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자고로 화려한 볼거리를, 배꼽 빠지는 웃음을, 아랫도리 뻐근한 노출신을, 눈물 쏙 빼는 신파를, 때론 가슴 웅장해지는 국뽕 한 스푼을.

어쨌든 내 시간을 죽여줘야 제맛.

138분의 불쾌한 경험. 단 한 장면도 웃을 수 없으며, 일말의 카타르시스 조차 허락하지 않는 결말.

영화가 재미 없으면 접근성이라도 높아야지. 마케팅을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얼마 안 되는 개봉관은 그마저도 아침 이른 시간이나 밤늦은 시간. 대중의 외면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관람한 영화관에서는 밤 9시 20분 회차가 유일했으며, 관람객은 나 포함 넷이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이 자연의 섭리 아니던가.

이런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별점이 9.6점이라고? 사회를 변화시킬 영화라고?

호들갑 떨지 말라. 노오력 하지 않은 패배자들의 투정일 뿐. 당신의 피, 땀, 눈물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경쟁에서 도태될지 모르지만, 그래서 뭐?

어차피 당신들과는 상관 없는 일 아닌가. 당신이 다음 소희가 될 일은 없을 테니.

그러니 제발 행동하려 하지 말라. 시간, 돈 들여 영화 보러 가지 말고, 주변에 추천하지 말고, 블로그에 리뷰하지 말고, 상영관을 더 확보해 달라고 항의하지 말라.

그저 가만히 있으라.

그럼, 이제 리뷰 시작.


스포일러가 많이 포함될 예정이지만, 어차피 영화를 보지도 않을 당신들에게 경고 따윈.


전반부는 소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실업계 고등학생 소희는 연습실에 혼자 남아 반복 연습할 정도로 춤을 좋아하는 소녀. 인터넷 방송을 하는 친구에게 시비를 거는 건장한 남성들에게 직설적으로 따져 물을 정도로 당찬 소녀다.


애견 미용학과에 재학중인 소희에게 현장실습의 기회(?)가 주어진다. 담임 선생이 대기업 일자리라며 온갖 생색을 낸 이 직장은 대기업 하청 콜센터. 표준계약서와 다른 부당한 이면계약서를 내밀며 사인하라고 할 때, 그런 부분들을 감독하고 알려줘야 했던 선생은 그 자리에 없었다. 학생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현장이 어떤지 확인하지 않고 업체 평가서에는 모두 좋은 점수를 준다.

소희가 배정된 팀은 해지 방어팀. 상품 해지를 요구하는 고객들에게 위약금, 추가 혜택 등을 제시하며 최대한 해지를 막는 업무를 하는 팀이다. 첫 업무 교육으로 사수에게 들려온 콜을 옆에서 듣게 된 소희가 마주한 것은 문자 그대로의 쌍욕. 모니터를 하다 뛰쳐 나온 이준호 팀장은 놀란 소희를 다독이는 것 말고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이준호 팀장의 캐릭터가 좋았던 건, 그가 슈퍼히어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 부장 같은 환타지 속 어른이 아닌 때로는 현실에 순응하고, 때로는 불합리한 일을 다그치고 강요하는 그저 그런 현실의 어른. 그럼에도 개선하려는 한 걸음을 걷는 어른. 그 역시 을의 위치에서 고객에게 항상 죄송했지만, 성희롱 하는 등 선 넘는 고객에게 욕을 하고 전화를 끊은 소희를 나무라지 않고, 심한 욕을 하는 고객에게 대신 언성을 높여 싸워주는. 인센티브 지급을 막거나 지연하는 회사를 대변하는 한편, 부당함을 회사에 투서하는.

