가다 재욱이 또래의 아이가 보이면 가슴이 미어진다. 재욱이와 닮은 곳 하나 없는 그 모습에서도 재욱이가 떠오른다.


  사고 당시에 단원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누나는 상실감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재욱이 뿐만 아니라 250명의 후배를 한 번에 잃었다. 학생회, 동아리에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들도 다 잃었다. 한 달쯤 지나고 나서야 마음을 추슬렀다. 동생의 삶을 대신 살아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예전보다도 더 열심히 공부에 집중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절망감을 벗어나야했다. 현재는 어엿한 대학생. 동생에게 부끄럽지 않은 누나로 살기 위해 목표했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휴대폰 바탕화면에는 교복을 입은 재욱이가 누나와 함께 개구진 표정을 짓고 있다. 엄마는 수시로 재욱이의 사진을 본다. 딸아이였다면 더 많은 사진이 남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학생증 사진이 다른 사진들보다 잘 나왔다. 이 사진이 영정사진으로 사용될 줄 당시엔 누구도 몰랐다. 재욱이의 명예주민등록증에도 이 사진이 사용됐다. 고등학교 2학년 생일이 지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수 있지만, 재욱이는 주민등록증을 받아보지 못하고 떠났다.

 

재욱이의 첫 생일

  지난해 1219. 사고가 난 후 맞은 재욱이의 첫 생일. 먼저 경험한 주변 엄마들이 많이 걱정했다. 거의 매일 아이들의 생일이 돌아온다. 생일을 맞는 엄마들은 미친다. 첫 생일이니까. 아이 장례도 장례지만 첫 생일이 너무 힘들다고 먼저 경험한 엄마들이 위로했다. 평소 꿋꿋한 성격이기에 잘 견딜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1주일 전부터 이유 없이 아팠다. 재욱이 생일을 양력으로 챙겼는지, 음력으로 챙겼는지도 헷갈렸다. 가족들은 양력으로 챙겼다고 하는데, 자꾸 음력으로 챙겼던 것만 같았다. 불과 1년 전에 챙긴 생일인데. 그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생일날 아침엔 미역국, 생선구이, 피자 등 재욱이가 좋아하던 것으로 상을 차렸다. 생일상을 가족끼리 함께 나눠 먹고, 납골당·분향소에 들러 다시 상을 차렸다. 재욱이 친구들도 찾아왔다. 재욱이랑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한 아이들이었다. 재욱이도 단원고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독수리 5인방 엄마 아빠들도 재욱이의 생일을 함께 챙겨줬다. 독수리 5인방이란 재욱이랑 1학년 때 친했던 친구들 부모의 모임. 아이들은 2학년이 되면서 반이 갈라졌지만 똘똘 뭉쳐서 잘 다녔다. 그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애들 장례를 치르고 나서 5인방 부모들이 모임을 만들었다. 누구보다 서로의 고통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모인다.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많은 위안을 받는다. 그렇게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다. 아이들 때문에 맺어진 부모들의 인연이 지금은 살아가는 동력이 됐다.

 

바라는 건 오로지 진상규명

  지난 1년간 세월호와 관련돼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가족들이 바라는 건 진상규명과 참사 이전과는 다른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 재욱이 엄마는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 이 두 가지만 옳은 방향으로 결정이 됐으면 삭발까지 할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모든 것들이 유가족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건지고, 장례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애들이 왜 그렇게 죽어야했는지 알아야했다. 진상규명을 위해서 움직이다 보니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목격하고 경험했다. 시간만 끌고 있지 진상규명은 하나도 되지 않고 있었다. 재판은 그 동안에 진행되고 있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될 거라고 믿었다. 국가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은 차일피일 미뤘다. 언론들은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 사건처럼 보도했다. 세월호 가족의 목적이 더 많은 돈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악질적인 기사들도 넘쳐났다. 여야는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다 결국에는 반쪽짜리 특별법을 만들었다. 반쪽짜리 특별법을 가지고라도 어느 정도의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정부가 입법예고한 시행령안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진상규명이 될 거라는 기대의 조그마한 불씨마저 꺼뜨린 거다. 사고 후 현재까지의 상황이 완전한 속임수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래서 엄마는 머리를 박박 깎았다.

 

  재욱이 엄마는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것은 그 아이들을 살려내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라고 밝혔다. “육신을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해도 정신은 살려낼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이 과정이 아이들을 살리는 과정이다. 그러니 우리가 세월호를 어떻게 인양하지 않을 수 있겠나. 썩어가는 대한민국을 눈 뜨고 지켜볼 수는 없다. 양심이 회복되고 정부, 정치, 국민의 의식이 깨어나는 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다. 지금껏 방관하며 살아와서 이런 꼴이 됐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지구는 계속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언론이 변해야 사회도 변해 

  삭발식날, 광화문광장은 기자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 이에 대해 재욱이 엄마는 우리 목소리를 한껏 냈다. 이것을 받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왔다는 게 조금은 위안이 됐다. 그 전에는 아무리 외쳐도 철옹성이었다. 평소에는 농성장에 찾아오는 기자들이 별로 없다. 오늘 많은 언론사에서 취재를 오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제대로 보도가 될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며 언론행태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언론이 중요하다. 416일날도 언론만 제대로 보도 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다. ‘전원 구조 오보’, 책임 진 사람이 하나라도 있나? 세월호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왜곡한다. 마치 우리가 보상금을 때문에 이러는 것처럼 보도한다. 언론은 양심선언을 해야할 때다. 언론히 변해야 우리 사회도 변할 수 있다. 그러면 4.16 이후에 멈춰있던 시간도 흘러갈 수 있다”라며 언론의 각성을 촉구했다.


  삭발식이 끝나갈 무렵 내리던 비는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거세게 내렸다재욱이 엄마는 개인적으로 비 오는 것을 좋아한다재욱이가 옛날에 친한 친구들끼리 비가 쏟아질 때 맨몸으로 뛰어나가 개구쟁이 짓을 하며 동영상 촬영을 한 적이 있다그런 상황들을 알고 있으니까 비가 오는 것이 반갑다하늘나라에서 또 모여서 신나게 놀고 있겠구나 싶다실제로 세월호 100, 200, 300일 등 큰 행사 때마다 비가 왔다아이들이 응원을 해주는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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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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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4월이다. 기억하기 괴로운 참사가 일어난 지 1년이 되어간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시간은 고장난 시계 같다. 사계절의 변화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난한 싸움 끝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반쪽짜리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다. 그나마도 제정됐다는 사실에 진상규명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이 입법예고 됐다. 유가족들이 416시간 집중농성에 돌입하게 된 배경이다. 농성중인 광화문 세월호 광장의 풍경을 담아봤다.



  오후 다섯시 경의 광화문 광장, 4월이 되었다고 제법 봄 날씨 같다. 바람이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도 이전처럼 외투를 단속하지 않는다.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 세종대왕상 앞에서 셀카봉을 들고 활짝 웃는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사진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의경들은 일사분란하게 이동한다. 그 분주한 사이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부시행령 폐기하라”, “세월호 선체 인양하라”, “실종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세요”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멈춰있다.


“시행령안을 폐기하라”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달 30일 416시간 집중농성을 선언하고 항의행동에 나섰다. 다시 농성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의 입법예고. 유가족들은 “정부의 시행령안은 반쪽짜리나마 만들어진 세월호 특별법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시행령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나섰다. 장완익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위원은 “특별법의 취지를 완전히 무시한 시행령안에 놀랐다. 법률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가 막힌 시행령안이다. 정부가 새로운 입법행위를 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했다.


독립성 훼손과 위원회 조직 축소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시행령안은 여당 추천 상임위원인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무처장 밑에 기획조정실장과 또 기획총괄담당관을 편성, 파견 공무원이 맡게 한다. 진상규명국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조사1과장 역시 파견된 공무원이 맡게 돼 있다. 정부로부터 파견된 공무원들이 여당이 추천한 사무처장을 보조케 해서 위원회 전체의 업무를 종합 조정하고 각 소위원회의 임무를 기획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잠재적 조사 대상인 정부부처와 여당으로부터 독립성을 가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조직 축소에 대해 “특별법에 따르면 120명 내의 직원을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시행령안은 합리적 이유 없이 출범시 인원을 90명으로 한정했다. 비율 또한 파견 공무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특별조사위를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입장은 단호하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이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이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시행령안의 폐기를 요구했다. 


매주 수요일 7시,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304명을 기억하는 미사’가 열린다.


해가 저문 광화문 광장

  해가 지면서 관광객들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그 자리엔 유가족들이 우두커니 남았다. 저녁 일곱시에는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가 진행하는 ‘세월호 희생자와 실종자 304명을 기억하는 미사’가 열렸다. 지난해 12월 2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시작된 이 미사는 세월호 광장으로 옮겨 매주 수요일 7시에 열리고 있다. 세월호 광장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그 시각 광화문 바로 앞, 유가족이 자리한 곳엔 촛불이 하나 둘씩 켜졌다. 유가족의 주위를 촛불이 둥글게 감싸 유가족들을 비추고 있다. 바닥에 세워뒀는데 바람이 불어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자세히 보니 다 마신 음료수병, 자양강장제병 따위가 촛불이 흔들리지 않게 받치고 있었다. 문득 이 장면이 바람직한 사회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연대하고, 뜻있는 사람들이 빛을 비추고, 그 빛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모습.


세월호 유가족들의 주위를 촛불이 밝히고 있다.


