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남미순방을 떠났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제에 초대했지만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으로 향했다. 초대장이 잘못 전달된 것일까. 팽목항에서 알맹이 없는 담화를 7분간 진행하고 남미로 향했다. 지난해 단 한명도 구조 하지 못하고 304명을 수장시킨 국가의 리더는 그렇게 또 유가족들과의 대화를 회피했다.


광화문 누각 건너편에서는 시민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경찰은 유가족이 보이지 않도록 경찰버스로 차벽을 세웠다.


  대통령의 직무를 대행해야하는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게이트’에 연루돼 곤혹스러운 상태다. 수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경찰은 1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골목 골목을 막아섰다. 100여대의 경찰 버스로 차벽을 쳤다.


  시민들은 2008년 FTA 반대집회 때 등장한 ‘명박산성’을 떠올렸다. 경찰은 당시보다도 더 가혹하게 시민들을 막아섰다. 당시에는 세종대왕상 앞의 광장까지는 시민들의 진입을 허락한데 반해 광장진입을 원천 봉쇄했다. 시민들은 세월호 광장에서 분향도 할 수 없게 됐다. 신원확인 후 인근주민들에게는 길을 비켜주던 경찰이 이번에는 얄짤없다. 그저 돌아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퇴근길이 경찰에 의해 봉쇄된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터져나왔다. 경찰은 유가족과 행진 참가자들에게 캡사이신을 뿌렸다. 10여명은 연행되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광화문 누각 앞까지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경찰은 병력과 버스를 이용해 유가족들을 감금했다. 유가족들은 그 자리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갔다. 광화문 누각 앞은 전기도 물도 화장실도 없다. 기본적인 생활도 유지할 수 없는 곳에 유가족들은 고립되었다. 416연대는 “자식 잃은 부모에게 국가가 이런 모욕까지 안 깁니다”라며 페이스북에 한 장의 사진을 올렸다. 파란색 플라스틱 상자가 하나 놓여있고, 그 아래로 액체가 흘러있다. 유가족들이 최소한의 부위만 가린 채 소변을 해결해야 했던 것이다.


사진 출처 = 416연대 페이스북

  17일 저녁, 경찰들은 횡단보도를 지키고 섰다. 횡단보도를 건너겠다는 시민들에게는 우회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취재기자라고 신분을 밝혀도 통제를 당했다. 경찰 간부 하나는 “지금은 곤란하니 20분 후에 오라”고 말했다. 다시 갔을 때 그 간부는 없었고, “건널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17일 밤 경찰이 횡단보도를 막고 있다.


  그때 건너편에서 유가족들이 횡단보도를 건너왔다. 화장실 통제는 어느 정도 풀렸다고 했다. 재욱이 엄마는 “도시락은 전달 돼 식사는 했다. 해도해도 너무한다. 우리나라 인권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 세상에 어떤 나라가 유가족들을 이렇게 대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재욱이 엄마는 “낮에는 잠깐 취재 허락했었는데, 다시 막나보네. 우리 사이에 끼어서 한번 들어가보자"라고 제안했다. 유가족들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기로 했다. 영석이 엄마는 “경찰이 막아서면 그냥 돌아가. 괜히 마찰 생기면 우리 엄마들도 못들어가게 할지 몰라”라며 신신당부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냥 돌아섰다. 길 건너에서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작부터 꾸준히 지적받고 있지만 여전히 변화하지 않는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시끄러운 일이 있으면 해외 순방을 떠났다. 세금을 들여 마련한 경찰버스로 차벽을 치고,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의경이란 이름의 저임금 경찰 병력으로 뽑아 국민과 반목하는데 낭비하고 있다. 유가족에게서 인간이 가진 최소한의 권리마저 박탈하고, 누가 볼 까 접근까지 막고 있다. 언제까지 피해서 해결될 문제는 없다. 시민들은 오늘도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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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인양 검토 발언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들과 국민대책위는 못 믿겠다는 입장이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인양의 기술적 검토는 이미 끝났다. 그런데 기술적 검토를 한 뒤 결정하겠다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유가족들이 박 대통령의 발언을 반기고 있다는 보도를 봤는데, 아무 발언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말을 침소봉대한 것이라며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래군 416일의약속국민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유가족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믿지 않는다. 세월호 선체 인양의 기술적 검토가 끝났다는 사실을 유가족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인양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지자 여론을 환기하기 위해 벌인 쇼라고 평가 절하했다. 또한 우는 아이 달래듯 하는 정부의 태도에 유가족들이 분개하고 있다. 시행령안의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 문제를 결정할 때까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기술적 검토를 한 뒤 적극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이야기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백 번 해오던 이야기다. 대통령의 입에서 처음 나온 발언이라고 특별히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야할 때라며 정부의 세월호 선체 인양 결정을 촉구했다.