그런 이준호 팀장이 어느 아침 자신의 차 안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회사 내 불합리한 문제를 고발하는 유서 한 장과 함께. 이준호 팀장이 자살한 당일, 본사 직원들과 함께 등장한 이보람 팀장. 그녀는 어수선한 직원들에게 당장 콜을 받을 것을 종용한다. 다른 센터에 폐를 끼치는 행위라며. 이어 하나 둘 들리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이준호 팀장의 유서는 그대로 묻힌다. 도박, 여자 문제 등 거짓 루머, 그리고 그 역시도 관리자로 불합리한 행위에 가담한 가해자라는 이유로. 회사는 직원들이 이준호 팀장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막고, 얄팍한 성과금을 내밀며 유서 내용에 대해 함구하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받는다. 소희는 유일하게 장례식장을 찾은 직원이었고, 각서에 사인한 마지막 사람이었다.

새로 부임한 이보람 팀장은 이준호 팀장과 여러모로 달랐다. 부당한 고객에게 맞서주지도, 대신 사과하지도 않는다. 메신저를 통해 압박을 할 뿐. 모든 것이 숫자로 평가되며 그 숫자가 진열되는 곳. 그 곳에서 이보람 팀장은 이준호 팀장보다 능숙하고, 능력 있는 관리자였다. 벽면에 붙은 숫자로 타 센터와 비교하고, 센터 내 동료들을 비교하며 성과를 올렸다.

소희는 이보람 팀장의 체제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식사 시간을 아끼고, 퇴근 시간을 늦췄다.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고객의 해지 요청에도 이를 악물고 새로운 상품을 소개할 정도로 일에 능숙(?)해졌다. 이준호 팀장의 사망 후 바닥을 찍던 성과는 어느새 1등까지 올랐다. 동료들의 시샘과 팀장의 교묘한 이간질로 다툼이 있었지만, 인센티브라는 이름의 숫자가 모든 걸 견뎌내게 했다.

그런데 월급통장에 찍힌 숫자는 회사의 약속과 달랐다. 소희는 고객의 해지 요구에 무조건 응하는 방식으로 태업한다.

해지 안내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따져 묻는 소희에게 팀장은 한 두달 지연되어 지급될 거라 달래지만 소희는 좀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다. 팀장은 소희의 가정형편을 들먹이는 등 모욕적인 언사를 했고, 욱한 마음에 소희는 주먹을 내질러 3일 무급휴가 징계를 받게 된다.

소희는 그 3일 동안 노력한다. 살아갈 방법을, 이유를 찾으려. 먼저 실습에서 복귀해 자퇴까지 한 친구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부모에게,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관심 없는 선생에게. 현장실습을 종료하길 원한다고. 이해를 구하지만 누구에게서도 답을 얻지 못한 소희는, 현장실습이 아닌 삶을 종료하기로 결심한다.


후반부는 유진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오랜만에 현장에 배치된 유진은 변사 사건 하나를 맡게 된다. 바로 저수지에 빠져 죽은 소희의 자살 사건이다. 자살로 사건을 종결하려던 유진은 소희가 일 했던 콜센터에서 얼마 전 이준호 팀장이 자살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그리고 묻는다. 소희의 죽음이 누구의 책임이냐고.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 정도로만 취급했던 업체에, 불법파견업체가 되어버린 학교에, 감독할 의무는 포기한 채 학생을 취업율이라는 숫자로 치환한 교육청에. 성과라는 숫자에 미쳐버린 사회에.

학생이 일하다 죽었는데 누구 하나 내 탓이라는 사람이 없어.

장학사는 유진에게 말한다. 정성평가를 할 수가 없다고. 정량평가를 통해 수치화 된 것만이 평가 대상이 된다고. 그래야 교육부에서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고. 이제 교육부를 쳐들어 갈거냐 조소한다.

소희의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온다.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그는 욱하는 성질 때문에 징계를 받았고, 택배 일을 하고 있다. 곧 다시 현장실습 현장으로 복귀할 거라는 그에게 유진은 당부한다.

또 욱하면 누구한테라도 말해. 나한테라도 해. 괜찮아.

다음 소희
“나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평점
9.6 (2023.02.08 개봉)
감독
정주리
출연
배두나, 김시은, 송요셉, 박윤희, 박우영


아래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들려준 팟캐스트 방송.