  그 곳에서 성빈이 아빠를 만나 대화를 나눴다. “내 딸은 뭐든 잘 하는 아이였다. 자랑하는 것 같아 쑥스럽지만 전교 1등 하는 딸이었다. 상장도 장학금도 많이 받았다. 판사나 외교관의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며 딸의 핸드폰에서 딸의 사진과 상장, 장학증서를 보여줬다. 눈에 그리움이 그렁그렁 맺혔다. 건강은 어떠냐고 묻자 “여기 몸 성한 사람이 어디 있냐. 그런데 아플 수도 없다. 여기서 아파서 쓰러지면 안 된다. 아직 진상규명이 전혀 되지 않았고, 내 딸이 왜 그렇게 죽었는지 모르는데, 아프면 안 된다”고 다짐하듯 대답했다.


  사고 직후의 상황에 대해 “처음에 유족들은 사고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다. 계속 못 가게 막았다. 해수부 장관에게 항의해서 해경 순시선을 타고 현장에 갔다. 현장에서 돌아오니 아내한테 연락이 왔다. 사망자 명단에 딸 이름이 올랐다고. 이후 병원에서 애들 신원 확인해주시던 단원고 선생으로부터 우리 딸이 아니라는 연락이 왔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포 중앙병원으로 향했다. 내 딸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성빈이는 29일에 물에서 나왔다. 다른 아이들보다 빠른 편이었다”라던 성빈이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신 찾아가면서 나와 줘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우리 밖에 없을 거다. 우리는 나왔으니까 다행이라고 하는데, 죽어서 나온 것이 다행인 일인가 싶다”라고 어렵게 말을 이었다. “1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 물속에 있으니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나. 세월호 선체는 꼭 인양돼야 한다. 이런 기사나 좀 써라. 여기서 과거 얘기 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 없다. 그 때 생각을 돌아보면 울화만 치밀고, 애들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말을 끝으로 성빈이 아빠는 자리로 돌아갔다.


  유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동석했다. 유가족들은 자신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다. 누구의 엄마이고 아빠일 뿐이었다. 해가 저물고 나니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왔다. 매트를 깔고 담요를 나눠 덮고 있어도 한기를 막을 수는 없었다. 인터뷰를 중단한 것이 마음이 쓰였던지, 성빈 아빠는 가지고 있던 핫팩 하나를 건넸다.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삭발식이 화제다. 집행부를 포함해 최소 20명 이상이 삭발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한다.(실제로는 2차에 걸쳐 70여명이 삭발에 동참했다) “00이 엄마는 두상이 예쁘니까 꼭 해야겠다”, “머리숱 적은 00이 아빠는 하나 안하나 별 차이가 없다”등 서로 농담을 주고 받지만 그 속에 결연한 의지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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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누군가는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20144월을 잔인하단 단어로 다 형용할 수 있을까? 세월호 1주년. 걷다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겨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봄을 돌려주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목도리 하나는 둘러줄 수는 있지 않을까?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이하 세월호 가족협의회)330일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선체 인양과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청와대 항의 방문을 시도했지만 다수의 경찰 병력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경찰에 막힌 청와대 항의방문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항의 방문하기 위해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세종대왕상 앞에서 지키고 있던 경찰 병력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마치 세종대왕이 앞길을 막고 있는 듯 보였다. 괜히 세종대왕에 화가 났다. 가족협의회 일부는 경찰 병력이 막지 않는 곳을 뚫고 광화문 앞까지 나아갔다. 그 이상은 넘어갈 수 없었다.


  50여명 남짓의 유가족들을 막겠다고 나선 병력은 세 배는 족히 되어보였다. 병력이 디귿자로 가족협의회를 감쌌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했으며, 또 누군가는 잠시 서있었다. 외국인들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광화문으로 나아가려던 한 시민과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50대 남성으로 보이는 그는 왜 자꾸 따라오냐? 경찰이면 다냐? 움직일 자유가 내게 있는 것 아니냐며 경찰에 따져 물었다. 경찰은 당신이 자꾸 넘어가려 하니까 그러지라며 대꾸했다. 따라오지 말라는 남성을 경찰은 결국 세종대왕상까지 따라갔다. 그를 따라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경찰이 광화문 가는 길을 막기에 뒤돌아서 농성장으로 가려했다. 그 순간 경찰 여섯 명이 따라 오더라.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하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재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대통령께 면담을 요청하기 위한 청와대 항의 방문일 뿐 가두시위나 행진이 아니라고 행사의 성격을 확실히 규정했다. 그런 연유로 경찰이 막아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공동상황실장은 경찰이 계속 막더라도 그 자리에 앉아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또 청와대로 가기 위해 날마다 항의행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의지를 밝혔다.


  이 공동상황실장은 가족들이 왜 또 광장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국민들이) 잘 모르고 계신 것 같다. 특조위 조사권을 무력화 시키는 시행령 폐기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광장으로 나오게 됐다고 세월호 가족협의회가 광장으로 다시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 면담을 요청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절실하다. 411일부터 추모주간을 선포, 촛불집회(11)대규모 추모문화제(16)범국민 대회(18) 뿐만 아니라 1주기를 맞아 전국에서 다양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참여를 부탁했다. 끝으로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는데, 특별법이 제대로 시행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언론이 더욱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보도할 것을 촉구했다.

 

그래도 아직 희망 갖는다

  시민단체 간사인 조은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에 유인물을 건네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광화문 농성장에 찾아와 일을 돕는다고 밝힌 그는 시행령 제정안 철회와 세월호 선체 인양 등 문제들이 하루 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반대 주장을 가질 수는 있지만, 농성장에 찾아와 유가족들에게 욕을 하는 분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며 관용의 정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몇 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유인물도 잘 받아 주시고, 다른 유인물과 달리 길바닥에 버리는 분들도 많지 않다그런 모습을 볼 때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바닥에 나뒹구는 유인물이 없었다.



가족협의회는 왜?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왜 다시 광화문 농성장으로 나왔을까? 가족협의회는 지난 327일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은 특별조사위원들이 제안한 시행령안을 완전히 묵살한 전혀 새로운 안이라고 소리 높였다.


  이들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대상을 정부가 조사한 것에 대한 검증 수준으로 축소 위원장과 위원들의 위상과 역할을 약화 사무처의 인력과 예산을 축소하고 위원회 사무처의 주요 직책을 정부 파견 고위 공무원이 장악했다며 조사대상이 되는 기관의 공무원들이 특조위를 사실상 통제하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세월호 특별법과 특조위의 조사권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또한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이런 초법적이고 불법적인 시행령안을 일개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단독으로 마련했을 리 없다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독립적 국가기구의 시행령이 아니라 청와대가 작성한 진상규명 통제령이며 간섭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특별법 시행령 논의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세월호 인양 약속에 대해서도 손바닥 뒤집듯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며 세월호 선체에 대한 온전하고 조속한 인양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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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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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31일은 세월호가 침몰한 349일째 되는 날이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딸 예은양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지도 349. 그의 시계는 아직도 2014416일에 멈춰있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그는 오늘도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을 만난 건 광화문, 저녁 일곱 시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낮에 한차례 비가 내린 탓에 조금 쌀쌀한 날씨였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덤덤히 이렇게 지낸다는 유 위원장. 그 앞에 어둠이 내려앉은 광화문 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의 돌바닥에 그대로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찬기운이 올라오는 그 자리에 앉은 모습이 묘하게도 편해보였다. 1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 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건강은 괜찮은가.

  건강이야 당연히 안 좋다. 계속 밖에서 생활하다보니 여기저기 아픈데도 생기고. 그래도 몸 아픈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사고가 벌써 1주기를 맞는다.

  1, 저희한테는 그런 감각이 없다. 시간이란 감각을 잃은 지 오래 돼서, 그게 1년인지 10년인지 그냥 똑같은 날들의 반복일 뿐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에선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다. 1년이란 시간이 원래 어느 정도의 길이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416일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2014415일까지 삶을 살았던 거고, 416일부터는 살아있지 않다. 참사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고통 속에 갇혀있다.

 

예은이는 어떤 딸이었나.

  그냥 내 딸이다. 어떤 딸이었냐 따지기 전에 그냥 내 딸이다. 내 목숨보다도 귀한 내 딸. 그것뿐이다. 가수가 되는 것이 예은이의 꿈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한테 예쁜 모습을 남겨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로필 사진을 포함해서 예은이 사진이 핸드폰에 잔뜩 있다. 그런데 안 본다. 못 보겠다.

 

사고 이후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아내는 지금 광화문 광장에 같이 나와 있다. 나보다 더 힘들거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마니까.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까. 그 고통을 가늠할 수도 없다. 예은이한테 쌍둥이 언니가 있다. 우리 하은이(쌍둥이 언니)는 말로 표현은 잘 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보다도 더 많이 힘들거다. 쌍둥이는 항상 티격태격 한다. 그러다가도 가장 친한 친구처럼 서로를 의지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함께 있었으니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년이 지났지만 하은이는 아직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새벽마다 운다. 보고싶다고. 나도 아내도 같이 운다.

 

하은이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하은이가 부쩍 더 열심히 공부하고, 매사에 열심이다. 표현하지 않아도 아빠 눈에는 마음이 다 보인다. ‘예은이 몫까지 해야지, 예은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언니가 돼야지하는 다짐이. 그렇게라도 집중하면 그 시간동안 동생 예은이를,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으니까. 1년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서 무던히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대견하고, 고맙다.

