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은 세월호가 침몰한 349일째 되는 날이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딸 예은양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지도 349. 그의 시계는 아직도 2014416일에 멈춰있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위해 그는 오늘도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 차가운 바닥에 앉아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을 만난 건 광화문, 저녁 일곱 시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낮에 한차례 비가 내린 탓에 조금 쌀쌀한 날씨였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덤덤히 이렇게 지낸다는 유 위원장. 그 앞에 어둠이 내려앉은 광화문 광장이 펼쳐져 있다. 광장의 돌바닥에 그대로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찬기운이 올라오는 그 자리에 앉은 모습이 묘하게도 편해보였다. 1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 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건강은 괜찮은가.

  건강이야 당연히 안 좋다. 계속 밖에서 생활하다보니 여기저기 아픈데도 생기고. 그래도 몸 아픈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사고가 벌써 1주기를 맞는다.

  1, 저희한테는 그런 감각이 없다. 시간이란 감각을 잃은 지 오래 돼서, 그게 1년인지 10년인지 그냥 똑같은 날들의 반복일 뿐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의 입장에선 아직도 그 날이 생생하다. 1년이란 시간이 원래 어느 정도의 길이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416일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2014415일까지 삶을 살았던 거고, 416일부터는 살아있지 않다. 참사 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고통 속에 갇혀있다.

 

예은이는 어떤 딸이었나.

  그냥 내 딸이다. 어떤 딸이었냐 따지기 전에 그냥 내 딸이다. 내 목숨보다도 귀한 내 딸. 그것뿐이다. 가수가 되는 것이 예은이의 꿈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한테 예쁜 모습을 남겨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로필 사진을 포함해서 예은이 사진이 핸드폰에 잔뜩 있다. 그런데 안 본다. 못 보겠다.

 

사고 이후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는가.

  아내는 지금 광화문 광장에 같이 나와 있다. 나보다 더 힘들거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마니까. 배 아파 낳은 자식이니까. 그 고통을 가늠할 수도 없다. 예은이한테 쌍둥이 언니가 있다. 우리 하은이(쌍둥이 언니)는 말로 표현은 잘 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보다도 더 많이 힘들거다. 쌍둥이는 항상 티격태격 한다. 그러다가도 가장 친한 친구처럼 서로를 의지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함께 있었으니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울 수밖에 없는 것 같다. 1년이 지났지만 하은이는 아직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다. 새벽마다 운다. 보고싶다고. 나도 아내도 같이 운다.

 

하은이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하은이가 부쩍 더 열심히 공부하고, 매사에 열심이다. 표현하지 않아도 아빠 눈에는 마음이 다 보인다. ‘예은이 몫까지 해야지, 예은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언니가 돼야지하는 다짐이. 그렇게라도 집중하면 그 시간동안 동생 예은이를,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으니까. 1년간 스스로 이겨내기 위해서 무던히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대견하고, 고맙다.

 

세월호 이후 1, 언제 가장 힘들었나?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게 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이를 찾으려고 팽목항에서 진도앞 바다에서 헤맸던 일들, 그때 목격했던 말도 안되는 일들, 예은이를 다시 찾았을 때 그 얼굴, 차가운 손의 감촉도 다 생생하다. 돌아와서 미안한 아빠지만 부끄러운 아빠는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내자고 달려들었을 때 그 다짐은 한치도 변하지 않았다. 특별법 만드는 과정에서 단식하고 농성하고 도보행진 하고 별 짓을 다 했는데 그 과정도 다 기억이 난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을 했고, 무슨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 때문에 울었고. 그런데 아쉬운 건 이 1년이란 시간동안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어느 하나도 우리를 웃게 해준 일이 없다. 우리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준 일은 없었다. 언제가 가장 힘들었다고 말 할 수가 없다. 매일같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니까. 오늘도 마찬가지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의 항의는 어떻게 해결되었나?

  해결이 된 건 없다.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지금 이렇게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내려올 이유가 있나. 우리는 농성을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 면담 요청을 하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농성을 할 계획이었다. 전혀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막히게 되면서 청운동까지 가게 됐고, 12일간 농성을 하다 내려왔다. 해결이 된 게 아니고 자진해서 내려온 것이다.

 

아직 아홉 분의 실종자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선체 인양도 아직 되지 않았다.