485a. 콜센터 건강노트(1):누가 칼들고 담배피우라고 협박했습니다 /김관욱
https://podbbang.page.link/bG8FPnHG4MhJNaeN9

485a. 콜센터 건강노트(1):누가 칼들고 담배피우라고 협박했습니다 /김관욱

사람입니다, 고객님(2022) 해설(1/3):흡연과 자본과 구로공단 -왜 의사를 그만두고 문화인류학자가 되었나 -군의관의 금연클리닉과 불평등에 대한 발견 -흡연과 스트레스와 사회/문화/정치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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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b. 콜센터 건강노트(2):붉은진드기 인생 /김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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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b. 콜센터 건강노트(2):붉은진드기 인생 /김관욱

사람입니다, 고객님(2022) 해설(2/3):상담센터 현장진단 -U형은 왜 자기자리 옆에 고깃집 냉장고를 설치했는가 -고객해지방어 상담실습을 하던 고교생의 사망사건 -빨간조끼와 쓰레기직업bullshit 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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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c. 콜센터 건강노트(3):Keep ya head up /김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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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c. 콜센터 건강노트(3):Keep ya head up /김관욱

사람입니다, 고객님(2022) 해설(3/3):몸을 되찾자 -하은씨의 이야기: 왜 왕따가 될까, 동료가 두려운 이유, 상사도 경쟁모드, 과일/커피/과자셔틀, 강요된 성상납,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정글, 나도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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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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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2015)

Assassination 
8.4
감독
최동훈
출연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정보
액션, 드라마 | 한국 | 139 분 | 2015-07-22


  개봉 5일만에 300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암살>. 가장 핫한 영화답게 괜찮은 자리는 이미 다 차버려서 두시간 반을 기다렸다. 처음엔 두시간 반이나 기다려서 봐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본 <암살>은 유난히 더웠던 하루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릴만큼 시원한 영화였다.




최고의 라인업 - 흥행은 이미 예견된 일

  <암살>은 <범죄의 재구성>, <타짜>, <도둑들> 등 연출하는 작품마다 흥행시킨 최동훈 감독이 제작·연출·각본을 맡았다. 거기에 최고의 흥행 배우 전지현·하정우·이정재가 주연을 맡았고, 오달수·조진웅 등 최고의 감초 배우들이 뒷받침 해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전지현 저격수

누가 더이상 이 누나를 CF스타라 무시하리(사진 = 네이버 영화)


순제작비 180억원으로 되살린 1933년 개성에서 초특급 액션

  1933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 분)은 김구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다. 그는 김구의 명을 받아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조진웅 분), 폭탄 전문가 황덕삼(최덕문 분)을 개성에 보낸다. 이들의 임무는 조선주둔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심철종 분)와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 암살. 반면 살인청부업자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분)은 이들 셋을 암살하라는 의뢰를 받고 뒤를 쫓는다. 그렇게 안옥윤, 염석진, 하와이 피스톨은 서로 다른 목표를 갖고 개성에서 만나게 된다. 이들 사이의 갈등, 숨겨진 비밀, 그리고 1933년 개성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스펙타클한 전투씬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암살.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 만세~(사진 = 네이버 영화)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같은 모습으로 살진 않았다.

  우리 선조들은 조국을 일제에 빼앗긴 채로 36년이라는 세월을 버텼다.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다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하나 뿐인 목숨까지도 내어 놓았다. 죽음이 뻔한 상황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 하지만 두려워도, 희망이 보이지 않아도 조국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버렸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이득을 위해 조국을 버렸다. 처음부터 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이완용 같은 매국노도 있다. 처음엔 독립을 부르짖다 일제치하가 길어지자 변절하여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황국 신민이 되어 전쟁에 나갈 것'을 부르짖은 지식인들도 있다. 그 중엔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도 버리고 일본에 견마지로(개와 말처럼 충성을 다하겠다)를 다하겠다는 혈서를 쓰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하여 일본군 장교가 된 다카키 마사오도 있다. 그들은 조선이 독립할지 몰랐기에 나라를 버렸다.