 

세월호 이후 1, 언제 가장 힘들었나?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게 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이를 찾으려고 팽목항에서 진도앞 바다에서 헤맸던 일들, 그때 목격했던 말도 안되는 일들, 예은이를 다시 찾았을 때 그 얼굴, 차가운 손의 감촉도 다 생생하다. 돌아와서 미안한 아빠지만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내자고 달려들었을 때 그 다짐은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 특별법 만드는 과정에서 단식하고 농성하고 도보행진 하고 별 짓을 다 했는데 그 과정도 다 기억이 난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을 했고, 무슨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 때문에 울었고. 그런데 아쉬운 건 이 1년이란 시간동안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어느 하나도 우리를 웃게 해준 일이 없다.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준 일은 없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 할 수가 없다. 매일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니까. 오늘도 마찬가지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의 항의는 어떻게 해결되었나?

  해결이 된 건 없다.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지금 이렇게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내려올 이유가 있나. 우리는 농성을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면담 요청을 하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농성을 할 계획이었다.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막히게 되면서 청운동까지 가게 됐고, 12일간 농성을 하다 내려왔다. 해결이 된 게 아니고 자진해서 내려온 것이다.

 

아직 아홉 분의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선체 인양도 아직 되지 않았다.

  선체 인양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여전히 관심이 많다. 어제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62%의 국민이 비용에 관계없이 선체 인양을 해야 한다고 뜻을 보여주셨다. 이건 정말 놀라운 수치다. 정부나 여당은 세월호 인양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가능한 한 인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려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가 넘는 국민들이 인양을 지지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시신일지언정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서 가족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그것을 미루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의 정부이기를 부정하는 것 밖에 안된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용도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만큼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인양을 통해 아홉 분의 실종자들이 하루 속히 가족분들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호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는 안전한 사회 건설. 이것이 세월호 특별법의 목적이다. 이번에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고, 아홉 분의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를 정상적으로 풀어가면 정부에 대한 신뢰, 안전에 대한 믿음이 쌓일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정부에서 왜 놓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부는 왜 선체 인양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가?

  단정적으로 말을 할 수 없다. 여태까지 정부는 인양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물론 인양을 하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 그러니 왜 인양을 안 하는지 거기에 대해 뭐라 이야기 할 뚜렷한 근거가 없다. 그냥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다. 인양을 할 경우에 무언가 이 정부에 부담이 되는 거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세계 경제10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한 척 인양하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질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4월 2일 삭발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광화문 농성장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세월호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도를 물어봤을 때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0%가 넘었다. 참사 직후에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주셨던 뜨거운 행동으로 보여준 열기는 식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국민이 1년 내내 거리로 나올 수 있나? 더 중요한 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국민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국민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관심이 식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변화했을 뿐이다. 1주기를 앞두고 국민들이 저희에게 보여준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돕겠다고 성원해준다.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는데, 세월호 사고이후 대한민국이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에 80%가 넘는 사람들이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안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겪고 나서 안전 문제를 여실히 깨닫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새정치 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에 대해.

  새정치 민주연합은 사실 1년간 노력 많이 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의 편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항상 애를 써준 의원들도 많다. 문제는 항상 아쉬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치 구조에서 야당의 현실적 어려움을 부정할 순 없지만, 너무 쉽게 타협해주고 양보해준 것 같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하는 모습이 아쉽다. 협상의 한계를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 같다.

  정의당의 경우에는 워낙 소수 정당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 정도의 소수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배제됐기 때문에 정의당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적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애쓴 분들께는 감사하다.

 

새누리당에 대해 묻겠다.

  새누리당에도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의원들이 있다. 야당보다 그 비율이 낮지만.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당차원에서의 결집력, 결정된 사항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좋다. 문제는 그 방향이 우리 가족들의 생각과 정반대 방향이라는 점에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런 모습들이 피해자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세월호 사고를 단순 교통사고로 표현하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치투쟁을 하는 것처럼 몰아간다. 국민을 편가른다. 정부여당에 우호적이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당이 결정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아쉬운 건 우리니까.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중인 이호진씨 부녀의 근황이 궁금하다.

  직접 연락한 지는 꽤 됐고, 다른 가족들을 통해 소식은 전해 듣고 있다. 근황이야 뻔하다. 도보행진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고통이 눈앞에 선하다. 더욱이 삼보일배 도보행진을 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중단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으면 좋겠다. 지금 속도로 하면 올 가을이나 돼야 도착한다. 같은 가족의 입장으로 가족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후 계획을 말해달라.

  지금 당장은 416시간 집중 행동 농성을 하고 있다. 목적은 두 가지다. 우선 말도 안 되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이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이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폐기만이 목표다. 두 번째로는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는 입장을 1주기 이전에 밝히는 것이다. 진상조사 된 것도 없는데 최소한 그 약속은 받고 1주기를 맞아야하지 않겠나.

 

어떤 문제가 해결 돼야 집에 돌아갈 수 있나?

  난 돌아갈 집이 없다. 내 집에는 예은이가 있어야 한다. 예은이가 없는 집은 건물일 뿐이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덜 미안한 엄마 아빠가 되어 예은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 목표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예은이한테 갈 수 있는 것. 지금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왜 예은이가, 우리 아이들이 거기서 죽어야했는지. 그 진실을 밝혀야 예은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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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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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겨우 일단락 되는 시점에 범LG가 3세 구본호씨(미국인, 구베넷)가 자신 소유의 건물 세입자에게 갑질을 한 것이 알려져 적잖은 논란이 되고있다. 구본호씨는 3년전 강남의 한 건물을 샀고, 건물을 넘겨 받자 마자 대리인을 내세워 세입자들한테 월세를 왕창 올려 주던지 나가라 이야기 했다고 한다. 이 중에는 계약기간이 1년에서 4년까지 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구본호씨의 대리인은 자기보다 10살 더 많은 철물점 주인한테 "죽여 버리겠다", "사람들 불러다 묻어버리겠다" 이런 식으로 협박하고 "한 번만 더 나를 거슬리게 했다간 내가 다음에 들렀을 땐 가만 안 두겠다" 온갖 육두문자를 퍼부었다고 한다.

 

  대리인의 협박과 폭언에도 이들이 나가지 않자 구본호씨는 지난 2012년 10월 상가임대차 보호법으로 계약기간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이들을 상대로 '건물을 비워 달라'하는 '명도 소송'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1년여가 지난 지난 2013년 7월 법원이 세입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그뿐이었다. 사실 구본호씨 자신도 이 소송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본호씨가 이렇게 막무가내 소송을 진행한 것은 세입자들을 괴롭히려는 의도로 봐야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신의 자본으로 유명하고 실력있는 변호사들을 고용하여 세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면 돈 없어 제대로된 변호사 하나 고용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말그대로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다. 1년 넘게 끌려다녀 결국 승소해도 얻는 것 하나 없이 시간과 스트레스만 얻게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사실 땅콩회항 사건이 있은지 얼마되지 않았고, 라면상무, 남영유업 갑질, 백화점 모녀 갑질까지 수 없이 많은 갑질을 뉴스를 통해 보았고, 삶을 통해 크고 작은 갑질을 목격하고 체험해왔기에 그다지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았다. 대신 왜 우리 사회에 이런 갑질이 횡횡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만 뭘 가지고 있어도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울 기회를 빼앗기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누구나 이런 경험 한번쯤 있지 않은가? 학창시절 같은 잘못을 해도 집에 돈이 많거나, 부모님이 힘깨나 쓰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그 중 하나라도 가지고 있는 아이는 그렇지 못한 아이에 비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그런 경험. 생계가 어려워서 몇만원 몇십만원 훔쳐서 감옥을 들낙날락 하게되는 사람과 몇백억씩 회삿돈을 횡령하고, 불법으로 증여하여 국가에 당연히 돌아가야할 세금을 도둑질 한 사람들은 '경제에 기여한 바가 크다'는 엉터리 주문으로 쉽게 나오는 그런 경험. 1988년 지강헌이 외쳤던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상식인 이 사회에서는 가진 사람들이 책임지는 법을 배우지 못할 확률이 너무 높다.

 

  왕좌의 게임 1시즌 첫화에는 탈영병을 영주 자신의 손으로 사형시키는 네드 스타크의 모습이 나온다. 그는 탈영병을 처형하는 장소에 자신의 10살된 아들을 데리고와 자신의 모습을 보게한다. 처형이 끝난 후,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선고를 한 사람이 직접 검을 휘둘러야한다 (The man who passes the sentence should swing the sword)"는 스타크 가문의 전통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것이 스타크 가문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는 방법인 것이다.

 

 

p.s.

  뭣도 아닌 필자가 글 한줄 적는다고 바뀌지 않을 것 알지만 간곡히 부탁해본다. 지금 상황에서 금수저 물고 태어나는 당신네들 자녀들이 대한민국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영역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건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렇다면 제발 자녀들에게 책임감과 애국심을 좀 심어달라. 2년도 안되는 병역 때문에 아들들 외국인 만들지 말고. 가진 것 만큼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달라. 이기심에만 눈먼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에 앉아서 책임지지 않는 그런 나라에는 미래 따위 없으니.