  선체 인양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여전히 관심이 많다. 어제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62%의 국민이 비용에 관계없이 선체 인양을 해야 한다고 뜻을 보여주셨다. 이건 정말 놀라운 수치다. 정부나 여당은 세월호 인양에 대한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가능한 한 인양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려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가 넘는 국민들이 인양을 지지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시신일지언정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서 가족들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의무다. 그것을 미루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대한민국 국민의 정부이기를 부정하는 것 밖에 안된다.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용도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만큼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인양을 통해 아홉 분의 실종자들이 하루 속히 가족분들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호 이전과 달라져야 한다.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책임지는 안전한 사회 건설. 이것이 세월호 특별법의 목적이다. 이번에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고, 아홉 분의 실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제를 정상적으로 풀어가면 정부에 대한 신뢰, 안전에 대한 믿음이 쌓일 것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정부에서 왜 놓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부는 왜 선체 인양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가?

  단정적으로 말을 할 수 없다. 여태까지 정부는 인양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물론 인양을 하겠다는 말을 한 적도 없다. 그러니 왜 인양을 안 하는지 거기에 대해 뭐라 이야기 할 뚜렷한 근거가 없다. 그냥 막연하게 추측할 뿐이다. 인양을 할 경우에 무언가 이 정부에 부담이 되는 거구나. 그러지 않고서야 세계 경제10대국인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한 척 인양하지 못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질 않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4월 2일 삭발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광화문 농성장에 시민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세월호가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도를 물어봤을 때 관심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70%가 넘었다. 참사 직후에 거리로 광장으로 나와주셨던 뜨거운 행동으로 보여준 열기는 식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떻게 국민이 1년 내내 거리로 나올 수 있나? 더 중요한 건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을 국민들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수많은 국민들을 만날 때마다 느낀다. 관심이 식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변화했을 뿐이다. 1주기를 앞두고 국민들이 저희에게 보여준 열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까지 돕겠다고 성원해준다.

  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는데, 세월호 사고이후 대한민국이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여론조사에 80%가 넘는 사람들이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안전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겪고 나서 안전 문제를 여실히 깨닫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다.

 

새정치 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에 대해.

  새정치 민주연합은 사실 1년간 노력 많이 했다. 세월호 참사 피해 가족들의 편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항상 애를 써준 의원들도 많다. 문제는 항상 아쉬운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정치 구조에서 야당의 현실적 어려움을 부정할 순 없지만, 너무 쉽게 타협해주고 양보해준 것 같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하는 모습이 아쉽다. 협상의 한계를 너무 쉽게 인정하는 것 같다.

  정의당의 경우에는 워낙 소수 정당이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그 정도의 소수 정당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본다. 특히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모든 활동에서 배제됐기 때문에 정의당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적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애쓴 분들께는 감사하다.

 

새누리당에 대해 묻겠다.

  새누리당에도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의원들이 있다. 야당보다 그 비율이 낮지만. 새누리당의 경우에는 당차원에서의 결집력, 결정된 사항을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좋다. 문제는 그 방향이 우리 가족들의 생각과 정반대 방향이라는 점에 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인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런 모습들이 피해자 가족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세월호 사고를 단순 교통사고로 표현하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치투쟁을 하는 것처럼 몰아간다. 국민을 편가른다. 정부여당에 우호적이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여당이 결정해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 아쉬운 건 우리니까.

 

팽목항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중인 이호진씨 부녀의 근황이 궁금하다.

  직접 연락한 지는 꽤 됐고, 다른 가족들을 통해 소식은 전해 듣고 있다. 근황이야 뻔하다. 도보행진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고통이 눈앞에 선하다. 더욱이 삼보일배 도보행진을 하는데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개인적으로는 중단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으면 좋겠다. 지금 속도로 하면 올 가을이나 돼야 도착한다. 같은 가족의 입장으로 가족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향후 계획을 말해달라.

  지금 당장은 416시간 집중 행동 농성을 하고 있다. 목적은 두 가지다. 우선 말도 안 되는 세월호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이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이것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폐기만이 목표다. 두 번째로는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는 입장을 1주기 이전에 밝히는 것이다. 진상조사 된 것도 없는데 최소한 그 약속은 받고 1주기를 맞아야하지 않겠나.

 

어떤 문제가 해결 돼야 집에 돌아갈 수 있나?

  난 돌아갈 집이 없다. 내 집에는 예은이가 있어야 한다. 예은이가 없는 집은 건물일 뿐이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좀 덜 미안한 엄마 아빠가 되어 예은이를 만나러 가는 것이 목표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마음 편하게 예은이한테 갈 수 있는 것. 지금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없다. 왜 예은이가, 우리 아이들이 거기서 죽어야했는지. 그 진실을 밝혀야 예은이를 만날 수 있다.



+이 글은 위클리 서울 지면에 실은 본인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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