  하지만 이들은 해방된 조국에서도 반성은 커녕 떵떵거리며 살았다. 매국과 친일의 댓가로 손에 쥔 돈과 권력을 바탕으로 기득권을 강화했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서 고문하던 친일 경찰들은 이승만과 손을 잡고 반공 경찰으로 탈바꿈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 매국노들에게 수치를 당한 독립운동가 중 일부는 월북하였다. 남한에 남은 독립운동가들도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많은 독립운동가 자손들은 국가의 외면으로 가난한 처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친일파의 자손들은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데 말이다.


어이! 3천불! 우리 잊으면 안돼!

  영화는 픽션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이 땅에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는 조선이 독립할지 몰라서 친일을 했고, 누군가는 조선이 독립할 것이라는 신념에 목숨을 걸었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을 살 수 있는 건 이승만과 다카키 마사오 같은 기회주의자들 덕분이 아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쳤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덕분이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것이 조국을 빚진 우리의 최소한의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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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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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2009)

The Executioner 
8
감독
최진호
출연
조재현, 윤계상, 박인환, 차수연, 김재건
정보
드라마 | 한국 | 96 분 | 2009-11-05
글쓴이 평점  


무겁지만 가벼운, 가볍지만 무거운 이야기
 
  교도소의 이야기. 특히나 법정 최고형인 사형에 대한 논의를 주제로 삼고있는 만큼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리 무겁지도 그리 가볍지도 않았다. 어리바리한 신참 재경의 좌충우돌 하는 모습이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사형수 성환과 김 교위의 우정이 다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사형수와 교도관의 우정을 그리는 데 있어 두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우정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영화도 뻔한 이야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의 뻔한 우정이 눈물짓게 한다면, 인간에 대해 한 번 더 고민하게 만든다면 좀 뻔한 이야기인들 어떠할까?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우정에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사형수와 교도관도 그 위치를 떠나 인간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고 있다. 사람 셋을 죽인 범죄자란 사실이 믿기지 않는 성한의 선한 미소는 내 마음을 가볍게 하기도 했지만 묵직하게 만들기도 했다. 교도소의 목적이 교화에 있다면 성한 만큼 그 목적에 부합하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현실 문제에 있어 교도소의 효용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나지만 성한 같은 재소자들을 위해서라면 교도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교화란 것을 해서 인간다운 인간을 만든 뒤 교도소는 성한을 죽인다. 사형수에 있어선 교화라는 목적도 잊혀진 것일까?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봐요." 라는 한 인간의, 그 깊숙한 곳에서 울려져 나오는 목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배우 윤계상의 발견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윤계상은 전직 아이돌 가수일 뿐이었다. 의도적이진 않았지만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윤계상이란 배우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윤계상이 연기한 재경이란 인물의 관점에서 흘러가는 만큼 비중이 큰 역할이다. 그리고 배우 윤계상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채웠다고 생각된다.
  
교도관들의 인권
 
  이제껏 본 영화중에 교도관의 인권을 이야기하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수감수들의 인권에 대한 논의는 계속 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고용한 교도관들의 인권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그들에게 살인을 명한 국가는 그들의 파괴된 인권의 값을 칠 만원으로 매긴다. 타의로 행해진 살인 행위로 인해 교도관들의 인권이 파괴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다. 종호는 지워지지 않는 죄책감으로 몸을 긁고 향수를 퍼붓고 다니고 환청까지 듣는 상황에 이른다. 김 교위는 결국 일년 밖에 남지 않은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직을 한다. 김 교위가 같이 교도관을 했던 친구를 찾아간 장면은 그들이 어떠한 죄책감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마치며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낙태 이야기가 잘 마무리되지 못한 것 같다. 낙태도 살인이라는 보편적인 생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했다. 고민의 부족일 수도 있고 분량상의 문제일 수도 있다. 나는 분량상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면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빼고 교도관과 수감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조금 더 깊이있게 보여주는게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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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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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 (2014)

Cart 
9.3
감독
부지영
출연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디오, 황정민
정보
드라마 | 한국 | 104 분 | 2014-11-13
글쓴이 평점  



  영화 카트가 개봉한 오늘은 마침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몸을 불쏘시개로 산화한지 꼭 44년이 되는 날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단지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노동자이거나 노동자가 될 나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태일 열사의 외침이 44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슬픈 사실 때문이었다.