 

[한수진의 SBS 전망대] "월세 5배 올려 달라" 재벌3세 건물주의 갑질

[‘구설의 아이콘’ 구본호] 먹튀 이어 이번엔 ‘갑질’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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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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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고개가 갸우뚱 한 기사가 있었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검사 문희만 역을 맡은 배우 최민수씨가 'MBC 연기대상'의 남자 황금연기상을 백진희씨를 통해 대리 수상하였다는 기사였다. 대리 수상을 한 백진희씨는 최민수씨가 문자로 보낸 수상소감을 프린트 해서 가져왔는데 사라져서 적었지만 뒷부분은 다 적지 못했다며 "검사로 살고 있어 상을 받을 게 뭐가 있겠나. 이 수상을 정중히 거부하려고 한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대리수상도 아니라 대리 수상거부라. 평소 기행을 일삼기로 유명한 최민수씨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무슨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는지 궁금했다. 

  하루가 지나고 뉴스를 통해 전날 전해지지 않았던 수상소감의 뒷부분이 전달되면서 최민수라는 배우가 인간답게 사는 법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나 할까요? 법과 상식이 무너지고 진실과 양심이 박제된 이 시대에 말입니다"라고 밝혔다. 차가운 바다 깊숙이 갇혀있는 양심. 누가 들어도 세월호를 떠올릴 수상소감이다. 그는 대리 수상 거부 라는 기행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전달하고 싶었던 거다. 연말에 방송3사의 연기대상, 연예대상, 가요대상, 영화제 등을 통해 많은 연예인들이 상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고, 생각나게 하는 수상소감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그리고 누구도 그런 수상소감을 기대하고 있지 않다. 유가족과 그 주위 일부를 제외하고 세월호는 이미 잊혀진 과거이기 때문이다. 최민수씨의 수상거부가 '나 자신이 세월호를 잊고 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에 가슴을 크게 울린거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2014년이 지나간다. 2014년 한해는 세월호를 비롯하여 수많은 아픔이 있었다. 수많은 사건사고로 애꿎은 목숨이 사라졌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목숨 뿐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까지 함께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반성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힘있고 돈 있는 자들이 더 잘살고 더 부유해지도록 세금 등 규제를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 이들에게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은 실패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말은 실패자들에게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2015년 새해가 밝는다. 그렇다고 별로 달라질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박근혜는 올해와 같이 무능할 것이고, 서민들의 피를 빨아 상위 1퍼센트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울 것이다. 국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자신의 주위에서 권력을 가지고 장난치는 자들의 목소리에만 귀기울일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삶의 벼랑으로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만 이라도 최민수씨의 수상소감처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도리'를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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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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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여성연합에서 조현아를 살리기 위한 성명서를 배포했다. 대한민국여성연합의 면면을 살펴보니 화려하다. 세월호 관련 막말로 유명한 정의실현 국민연대 정미홍, 엄마부대 주옥순을 포함 대한민국사랑회,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한기총 여성위원회 등 20여개 극우단체들이 '여성연합'에 이름을 올렸다. 이에 욕먹는 담벼락에서 반박 성명을 발표한다.

조현아 눈빛

 

마녀사냥 언론 호들갑, 조현아 죽이기 그만하자!

  대한민국여성연합 호들갑, 조현아 살리기 그만하자!

하이에나만 득실거리는 무자비한 우리 사회, 이런 나라도 없다.

  약자에겐 무자비하고 강자에게는 한없이 자비로운 우리 사회, 이런 나라도 없다.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씨가 항공법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씨가 항공보안법 제23조 승객의 협조의무, 제46조 항공기 안전운항 저해 폭행죄 등의 위반 혐의로 조사받고 있다.

'땅콩 회항사건'으로 명명된 이 일은 대한항공 초기대응 미숙으로 하이에나에게 먹잇감을 던진 꼴이 되었다. '재벌'이 사회문제를 일으킨 부분도 많으나 반면 한국 경제를 책임져 왔다는 사실도 부정해선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절대 선도 악도 없다. 누구나 실수와 범법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땅콩 회항사건'으로 명명된 이 일은 우리나라 재벌 총수 일가의 회사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어 전 세계적인 망신을 초래했다. '재벌'이 한국 경제를 책임져 왔다고 하지만 사실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성장했다. 재벌 총수는 부패한 정권에 아부하고 정치자금을 주며 얻은 특권으로 손쉽게 취득한 자본을 무기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스스로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 누구나 실수와 범법을 저지르며 살아가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수와 범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재벌'은 무조건 나쁘고 그들 자녀 또한 악의 대상으로 규정해 이들 잘못은 법 심판 이전에 '인민재판'으로 인격살인 조차 서슴지 않고 언론은 앞장서 흥행꺼리로 만든다.

  한국에서 재벌 총수 일가는 잘못을 해도 징역3/집행유예 5년의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에는 항상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져왔다는 정상참작 사유가 관용구처럼 붙는다.

조현아 사건을 비난하지 않을 자 아무도 없다. 오너 아버지 덕에 어린 나이에 부사장까지 올랐으면 신중했어야 함에도 조현아에겐 감정절제 교육이 부족했고 세계 5위 항공사인 대한항공 부사장직을 수행하기엔 부족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조현아는 우리 사회에 재벌이라는 특권층이 어떤 특혜를 받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오너 아버지 덕에 어린 나이에 부사장까지 올랐다. 이번 일을 통해 보여지듯 그녀는 세계 5위 항공사인 대한항공 부사장 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님에도 사주의 딸이라는 이유로 능력과는 상관 없이 그 자리에 앉았다.

반성할 수 있는 기회주차 주지 못하는 무자비한 사회가 되어선 안 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반성할 수 있는 기회가 수 차례 있었지만 그녀의 오만함은 모든 기회를 날려버렸다

사건보도 후 마녀사냥을 예측하고 모든 직에서 바로 물러났어도 부족할 판에 그룹 내 솜방망이 징계와 사건은폐, 축소, 거짓진술 강요 등 대한항공 본사의 대책 역시 지극히 무사안일 했다.

  사건보도 후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변명과 거짓말로 사건을 은폐/축소,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거짓진술을 강요했다. 검찰 조사를 받는 지금도 증거와 증언으로 밝혀진 부분만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와 좌파시민단체의 마녀사냥에 언론이 앞장서자 국토부 조사권한도 사라지고 검찰도 함께 춤추며 구속영장 청구 등 살벌함이 기관이다. 조현아는 지금 사회가 얼마나 무섭고 냉정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 자신의 부족함을 절감하고 반성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여성연합이라는 극우단체는 조현아 구출에 나섰다. 조현아는 자신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무장과 승무원을 무릎 꿇리고 폭언과 폭행을 한 뒤, 사무장을 하기시켰다. 사건의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거짓과 증거인멸로 일관했다. 그런데도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검찰의 봐주기 수사라 할 수 있다. 조현아는 지금까지 자신이 살던 특권층의 삶에서 내려와 만민이 평등한 법 앞에 서려는 중이다.

사건 발단의 당사자인 사무장은 약자 프레임으로 영웅시 하고, 재벌 딸 조현아는 고개도 들 수 없게 만드는 언론의 무자비함을 보며 하이에나들만 득실거리는 이 사회가 정상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약자나 강자나 잘못을 사회제도로 해결하지 않고 지금 같은 인민재판 방식을 즐긴다면 정상인은 이 나라에서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사건의 피해자인 사무장은 이겨도 얻는 것 없는 싸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지금은 이기고 있는 것 같지만 사회의 이목이 사라지면 사무장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그 자신도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이 사건의 선두에 서있다. 엄연히 이 사건의 피해자인 사무장을 사건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듯한 대한민국여성연합이 정상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여성연합은 작금의 사태에 이젠 재벌 딸 죽이기 굿판을 중단하고 언론, 시민단체, 검찰, 법원은 이성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조현아는 재벌 딸이기 전에 배워야 할 것이 많은 젊은 여성이다. 더 이상 한 여성이 사회 절차가 아닌 야만적 방법으로 매도되어서도, 한번 실수를 거울삼아 성숙할 기회를 주지 않는 무자비한 사회가 되어서도 안 된다.

  욕먹는 담벼락은 이 사건이 단순한 '재벌 딸 죽이기'를 넘어 법 위에 군림하는 재벌이라는 기형적 계급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현아에게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도 한진 그룹의 맏딸로서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갈 조현아에게 처음으로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조현아에게서 실수를 거울삼아 성숙할 기회를 빼앗으려는 대한민국여성연합은 반성해야 한다.

조현아는 이미 사법적 심판 이상의 사회적 처벌을 받았다.

  조현아는 이제 막 만민이 평등한 법 앞에 섰다.