  수학능력 시험일이라 그런지 낮시간이었음에도 앳된 여학생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아마 엑소의 디오를 좋아하는 학생들이겠지. 스크린에 등장한 디오에 소리를 내어 환호하던 무례한 학생들이 어느 순간부터 영화에 몰입하더니, 이내 훌쩍인다. 영화관에 불이 켜진 후에도 움직일 생각을 않고 자리에 앉은 옆자리 여학생의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있다. 그 어린 눈을 보다 눈물이 돌아 괜시리 고개를 돌리고 일어섰다. 저 어린 학생들도 벌써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자본가의 초상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한정된 자본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면 잘못입니다. 우리나라의 현 실정으로 금리는 3부가 못 됩니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어떠합니까? 여기에 A, B 두 자본가들의 대화를 들어봅시다. 이 두사람은 생산공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A : B씨, 나는 올해 안으로 나의 재산을 현재의 2배로 만들 계획일세.

  B : (생략)

  A : 자, 그럼 우리 경쟁을 하세. 누가 빨리 달성시키는가를 말이오. 하하하


  전태일 열사의 수기중 일부분이다. 기형화 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기업은 이윤 증대를 위해 어떤 짓이든 한다. 자본의 속성이 그러하다고 인정하자.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인간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자본은 소수에게 몰려있지만, 투표권은 누구나 한 표씩 갖는다. 대의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대표로 선출된 자들은 다수의 권리를 지키는 편에 서야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 기업들이 근로기준법을 쉽게 어기는 근본적 이유는 국가가 제대로 감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규석 화백의 말을 빌자면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자본은 물론이고 정치 권력까지도 소수의 자본가들이 쥐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다. 조아리며, 눈치보며 주인을 섬기며 사는 것이 정답인지. 영화 속 노동조합 단체티에 새긴'함께 살자'라는 구호가 계속 눈에 밟혔다. 자본의 지배를 받는 우리가 저들과 싸워 이길 방법은 '연대' 밖에 답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저들은 항상 우리를 갈라놓으려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놓아 같은 노동자들끼리 반목하게 만든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단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줌으로 노조 가입을 방해한다. 혹은 회유책을 써서 분열하게 한다. 힘들어도 답은 연대 밖에 없어 보인다. 내 것을 빼앗길 때 우는 것은 아기들도 할 수 있다. 내 옆의 누군가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길때 분노하고, 함께 싸우는 것, 그들의 옆에 있어주는 것이 성숙한 시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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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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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만번의 트라이 (2014)

One for All, All for One 
9.2
감독
박사유, 박돈사
출연
문정희
정보
다큐멘터리 | 일본, 한국 | 107 분 | 2014-09-18


  팟캐스트 '이이제이'에서 박사유, 박돈사 감독과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 꼭 봐야지 하던 차에 유시민, 노회찬님이 GV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바로 예매를 했다. 영화는 기대이상이었고 한시간 남짓 이어진 GV도 알찼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 몇 줄이나마 리뷰를 남긴다.



  이 영화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에 포커스를 맞춘 '다큐멘터리 영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는 한 편의 잘 만든 '극영화'를 본 듯했다. 스포츠로 사회를 바꾼다는 사명감을 가진 열혈교사 '오영길 감독', 실력과 리더십을 갖춘 주장 '김관태', 에이스 '권유인', 개그 담당 '황상현' 등 캐릭터가 뚜렷하게 드러난 때문일 것이다. 또한 주전 선수의 부상으로 인한 빈 자리를 메워야하는 후보 선수의 부진, 그 과정에서의 팀원들 간의 불화, 갈등 해소를 통한 팀워크 성장 등 벌어지는 상황들이 스포츠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생략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변변한 샤워장 하나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을 딛고 전국을 제패하는 한 고등학교 럭비부의 성공담을 그려내는 스포츠물이냐면 그렇지 않다. 이 영화 전체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노사이드(No side)정신'이다. 노사이드란 경기 종료를 뜻하는 럭비용어로 경기 중에는 어느 스포츠보다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지만 경기 후에는 편을 가르지 않는 정신이다. 어른들이 정치논리와 이념으로 편을 가른 탓에 고교 무상화 정책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크고 작은 차별을 받아온 아이들이 그 차별의 벽에 노사이드로 대변되는 관용정신의 화두를 던진다.