'땅콩' 으로 촉발한 사건이 대한항공이라는 거대기업 운명까지 흔들고 있으니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고, 그 끝도 알 수 없을 지경이기에 대한민국여성연합은 사회와 언론의 각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마카다미아'라는 사소한 일로 촉발한 사건이 조양호, 조현아 부녀의 오만함으로 인해 대한항공이라는 거대기업의 운명까지 흔들게 되었다. 창업주 일가의 세습경영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몸소 보여준 셈이다. 이 일은 조현아와 한진 그룹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재벌 3세와 일부 대형교회 목사 자녀들의 일탈행위는 이미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고, 그 끝도 알 수 없을 지경이기에 욕먹는 담벼락은 사회와 언론의 각성 그리고 대한민국여성연합의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2014 12 17

 

대한민국여성연합

대한민국사랑회 김길자/ 블루유니온 권유미/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이경자/ 하나여성회 이애란/ 정의실현 국민연대 정미홍/ 북한인권법통과를위한모임 인지연/ 한기총 여성위원회 박홍자/ 국가원로회의여성위원회 박정희/ 엄마부대 주옥순/ 유관순어머니회 윤종주/ 대한민국역사바로알리기 한효정/ 서대문미술협회 정미애/ 자연사랑 김기숙/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정성희/ 나라사랑어머니연합 권명호/ 교육과학교를위한학부모연합 김순희/ ()색동회 정명화/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 여성위원회 진민자/ ()건국이념보급회 김효선

2014 12 18

 

욕먹는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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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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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이지 사정사정 하고 싶다. 다른 견주들 욕 좀 먹이지 말라고. 강아지를 사랑하고 키우고 싶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고, 강아지를 키우는 법부터 배워야한다. 필자도 귀여운 웰시코기 한마리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는데 배워야할 부분도 많고 지켜야 할 에티켓도 많다. 그 중 강아지 등록, 목줄, 배변 치우기가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주 기본 조차 안지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첫째는 동물 등록이다. 동물 등록제는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동물등록제외지역(도서,오지,벽지), 인구 10만이하의 시,군을 제외한지역의 3개월이상 인 경우로 가정에서 기르는 개는 의무 등록 대상이다. 등록은 동물등록대행업체(주로 동물병원)에 반려견을 데리고 방문하셔서 신청하면 된다. 등록을 하면 인식표를 달아야 하는데 체내에 RFID를 심는 방법이랑 외장형으로 RFID 인식표를 사용하는방법, 그리고 인식표를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등록을 하면 강아지를 분실 했을 때 쉽게 찾을 수 있다. 흔히 동물등록제를 권장사항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강제사항이다. 물론 적발이 어려워서 강제성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동물보호법에서는 반려견을 등록을 하지 않으면 1회 위반시는 경고, 2회 20만원, 3회 이상 40만원으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또한 등록을 하고 인식표를 달고 다니지 않는 경우에는 1회 5만원, 2회 10만원, 3회 이상 2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둘째는 목줄 착용이다. 당연히 강아지는 목줄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선은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목줄하지 않고 다니는 견주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강아지는 안물어요." 내 눈에는 귀여운 강아지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도시는 강아지에게 우호적인 공간이 아니다. 실제로 필자의 아파트 앞 마을버스 타는 곳에 어떤 아주머니가 강아지 풀어 놓고 있다가 마을버스에 치여죽기도 했다. 강아지가 죽거나 타치고나면 누구 탓을 할 수 있나? 100퍼센트 견주 잘못이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목줄을 채우지 않은 견주에 대해서 1회 5만원, 2회 7만원, 3회 이상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참고로 도사견과 아메리칸 핏볼 테리어 등의 맹견에 대해서는 목줄과 함께 입마개를 하도록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정해져 있다. 

자격 없는 견주들 때문에 똥싸개 오명

 

  마지막으로 배변 치우기이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가면 강아지 변이 많이 보인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강아지 목줄도 채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강아지 배변이라고 치우겠나. 풀밭에 싸놓은 변은 그나마 낫다. 길 한복판에 싼 변을 치우지 않고 가면 변을 치우는 견주들도 같이 욕을 먹게 된다. 동물보호법에는 배설물(소변의 경우에는 평상·의자 등 사람이 눕거나 앉을 수 있는 기구 위의 것으로 한정한다)이 생겼을 때에는 즉시 수거하여야 한다고 정해놓았다. 이를 어길 때는 목줄을 하지 않았을 때와 같이 1회 5만원, 2회 7만원, 3회 이상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위 세가지는 강아지를 키우는데 진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과태료 때문이 아니라 정말 같이 살아가는데 최소한 지켜야 하는 상식이다. 오늘 강아지를 산책시키던 필자는 목줄을 하지 않은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아줌마를 만났다. 그 아줌마는 자신의 강아지가 필자의 강아지를 쫓아와서 으르렁 거리는데도 오라고 외치는 것 외에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목줄 하지 않으면 동물보호법 위반인거 모르세요?"라고 묻자 당당하게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아는 것이 자랑이 아니다. 알면 지켜라. 강아지한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다 자격없는 견주가 문제지. 제발 책임 지지 못할 거면 반려견을 키우지 마라.

 

p.s.

  법은 제정되어있는데 실제 단속은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지금 얼마나 많은 반려견들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유기견들을 보호하기위해 동물 등록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는 예방접종이나, 동물 병원 등에 오는 반려견들을 대상으로 의무적으로 등록시키도록 하면 일부분 해소 될 수 있을 텐데 큰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처벌으로 강제하는 방법 외에도 등록 반려견에 대한 지원 등의 인센티브로 등록을 유도 할 수도 있지만 그럴 의지조자 없어 보인다.

 

동물보호법

 제12조(등록대상동물의 등록 등)
② 제1항에 따라 등록된 등록대상동물의 소유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변경된 경우에는 변경 사유 발생일부터 30일 이내에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③ 제1항에 따른 등록대상동물의 소유권을 이전받은 자 중 제1항에 따른 등록을 실시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자는 그 사실을 소유권을 이전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자신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하여야 한다.

 

 제13조(등록대상동물의 관리 등)

① 소유자등은 등록대상동물을 기르는 곳에서 벗어나게 하는 경우에는 소유자등의 연락처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표시한 인식표를 등록대상동물에게 부착하여야 한다.

② 소유자등은 등록대상동물을 동반하고 외출할 때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목줄 등 안전조치를 하여야 하며, 배설물(소변의 경우에는 평상·의자 등 사람이 눕거나 앉을 수 있는 기구 위의 것으로 한정한다)이 생겼을 때에는 즉시 수거하여야 한다.

 

 제47조(과태료)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에게는 5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1. 제12조제2항을 위반하여 변경신고를 하지 아니한 소유자

2. 제12조제3항을 위반하여 변경신고를 하지 아니한 소유권을 이전받은 자

3. 제13조제1항을 위반하여 인식표를 부착하지 아니한 소유자등

4. 제13조제2항을 위반하여 안전조치를 하지 아니하거나 배설물을 수거하지 아니한 소유자등

 

동물보호법 시행령

 제20조(과태료의 부과ㆍ징수)

법 제47조제3항에 따른 과태료의 부과기준은 별표와 같다.

[별표] 과태료의 부과기준(제20조 관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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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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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두 사람이 있다. 정윤회와 조현아. 박근혜씨와 특별한 관계라는 루머부터 대한민국 국정을 농간한 십상시라는 소문까지, 정윤회 게이트는 대한민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이로 인해 MB정부 사자방에 대한 이슈도 모두 사라졌다. (MB는 정말 천운을 타고난 듯) 최근 정윤회보다 더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이다.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 부사장은 지난 5일 뉴욕 JFK발 인천행 대한항공 KE086 항공기 1등석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 활주로 이동하던 시간 승무원이 조 부사장에 건넨 견과류 한 봉지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봉지째 건넨 것이 문제였다. 조 부사장는 "무슨 서비스를 이렇게 하느냐"며 승무원을 혼낸 뒤 승무 사무장을 불러 매뉴얼을 따져 물었다. 또한 사무장이 매뉴얼을 찾느라 태블릿 PC를 조작하는 과정에 시간이 지체되자 이동중이던 항공기를 돌려 게이트에 사무장을 하기시켰다. 이 사건은 일명 '땅콩 회항'이라 불리며 국내 언론은 물론 해외의 언론까지 소개되며 국가 망신을 시켰다.

 

  이후 사건이 커지자 대한항공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켰다. 사과문에 조현아 부사장의 책임은 빠지고 온통 변명과 사무장에 대한 질책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문제의 본질을 전혀 잘못 짚었다. 문제의 핵심은 견과류를 봉지째 주는 것이 규정상 맞냐 틀렸냐가 아니다. 승객 자격으로 탑승했던 조현아 부사장이 '램프 회항'을 지시하고 담당 사무장을 하기시킨 것이 적절한 조치인가 하는 점이다. 


  하기는 단순히 버스에서 한 명이 하차하는 것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기한 인물이 어떤 물건을 놓고 내렸는지 알 수 없다. 테러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하기하게 되는 경우에는 모든 승객이 하기하여 소지품을 다시 점검해야한다. 참여연대는 이 건과 관련하여 조현아 부사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사과문대한항공 사과문 전문

 

  사과문 발표에도 여론이 잠잠해지지 않자 조현아 부사장은 사퇴결단(?)을 내렸다. 조현아 부사장은 지난 9일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늬만 사퇴라는 비난이 잇따랐다. 대한항공 부사장이라는 직위와 자회사 직책 3개는 유지하면서 대한항공에서 맡고 있던 일에서 잠시 쉬겠다는거다.


  MBN의 단독 보도로 대한항공에서 유출자를 색출하기 위해 승무원의 카카오톡까지 검열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관리자급 승무원에게 일괄적으로 메세지를 보내 입단속을 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변명과 타인에 대한 질책으로 점철된 사과문, 무늬만 사퇴, 직원들에 대한 입단속까지. 대한항공의 '사과'가 '조롱'으로 밖에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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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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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소한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인기리에 방영중인 미생에서 장백기가 장그래에게 절차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며 던진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약속을 그대로 믿고 이행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 받는 경우가 종종있다. 이번 서울시 유치원 중복지원 취소 소동만 봐도 그렇다.

미생 장백기"최소한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최근 몇년간 유치원 입학 경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되어왔다.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를 원하는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친척들을 총 동원, 최대한 많은 유치원 추첨현장에 출동했다. 이로인해 경쟁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고 그렇게 하지 않은 학부모들이 피해를 입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서울시 교육청은 유치원 중복지원을 막는 유치원 원아모집 개선안을 내놓았다. 사립유치원을 가··다군, 공립유치원을 가·나군으로 나누어 최대 4곳의 유치원에만 지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중복지원으로 합격 할 경우 입학을 취소하겠는 것이다.