  슬픈 역사를 지닌 '재일 동포'를 다룬 영화인 만큼 눈물샘만 자극할 것이란 편견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해맑은 아이들(특히 황상현)이 어느 순간 눈물을 그치게 만든다. 눈물도 웃음도 있는 것이 인생아니냐 말이라도 해주듯.



  영화 밖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민족이란 낡고 촌스러운 개념으로 치부해왔다. 어린 시절 세뇌 당하다시피 교육받은 '단일민족'이란 허무맹랑한 신화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를 우리의 장점이라 배웠던 것과 함께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민족의 혼'을 지키겠다며 반 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온갖 차별을 버텨온 그들의 삶을 머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분단 조국의 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선'이란 사라진 국가를 자신의 국적이라 표기하는 그들의 삶이 바보같단 생각이 들었다. 귀화한다고 욕 먹을 일도 아니고, 귀화하지 않는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반면에 가슴은 눈치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어대다 결국 안구의 습도를 높였다. 사실 민족이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선택으로 인해 차별을 하는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재일동포의 차별 문제를 다루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필자의 시선은 우리 현실로 돌아왔다. 관용을 잊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떠올랐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용하는 차별적 언어들. 특히 '반쪽바리'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말아야하는 단어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재일동포 야구단 관련 칼럼이 생각났다.


  “일본에서 ‘조센진’이란 소릴 듣고 자란 아이들이었네. 그래도 모국이라 찾아온 아이들에게 그들은 ‘쪽바리’라 했네.” 득점기회가 오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어른들이야 참는다지만 아이들은 어땠겠나. 아이들은….”

([박동희의 야구탐사] ‘슬픈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 [4]편)


 위의 칼럼은 시간 내서 꼭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에서도 이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국제 대회에서 만난 외국인과 대화중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자 옆에있던 한국 선수가 "유 어 재패니즈, 아임 오리지널 코리안"이라고 해서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한다. 한 세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구나. 그러고 보면 대학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수시나 정시를 통해 들어오면 순혈, 편입시험을 치러 입학하거나 전과를 하면 잡종. 필자는 또래보다 4년 늦게 입학을 했는데, 나이와 학번을 들은 선배들에게 꼭 듣는 질문이 있다. "편입했니?" 그럴땐 참 역겹다. 그래도 문학에 꿈을 가졌던 새끼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수능시험을 치러 입학하길 잘했단 생각이 불쑥 드는 것을 보면 결국 나도 역겨운 새끼다.


  법이 만능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비하와 차별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 차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치한다면 사회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험한 미군은 차별에대해 아주 엄격했다. EO(Equal Opportunity)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성별·인종·종교 등 어떤 조건에 따른 차별이라도 신고를 할 수 있었고, 여기에 걸리면 제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수차례 무산되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린 멀었구나 싶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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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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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민란의 시대 (2014)

6.6
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강동원, 이경영, 이성민, 조진웅
정보
액션 | 한국 | 137 분 | 2014-07-23
글쓴이 평점  


 

명대사

조윤

- 지 아비에게 금수만도 못한 취급을 받고 자란 놈인데.. 무슨 짓이든 못 하겠습니까.

- 더러운 땅에 하얀 연꽃이 피는 연유는 신의 뜻인가 연꽃의 의지인가.

-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거라. 그 자의 칼은 받겠다.


도치

- 윗전부터 아래 것들까지는 도적질 안 하는 놈이 없어라.. 안 하면 빙신이랑께.


대호

- 오늘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부양할 바를 알지 못하니 슬프지 아니한가.

- 우리는 모두 이땅의 하늘아래 한 형제요 한 자매다. 그러나 세상은 어느덧 힘있는 자가 약한 자를 핍박하고 가진 자가 가지지 못한 자를 착취하니우리는 그러한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땡추

- 이번 장의 최종 목적은 그들에게 빼앗긴 땅과 쌀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이택기

- 뭉치면 백성이고, 흩어지면 도적이요!!

 


 

내용 요약

  때는 양반과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했던 조선 철종 13년. 나주 대부호 조원숙(송영창 분)과 기생(박고은 분)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난 조윤(강동원 분)은 정실 최씨부인(박명신 분)이 아들을 낳자 찬밥신세가 되고 만다. 그는 무관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났지만 조선시대 서얼차대법에 따라 높은 관직에 오르지 못한 그의 분노는 자신보다 힘이 없는 백성들을 향한다. 그는 나주 목사 송영길(주진모 분)에게 뇌물을 주고 구휼미를 받은 대상의 명부를 얻어내 그들이 힘들 때 곡식을 빌려 주고 그 빚을 갚지 못하면 땅을 빼앗고 소작농으로 삼는 방법으로 백성들을 착취하여 막대한 부를 챙긴다.


조윤(강동원)


  쇠백정 돌무치(하정우 분)는 조대감댁에 고기를 대는 일을 업으로 하여 살아간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어머니(김해숙 분)와 여동생 곡지(한예린 분)와 함께 성 밖에서 살아간다. 그러던 중 민란에 의해 동생 조서인(이다윗)의 임신한 처(김꽃비 분)를 죽이라는 조윤의 사주를 받고 살인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실패의 댓가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목숨 그리고 없어지지 않을 머리의 상처다. 우여곡절 끝에 '지리산 추설'이라 불리는 군도에 들어가게 되어 도치로 다시 태어나 조윤에 대한 복수를 꿈 꾼다.


도치(하정우)


  군도 '지리산 추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지리산에 모여 살며 부자들의 재물을 도적질 하여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 나주에서 조윤의 수탈이 심해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게 되어 '백성의 적' 조윤을 처단하고 그들에게 빼앗긴 땅과 쌀을 다시 백성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큰 장을 보러 나선다.


지리산 추설



 

  영화 군도의 중심에는 조선시대 사회의 부조리가 존재한다. 조윤은 백성을 수탈하는 악인인 동시에 기생의 아들로 서얼차별을 받아 자신의 무관으로서의 능력을 옳은 일에 사용하지 못하는 자다. "타고난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 생을 걸어본 자가 있거든 나서거라. 그 자의 칼은 받겠다"는 그의 말에 서자로서 자신의 운명과 맞서 싸웠던 그의 모습이 드러난다. 군도 '지리산 추설'은 이곳 저곳에서 부조리에 반대하여 세상과 등진사람들이 모여있다. 무리의 정신적 지주 땡추(이경영 분)와 의적단의 두목 대호 (이성민 분) 힘센 천보(마동석 분), 전략가 태기(조진웅 분), 명궁 마향(윤지혜 분) 등은 상사의 부당한 요구에 반대하거나 과거시험의 부정으로 매번 낙방하고, 신분제 틀에서 양반들에게 수탈을 당하는 등의 이유로 세상과 등지고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배우들이다. 하정우는 2대8 가르마에서 부터 스킨헤드까지 어떤 머리라도 소화 할 수 있는 배우임을 강동원은 김수현 못지 않게 한복이 잘어울리는 배우임을 증명했다. 거칠고 두꺼운 목탄으로 그린듯한 하정우의 터프함과 매우 예리한 샤프로 그린듯한 강동원의 섬세함의 대결은 매우 강렬하다. 또한 이경영, 이성민, 조진웅, 마동석 등 대한민국에서 내노라는 조연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빈곳을 가득 채워준다.


  감독은 137분 동안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영상과 이야기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자칫 너무 진지해질 수도, 너무 가벼워 질 수도 있는 영화를 절묘하게 선을 지켜가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야기의 긴장감이 커지는 곳마다 숨어있는 유머들은 민란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만들어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상에 서부영화에서나 나오는 배경음악의 의외의 조합은 신선하고 재미있다. 또한 '액션 활극'이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은 그 자체만으로도 볼만하다.