유치원 신입원아 추첨

 

  개선안은 많은 학부모의 공감을 얻었지만, 아쉬움도 남겼다. 우선 시행하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다. 유치원의 군별 배치를 유치원 원장의 선택에 맡겨 두니 가군 쏠림현상이 생겼다. 서울시 교육청은 부랴부랴 위치를 주요기준으로 군별로 재배치하는 수정안을 내놓았다. 게다가 서울시 교육청의 '중복지원 입학취소' 경고에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중복지원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학부모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장관까지 나서서 혼란을 가중시키니 일부 유치원들은 '지원자 정보를 교육청에 넘기지 않겠다'며 학부모들의 중복지원을 부추겼다. 교육청은 명단을 분석해 중복지원 여부를 밝혀내겠다지만, 일부 유치원들은 학부모가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핑계로 명단 제출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문제는 원아 모집 실패를 걱정한 소위 '비인기' 유치원에서 심각하다. 반면, '인기' 유치원에서는 학부모를 상대로 갑질을 하고 있다. 추첨에 당첨된 사람들 중 종일반 원아 부모들은 따로 대기 번호표를 뽑으라고 한다. 유치원이 자체적으로 입학 지원을 취소하려는 사례도 있다.

 

  이런 사태를 두고 많은 언론들이 서울시 교육청의 탁상행정을 꾸짖는다. 일부 보수매체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초보행정이 대혼란을 불러왔다고 연일 까대고 있다. 물론 이번 서울시 교육청의 일처리가 깔끔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정책에 논란의 불씨를 지핀 것은 황우여 장관이고 기름을 얹은 것은 일부 학부모들과 유치원 원장의 이기심이다. 언론은 여기에 부채질을 해댔다.

 

  우리의 준법정신은 세계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는 매번 불거지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탈법 행위 때문이다. 이들은 법을 지키지 않으며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 괜찮다'고 자위한다. 편법이라는 단어를 동원하며 자신들의 부끄러운 행위를 처세술 혹은 총명함으로 정당화 한다. 법은 완벽할 수 없다. 어느 나라 법이라도 구멍은 있다. 준법 정신이 강한나라들은 이런 법적 허점을 이용해 부당이득을 편취하는 사람들을 강하게 처벌한다. 우리나라 같은 준법 정신 후진국에서는 '도덕적인 문제는 있을 수 있으나 법적인 문제는 없다'는 말로 법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고 파고드는 쥐새끼(특정인을 염두에 둔 건 아님)들을 풀어준다.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에서, 유치원은 교육부에서 관리한다. 어린이집은 보육이지만 유치원부터는 교육이라는 취지다. 교육의 일선에 있는 유치원 원장들의 자성을 촉구한다. 교육자로서의 본을 보이기 바란다. 최소한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바보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나.

 

참조

[오마이뉴스] 합격 공 뽑은 어린이에 "네가 금손이로구나"

[한겨레] 추첨 합격해도 걱정..유치원의 도 넘은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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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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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방송된 무한도전에서는 극한 알바 두번째 이야기가 그려졌다. 유재석과 차승원은 탄광으로 보내졌고, 정형돈은 굴까기 알바를 했다. 정준하는 텔레마케터로 변신했고 하하는 물류센터에서 택배 상하차 알바를 경험했다. 



  방송을 보며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분들 덕에 우리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는구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홈쇼핑을 통해 손질된 생굴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정형돈이 이미 손질한 굴이 포장되어 있다. 정준하가 전화를 받고 주문을 넣는다. 하하의 수고를 거쳐 싱싱한 굴이 상하지 않고 집까지 배달된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유재석과 차승원이 캐낸 석탄이 화력발전소에서 전기에너지로 변환된 덕분이다.


  이렇듯 멤버들이 체험한 모든 알바가 필요한 일이지만 필자는 하하가 경험한 택배 물류센터 알바에 자꾸 눈길이 갔다. 아마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산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인 중 택배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나머지는 세 직업은 대중적인 알바라고 보기 힘들다. 탄광 광부를 알바로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굴까기 역시 지역에 한정된 직업이다. 텔레마케터는 알바보다는 정규직이나 계약직 사원을 뽑는다. 반면에 물류센터 상하차의 경우 알바 구인 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건씩 구인광고가 올라온다. 상시모집을 하는 곳도 많다.



  하지만 사람은 항상 부족한 것 같다. 방송 중 '인원이 부족하다'는 하하의 절규에 일하던 분은 '여기 오늘 한 사람 더 온 거'라 답한다. 평소에는 1명이 트럭 한대를 책임진다는 것이다. 쉴틈이 없이 일을해도 끝이 날 줄 모른다. 상식적으로 노동강도가 이렇게까지 강하고, 인원이 부족하다면 돈을 더 주고라도 사람을 더 뽑아야한다. 하지만 경험상 회사는 업무에 지장이 없을 최소한의 인력만 유지할 것이다. 노동자가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최대한 부린 만큼 회사에는 이윤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당일배송이라는 우리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누군가는 허리 펼 여유도 없이, 화장실 한 번 갔다올 휴식시간조차 없이 무거운 택배상자를 올리고 내리고 있었다. 필자가 따뜻한 실내에서 앉아 키보드를 두들기는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물류센터에서 체열으로 추위를 이기며 고된 일을 하고 있다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이 든다.



  택배사업자들의 욕심만 탓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택배 단가가 턱없이 싸다. 택배단가는 1997년에 1건 당 4000원이었으나 지금은 2500원 아래로 내려간 상황이라고 한다.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다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셈이다. 단가가 떨어지다보니 도산하는 기업도 속출한다. 2006년 31개였던 택배사업자는 8년만에 절반 수준인 16개로 줄었다. 그나마도 업계3강과 우체국 택배의 시장 점유율이 70%에 육박한다니, 중소택배 업체의 수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택배업 시장이 이렇게 힘들어진 원인을 업계는 과열 경쟁 때문이라 진단한다. 2000년대 들어 온라인 쇼핑몰들이 성황을 이루며 업체 유치를 위해 제 살 깎아먹기식으로 경쟁을 했다는 것이다. 유통 물량은 늘었지만 오히려 택배업 종사자들의 처우는 나빠진 상황이다. 


  소비자들에겐 책임이 없을까? 필자도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를 때 고려하는 조건 중 하나가 배송비다. 만원짜리 물건을 사면서 배송비 2500원이 발생하면 왠지 손해보는 것 같다. 사실 배송비는 지불하는 것이 마땅하다. 오프라인에서 물건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상점을 방문하게 되면 우선 시간이 소비된다. 구매하려는 상품이 동네 상점에 없다면 교통비까지 지불해야한다. 계산을 해보면 배송비 2500원을 결제 해도 소비자는 이익이다. 그런데도 그 2500원이 아깝다. 물론 무료배송을 하는 경우에도 쇼핑몰에서는 택배회사에 배송비를 지불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배송비를 부담하지 않으려 할수록 택배업계의 큰 손님인 온라인 쇼핑몰은 택배 단가를 낮추려 할 것이다. 나에게 돌아오는 작은 이익이 누군가에게 돌아가야할 정당한 대가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덤.

  택배 조금 늦어도 득달같이 전화하지 않아야겠다. 텔레마케터들과 통화할 때 상냥하게 대하고, 통화가 끝날 땐 감사의 표시를 해야겠다. 편리한 생활은 모르는 곳에서 고생하시는 분들의 노고 덕분임을 기억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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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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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처구니 없는 일이 또 터졌다. 현대·기아차에 조향장치와 제동장치를 납품하는 경기도 안산의 남양공업이 최근 전라도 출신 배제 채용 공고를 올린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남양공업에서 해마다 공개 채용 때 이용하는 사이트가 있지만, 이번에는 생산 업무를 담당하는 사원 2명을 채용하는 게 목적이라서 협력 업체 중 한 곳인 인풍글로벌에 의뢰했다. 그런데 그곳에 입사 2개월인 신입사원이 의욕에 가득차 여러 업체의 모집 요강을 살펴보고 취업 준비생 카페 등에 올라온 댓글도 모아서 정리를해서 알바몬에 올리는 과정에서 실수(?)로 '전라도x'라는 문구가 들어갔다고 한다. 남양공업은 이번 일에 대해 "채용 의뢰를 맡긴 아웃소싱 업체 중 한 곳의 신입 직원의 혼선으로 벌어진 실수"라며 사이트에 사과문을 올렸다.

전라도 출신 채용불가

 

  요즘 무슨 일만 있으면 개인적 일탈이고 실수라고 하는 탓에 피곤하지만 이번 일은 남양공업이나 인풍글로벌의 문제가 아닌 신입사원의 잘못임이 확실해 보인다. 현기차에 납품하며 800명 이상의 직원이 일하고 있고, 그 중 10퍼센트 정도의 인원이 전라도 출신인 중견기업에서 공고에 저런 말도 안되는 문구를 넣었다는 사실은 믿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채용 과정에서 남모르게 전라도 출신들을 배제 할 수도 있는데 이런 무리한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적어도 우리 사회가 그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신입사원의 실수라고 보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공개가 된 것은 직원이 의도치 않은 실수인지 모르나 실수로 '전라도x'라는 문구를 넣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인풍글로벌의 권혁찬 팀장은 신입사원이 여러 업체의 모집 요강을 보고 취업준비생 카페 등에 올라온 댓글을 보다 실수로 넣었다고 해명했다. 그가 봤다는 모집 요강과 취업준비생 카페는 일베가 아닐까 하는 강한 의구심이 든다. 자신은 일간베스트가 일베인지도 몰랐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얼마나 있을 지는 모르겠다.

 

  이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하필 전라도인가'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차별이라고 하면 제1순위가 전라도이다. 경상도 차별이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 전라도가 차별은 그 뿌리가 박정희와 산업화로부터 시작된다. 박정희는 산업화로 나라를 부강하게 한다는 미명 아래 농촌을 파괴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래야 산업화에 필요한 값 싼 인력이 도시로 몰려들어 산업화를 손쉽게 이룩할 수 있으니. 게다가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전라도는 개발에서 소외되었다. 혹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이라는 작은 차이로 뭐가 크게 바뀌었겠냐고 하겠지만 시작단계에서 조금의 차이는 무시하지 못한다. 정책적으로 소외되는 지역을 계속 챙기지 않는 이상 조금이나마 있는 자원이 모두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그런 방식으로 흘러갔다.

 

  이런 정책의 흐름과 전라도 차별은 전두환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꽃을 피운다. 1980년 5월 18일, 일베忠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전두환은 국민을 지키라고 세금으로 사준 군화와 총으로 광주의 국민들을 무참히 짓밟았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에 따르면, 전두환과 그를 따르는 미치광이들이 "광주에서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지역 시민들이 계엄군의 폭력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당시 광주에서 죽어간 이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조금 더 용감했던 죄로 피를 흘렸다.

 

  필자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모두가 그 날 광주에서 피흘리고 목숨을 빼앗긴 이들과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부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항상 주장한다. 하지만 일베忠들은 민주주의에 무임승차 하면서도 그들을 모욕하고 조롱한다. 어쩌면 타인에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가기 보다는 그들이 잘못한 것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편한 선택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전라도 사람들이 이런 차별에 유별나게 군다는 얘기도 한다. 별 일 아니고 별 문제 아닌 것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아니냐는 거다. 필자는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그럴 만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남향우회를 예로 들며 전라도 사람들은 자기들 끼리만 뭉친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온 세월을 생각할 때, 향우회를 조직하여 자신들 끼리 뭉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기 전 필자가 사는 동네에서는 "대중이가 정권 잡으면 경상도는 박살 난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실제로 나라를 박살 낸건 그들이 사랑하는 영삼이었음에도 모든 잘못은 김대중 대통령의 몫이 되기 일 수였다. 그들은 두려웠던 것 같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누려오던 것들을 김대중의 당선으로 호남에게 빼앗길까봐.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고 자신들이 전라도를 차별 했듯, 김대중이 당선되면 경상도를 차별 할 것이라 생각했던거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계속되는 전라도에 대한 경멸은 정신병 외엔 설명할 길이 없어보인다.

 

  예전에 비해 전라도 차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요즘들어 다시 전라도에 대한 차별이 세지고 있다. 이는 미국에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장기화 되는 불경기에 희생양이, 자신의 화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비겁하게 전라도 출신, 여성, 장애인, 또는 (백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자신의 불만의 책임을 지운다. 이들을 사회적으로 없앨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그런 발언을 하는 사람을 주위에 보면 자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 괜히 내 일도 아닌 일에 휘말리고 싫다고 침묵하는 순간 그들에게 동조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참조

[한겨레] '전라도 출신은 안돼' 채용 공고, 왜 나왔나 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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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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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경영에 대한 포스팅은 어제 한 번 (MB 구속? 박근혜 부정선거 수사?? 허경영 사기공약 변천사) 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쓰게 됐다. 우선 19대 대선 공약이라고 인터넷에 퍼진 페이스북은 허경영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허경영이 사기꾼이 아니라고 우기는 자들에 한마디 하고 싶어서다. 5년전에 방영된 그것은 알고싶다 신드롬 뒤에 숨겨진 진실, 허경영은 누구인가 1,2 편을 다시 봤다. 허경영을 추종하거나, 웃고 넘어가면 되지 생각하는 사람들은 찾아서 보길 바란다.



  허경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우선 기레기들 이야기부터 털어보자. 아무리 언론이 죽은 시대, 클릭수만 올리려는 기레기들이라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야지. 어제 뉴스 페이지를 도배한 허경영 19대 대선 공약은 타인이 도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언론들이 최소한의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실시간 검색어에 맞춘 기사를 올린 것이다.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이 맞는지, 직접 쓴 공약이 맞는지 전화 한 통이면 확인 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가하면 오늘은 허경영 대선 공약 도용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허경영의 공약이라 잘못 알려진 가짜 공약에 네티즌이 열광하는 이유와, 이런 현상이 기성 정치인들에 보내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제대로 분석하는 언론은 없어 보인다.


  5년 전 허경영 신드롬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위험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2009년 방영된 그것이 알고싶다 허경영편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아직 안 본 사람은 꼭 보시길 권한다. 방송을 본 뒤에도 이 방송이 조작됐다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어느 부분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댓글 달아주면 고맙겠다. 그냥 무작정 조작됐다고 우기지 말고. 1편 방송이 나간 뒤 허경영은 명예훼손 혐으로 제작진을 고소하겠다 강경하게 주장했다.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오히려 후속편을 제작·방영했다. 변호인을 고용,고소를 준비하고있다던 허경영 측은 5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소를 하지 않았다. 허경영 본인도 방송 내용 인정하는 셈인데, 조작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뭔지.


  방송에선 인쇄비 명목으로 5000만원을 빌려주고 10년째 받지 못한 박씨, 허경영의 선거 자금을 위해 아파트를 담보로 사채까지 빌려 6000만원을 냈다는 김노인, 허경영의 기탁금 5억원을 냈다는 강씨 등 많은 피해자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박씨는 "대선에 나왔기 때문에 공인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설마 이런 거짓말을 할까 생각했던거죠"라며 그의 거짓말을 신뢰한 이유를 설명한다. 한편 김노인은 "그 당시는 대통령 되면 다 (돈이) 나올 줄 알았죠. 그때는 아주 인기가 굉장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필자가 허경영의 황당 공약이나 기행에 호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우리의 환호 한 번이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의 신뢰도를 올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좋아요·RT 버튼 클릭 한번으로 나도 모르게 허경영의 사기를 돕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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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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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시간 검색어에 낯익은 이름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허경영. 그가 MMORPG 'UD 온라인'의 홍보모델로 활동하며, 올해 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19대 대선 공약이 재조명 받고 있다. 기레기들이 '그의 대선 공약에 네티즌들은 황당하지만 속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기사(?)를 양산해내며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씁쓸한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때는 2009년, 당시 예술대학 간부로 일하던 친구가 허경영을 섭외했다며 자랑한 적이 있다. 진보정당 당원으로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던, 평소 신뢰하던 친구였던터라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다. 그 친구는 허경영을 연예인 정도로 치부했고, 그 결과 부모가 힘들게 벌어서 내준 등록금의 일부가 사기꾼의 호주머니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허경영의 대선 공약들을 살펴보기 전에 한마디만 하자면, 그에게 환호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결국 사기꾼일 뿐이다. 실제로 허경영에게 후원금을 뜯긴 피해자들도 많다. '상식적으로 저런 말을 믿는 사람이 어딨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누군가는 자신이 신이라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의 말도 믿는다. 사람은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다. 우리의 환호가 사기꾼의 신뢰도를 높여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경각심을 가져야한다.


  허경영은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엉뚱한 후보로 네티즌의 조명을 받았다. 각종 파격적인 공약들과 축지법·공중부양 등 기괴한 주장들이 큰 반향을 얻어낸 것이다. 허경영은 17대 대선에 깜짝 등장한 인물은 아니다. 1987년 신민당(김대중·김영삼과 관계 없는 이름만 신민당)의 부총재를 지낸 그는 13·14대 대선에 출마할 뜻을 밝혔지만 기탁금 때문에 포기한다. 이후 15대 대선에 출마했다. 당시 주요 공약을 살펴보자.


  1.  정치혁명 : 국회의원 제도 폐지, 남녀동수의 직능국회의원 실시

  2.  조세혁명 : 직접세를 폐지, 간접세로 전환

  3.  교육혁명 : 대학명칭 폐지, 대학 지망자 전원 입학

  4.  정신혁명 : 대통령명칭 폐지, 국민대표로 변경

  5.  국방혁명 : 핵주권, 미사일주권 회복

  6.  도덕혁명 : 조선왕조 부활

  7.  환경혁명 : 담배생산판매 금지

  8.  행정혁명 : 경기도를 서울 특별시로 합병

  9.  경제혁명 : 중소기업 무담보 장기저리융자

  10.복지혁명 : 실업자 취직 국가 책임제


  황당함의 정도로 따지면 화제가 된 17대 대선 공약보다 더하다. 하지만 크게 이슈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후 17대 대선에 출마한 그에게 네티즌들은 환호했다. 네티즌은 그를 '허본좌'라 칭했다. 이런 현상은 두 가지 측면으로 이해된다. 첫째, 인터넷의 발달로인한 하위문화를 영위하는 층의 유머 코드와 맞았다. 둘째, 정치 불신이 냉소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명박의 독주로 싱겁게 끝난 17대 대선의 투표율은 63%, 역대 최저치다.