  필자는 이 영화가 너무 노골적인 코메디도, 너무 진지한 역사극도 하닌 그 중간 애매한 곳에 위치하여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이 좋았는데 양극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개봉 첫날에 55만, 셋째날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가 어떤 역사를 쓸 것인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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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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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어 보이 (2002)

About a Boy 
8.1
감독
폴 웨이츠, 크리스 웨이츠
출연
휴 그랜트, 니콜라스 홀트, 레이첼 웨이즈, 토니 콜렛, 샤론 스몰
정보
코미디, 드라마 |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 97 분 | 2002-08-23


  조금 오래 된 영화다. 전에 본 적이 있는 영화인데, 다시 본 김에 포스팅을 한다. 볼 만한 영화다. 성장 영화, 성장 소설 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이 영화를 볼 생각이 있다면, 글은 여기서 그만 읽고 그냥 영화를 보는 것이 낫다.


  이 영화는 '현대 성장물'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전의 성장물이 아동의 성장을 보여준다면, 성인도 함께 성장한다는 점에서 '현대 성장물'이라고 분류하겠다(정확한 분류인지는 모르겠다). 사담을 조금 하자면 필자는 '성장물'을 지독히도 좋아한다. 소설,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그렇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로 현재까지도 펼쳤다하면 운다. 미드 '프렌즈'의 챈들러나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의 바니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아직 '성장'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영화는 '모든 사람들은 섬'이라는 주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백수 '윌(휴 그랜트 役)'가  우울증으로 자살기도까지 한 어머니를 돌보는 어른아이 '마커스(니콜라스 홀트 役)'를 만나면서 변화하는 이야기다. 상호적으로 영향을 끼치지만 포커스는 '윌'의 변화에 맞춰져 있다. (아직 영화를 안 봤다면 마지막 경고. 제발 더 이상 읽지 말고 영화를 보라.)


  단 한 곡의 히트곡을 남긴 아버지의 유산으로 자족하며 살아가는 백수 윌은 스스로를 '섬'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기적'이라고 평가하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는다. 윌은 싱글맘을 꼬시기 위해 'SPAT(Single Parent Alone Together)'라는 모임에 나가고, 이로 인해 마커스를 만나게 된다. 또한 마커스의 어머니 '피오나'가 자살기도를 하면서 마커스의 삶에 관여하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커스와 가까워진 윌. 새로 만나게 된 레이첼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커스의 싱글 대디 행세를 하게 된다. 하지만 마커스의 조언에 따라 진실을 털어놓게 되고, 레이첼과의 관계는 흔들린다. 한편 마커스는 어머니의 우울증세를 또 목격하고는 윌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윌이 뿌리치면서 둘 사이의 관계도 흔들린다.


  마커스는 우울한 어머니를 위해 학예회(?)에서 노래를 하기로 결심하고, 수많은 비난을 맞닥뜨리게 된다. 이 때 윌은 함께 그 비난을 받는다. 이 영화가 특별히 좋았던 지점이 이것이다. 극적인 극복보다, 함께 맞아주는 것. (이경미 감독의 영화 '미쓰 홍당무' 중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 장면이 떠올랐다.) 마커스가 말도 안되는 가창력으로 청중을 압도 하거나, 윌의 기타 반주로 하모니를 이루어 청중에 감동을 주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공연은 시청자에게도 어떤 음악적 감동을 주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에게 조그마한 변화가 있을 뿐이다. 윌 또한 크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는 '모든 사람들은 섬'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일부 섬들은 연결돼 있다'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 있다 

                                                   그 에 가고 싶다
                                                                             -정현종,「」 


  '혼자 보다는 둘이 낫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둘 만으론 부족하다'고 한다. 다른 한 명이 사라졌을 때 백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특히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윌과 마커스, 마커스의 엄마 피오나, 마커스의 여자친구(?) 엘리, 윌의 여자친구 레이첼과 아들 알리 등등이 모여서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장면이다. 혈연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삶의 지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덧, 윌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얕은 것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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