  1.  60세 이상 노인에게 70만원의 건국수당지급 

  2.  결혼시 남녀 각 5,000만원 국가에서 지원 

  3.  출산시 양육비 지원 3,000만원 

  4.  수능폐지·내신제폐지·고교평준화폐지 - 학생들을 시험에서 해방

  5.  국회의원 의석조정,각종예산낭비성 선거 폐지 

       - 국회의원 100명 무보수 명예직, 지자체의원 4000여명 무보수 명예직

  6.  모든세금을 소비세 1가지로 

       -전기·전화·수도·가스·핸드폰 요금을 각각 5만원까지는 무상으로 공급

       -직접세를 모두 간접세로 바꾸어 결국 소비를 많이 하는 부유층이 세금을 더 많이 냄

       -토지세,재산세,종토세,상속세,양도세 등 폐지로 상류층도 혜택을 많이 봄

  7.  실업문제 해결과 중소기업육성 

       -국민실업을 해결하기위한 허경영뉴딜정책 즉 산삼뉴딜과 새마을뉴딜 실시

       -1000만 실업자의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종사 젊은이들 월 100만원의 생필품쿠폰지원

       -중소기업 5년이상근무시 3억원의 무담보·무보증·무이자의 창업자금 지원

  8.  정당제도 폐지 

       -무정당· 무국경·무차별의 중산주의 시대가 한반도에서부터 실시되어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

  9.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하여 안보와 경제를 살림 

  10.수도 확대와 경제부양책 

       -경기도 전체를 서울특별시로 확대

       -미래 아시아연방통일의 준비를 하며 새만금에 10,000여개의 은행을 유치

       -새만금,목포,광주,여수,광양,진해,부산을 잇는 호남남해안 관광벨트 개발

       -세계 제1의 금융도시와 관광벨트로 국민소득 5만불 시대를 열어갈 것 

  11.신용불량자 전원 구제 

  12.사생활 보호 및 청소년 보호 

       -국민 사생활 보호를위해 전과와 이혼기록을 모두 호적에서 삭제하는 대사면을 실시

  13. IMF 어음 피해자 구제대책 

       -어음보험공사를 설립 

  14.네트워크 기업 보험제 도입 

  15.상속세 폐지로 국내기업 경영권방어 

      -상속세를 폐지하여 국내기업의 지분을 노리는 외국거대자본으로부터 한국대기업을 지킴

  16.금융실명제 폐지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폐지하여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국내자금유출을 방지

  17.화폐디자인 변경 

      -화폐변경을 실시하여 지하자금 900조를 회수

  18.국가 유공자 보상 

      -6.25,월남참전용사에게 3억원 지급과 매월 30만원 수당지급

      -군 징병제도를 점차적으로 폐지, 모병제 전환

      -기술첨단 군대로 개편하며, 예비군 훈련은 폐지하고 편성은 그대로 유지 

  19.장애인 권리향상 

  20.급식제도 개혁 

      -친환경 제품으로 끼니당 약3000원의 공급가로 국가가 100%부담


  허경영의 발언을 지지하는 네티즌들도 대부분은 그를 황당한 연예인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일부는 진심으로 그를 지지하기도 한다. 설상가상 모병제 전환, 무상급식 등의 의제를 허경영이 먼저 주장했는데 기존 정치권에서 그를 허언증 환자로 몰아가고 은근슬쩍 공약을 가로채갔다고 믿기도 한다. 축지법, 아이큐 430 등의 허황된 주장을 미루어보아 그는 허언증 환자가 맞다. 그리고 모병제 전환, 무상급식 등은 진보진영에서 오래전부터 고민해 만들어 온 의제였다. 실현에 대한 고민 없이 내놓은 공약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UN 본부 이전과 같은 허황된 주장이 더 부각되었지만, 필자는 경제 공약이라 내놓은 것을 집중해 봐야한다고 본다. 직접세를 거두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모두 간접세로 돌리면 소비를 많이 하는 부유층의 세금 부담이 높아진다고 한다. 조금만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슨 헛소리를 하는가 싶을 것이다. 간접세의 비중이 높을수록 소득 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극심해 질 것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토지세,재산세,종토세,상속세,양도세 등의 폐지로 상류층에 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세수가 줄어들 것은 뻔해보이는데 결혼하면 남녀 각 5000만원·출산양육비 3000만원·참전용사 3억+월 30만원·건국수당 월 60만원 지급, 무상 급식, 모병제 전환, 중소기업 지원 등 솔깃하지만 재정 계산이 빠진 공약을 내세웠다. 머쓱했는지 화폐 개혁을 통해 900조에 달하는 지하자금을 회수한다고 한다. 허경영의 공약을 복지공약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런가하면 19대 대선 공약이라고 내놓은 것을 보면 자신의 발언에 환호하는 타겟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1.  이명박 구속 (사랑의 열매 1조 기부시 면책)
  2.  박근혜 부정선거 수사 (결혼 승락시 면책)
  3.  새누리당 해체 및 지도부 구속 (소록도 봉사 5년시 집행유예)
  4.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5.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건국수당 매월 70만원씩 지급(어버이 연합 제외)
  6.  결혼수당 남녀 각 5000만원씩 지급 (재혼시 1/2지급, 삼혼시 1/3)
  7.  출산수당 출산시마다 3000만원씩 지급
  8.  국회의원 출마자격 고시제 실시 - 국회의원 1/3로 감원
  9.  정당정치 해산하고 국회의원들이 무보수 명예직으로
  10.몽골과 국가 연합
  11.바이칼 호수 서울시 공급
  12.만주땅 국고 환수
  13.독도 간척사업으로 일본 근해 500미터 앞까지 영토 확장


  허경영이 19대 대선 공약이라고 내놓은 것의 핵심은 1~3번이다. 이명박 구속, 박근혜 부정선거 수사, 새누리당 해체 및 지도부 구속. 상상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이 상상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상당하다. 네티즌의 환호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 해도 이명박근혜 정권을 심판하지 못할 것이라는 '야권의 무능에 대한 무한 신뢰'가 바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결혼 승락시 면책이란 구절은 화제가 되길 바라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지만 환호해선 안된다. 17대와 19대 공약을 봤을 때 확실한 것은 그는 듣고 싶어하는 말을 들려줄 줄 아는 사기꾼이다. 그는 광대가 아니다. 현 정치 체제를 조롱하는 광대인 척 하면서 결국 누군가의 돈을 갈취하기 위해 유명세를 구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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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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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호 화백의 '미생'을 원작으로 만든 tvN 드라마 미생이 인기 폭발이다. 화제성에서는 물론 시청률에 있어서도 5퍼센트가 넘는 시청률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인기의 비결에는 탄탄한 원작, 배우들의 열연, 연출자의 능력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비정규직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위로(그게 무책임한 위로일지라도)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 방영 된 14화에서는 계약직 사원 장그래의 고민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연초라 정규직 사원들은 연봉계약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지난해 성과급이 적다고 투덜대기도 한다. 하지만 계약직 사원 장그래는 해당사항이 없다. 설 명절을 맞아 회사에서 정규직 사원들에게는 스팸 세트를 계약직 사원들에게는 식용유 세트를 선물했다. 많이 쳐줘야 5000원 짜리 식용유 세트와 4~5만원 짜리의 스팸 세트는 그 가격 차이만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회사에 비정규직 사원들에게 스팸 세트를 사줄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비정규직 사원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낙인 혹은 꼬리표일 뿐이다.

미생 장그래


  결혼관에 대해서 묻는 김동식 대리와 하선생의 물음에 대한 장그래의 대답은 가슴을 후벼판다. "전 계약직 인데요." 몇해 전부터 3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했다. 연애, 결혼, 육아를 포기한 세대. 부동산 값은 폭등을 해서 내집 마련은 커녕 전세집 마련도 힘든 상황이다. 지방에서 조차 소형 아파트 전세가가 억대를 넘어가는 실정이니 서울에서는 부모가 왠만큼 부자가 아닌 이상 전세집 마련은 꿈도 꾸지 못할 형편이다. 그렇다고 월급이라고 쥐꼬리 만큼도 못 받는 비정규직이 월 30~40만원이 넘는 월세를 부담해가며 살아 갈 수 없으니 결혼을 포기 할 수 밖에. 결혼에 대한 물음에 계약직이라는 동문서답이 현답이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미생 장그래


  계약직 사원 신분으로 고민하던 장그래는 오상식 차장에게 묻는다. "이대로만 하면 정직원이 되는거죠?" 오차장은 이에 대해 대책 없는 희망 대신 단호하게 안될 거라고 답한다. 기업에서 계약직 사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거의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IT 영업부에서 일하던 계약직 사원도 회사에서 재계약을 하지 않아 회사에서 나갔다.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중소기업중앙회 계약직 여사원의 죽음과 영화 카트로 많이 알려진 일명 쪼개기 계약이 이미 전국적으로 많은 사업장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렇게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문제가 되자 박근혜 정부에서 내놓으려는 대책이라는게 기간제 노동자를 현행 2년에서 3년까지 쓸 수 있게 하자는 거다. 이게 비정규직 보호법인지 기업보호법인지 모르겠다.

미생 장그래


   드라마를 보고나서 귓가에 장그래의 작은 외침이 맴돈다."정규직 계약직 신분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계속 일을 하고 싶은겁니다. 우리... 같이... 계속..." 사회는 우리를 계속 갈라놓는다. SKY와 비SKY로, 인서울과 지방대로, 지거국과 지잡대로, 대졸과 고졸로,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저들은 우리가 뭉치면 무서운거다. 그래서 서로 반목하고 시기하게 우리를 나눈다. 힘없는 우리들이 저들과 싸울 방법은 하나다. 우리, 같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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