  한편 이완구 국무총리는 7일 기자단 오찬 간담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에 문제가 있다면 유족의 입장을 반영하겠다. 유가족의 입장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다이번주 유가족을 만나겠다. 전향적으로 모든 문제를 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박주민 사무차장은 수정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문구 몇 개 고치자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고, 본질을 흐리는 발언이다. 폐기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7일 일부를 제외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농성을 쉬었다. 지난달 30일부터 계속된 강행군에 심신이 지친 것. 특히 지난 4일과 5일 안산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의 도보행진과 6일 세종시 해수부 앞에서의 농성은 유가족들을 지치게 했다. 끝날 기약이 없는 농성을 위해 7일 하루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


  4.16 촛불 문화제는 계속 이어졌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50여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 세월호 특위 비상임위원인 성공회대 김서중 교수가 강연을 했다. 김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감사해야할 대상이다.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숭고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또한 세월호 진상조사는 단순히 세월호 사고의 원인을 밝혀 유가족들의 마음을 풀어주는 일이 아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200억원이 아니라 더 큰 비용을 치르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교수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 파견된 공무원인 기획조정실장이 조사를 조정하는 업무를 맡게 되는데, 사실상 조정이 아닌 조종을 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정부 시행령안대로 조사가 이뤄진다면, 특위 위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른바 세금도둑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의 입장을 반영하겠다는 이완구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는 문제점들을 다 고치면 이미 지난 2월 세월호 조사특위에서 제출한 안과 똑같을 것이라며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특조위 원안 채택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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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광화문의 날씨는 흐렸다. 봄바람 같지 않게 차가운 바람이 불었지만 많은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다.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예배 준비 위원회의 주관으로 부활절 예배가 광화문 광장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약 8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예수의 부활과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렸다.


  예배가 마칠 즈음 세월호 유가족 250여명과 함께 도보행진을 한 시민들이 세월호 광장으로 들어섰다. 광화문 광장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은 상복을 입고, 영정사진을 든 유가족들을 박수로 맞았다. 지나가는 유가족들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건네고, 포옹하며 위로했다. 유가족 중 일부는 오랜 도보행진에 물집이 잡힌 탓에 걸음을 절기도 했다.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상 앞에 자리를 잡고 촛불문화제를 진행했다.


4월 5일. 안산~광화문 1박2일 도보행진을 마친 유가족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딸 예은이의 영정사진을 안고 시민들 앞에 나섰다. 그는 쉰 목소리로 예은이의 꿈이 가수였다. 노래하고 즐기는 자리는 아니지만 많은 분들 앞에 예은이와 함께 서고 싶었다흐린 날씨에도 세월호 광장을 가득 채워준 많은 시민분들께 감사하다. 하지만 더 많은 분들이 나서주셔야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며 더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전명선 4.16가족협위회 대책위원장은 국민들 덕분에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어 세월호 진상규명이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첫 걸음이라며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진상규명의 의지를 밝혔다.


  이번 12일 도보행진에 함께한 시민 안승혜씨는 오는 동안 비가 오락가락 했다. 영정사진에 빗물이 한 방울이라도 맞을까, 꼭 안고 가는 유가족들을 보며 눈물이 흘렀다우리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고 있다. 더 많은 빚을 지기 싫어 함께 걸었다고 세월호 유가족의 12일 도보행진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무대에 오른 세월호 가족들은 정부에 욕을 하기도 했다. 유경근 위원장은 이제껏 욕을 참았다. 할 말이 많아도 참았다. 참고 또 참으면 국가가 알아서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하지만 우리가 속았다. 앞으로는 해야 할 말들을 가감 없이 하겠다고 밝혔다.


4월 5일. 안산~광화문 1박2일 도보행진을 마친 유가족들


  광장 옆에는 119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한 시민이 구급차에 다가가 치료를 요구했다. 12일의 도보행진 동안 8개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것. 본인을 트위터리안 서패후라고 소개한 시민은 군대 간 아들과 고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는 평택에 사는 평범한 엄마다. 내 자식도 언제든지 이런 가고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안전사회를 건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12일간의 도보행진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세월호 유가족들은 6일 세종시 청사로 내려가 해수부에 항의 방문 할 예정이다. 오는 11일에는 집중 촛불집회가 예정되어 있다. 유경근 위원장은 “11일에는 오늘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야 한다며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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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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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누군가는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20144월을 잔인하단 단어로 다 형용할 수 있을까? 세월호 1주년. 걷다보니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손에 들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직 겨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봄을 돌려주는 것은 불가능할 지도 모르지만 목도리 하나는 둘러줄 수는 있지 않을까?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이하 세월호 가족협의회)330일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선체 인양과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청와대 항의 방문을 시도했지만 다수의 경찰 병력에 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경찰에 막힌 청와대 항의방문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항의 방문하기 위해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세종대왕상 앞에서 지키고 있던 경찰 병력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마치 세종대왕이 앞길을 막고 있는 듯 보였다. 괜히 세종대왕에 화가 났다. 가족협의회 일부는 경찰 병력이 막지 않는 곳을 뚫고 광화문 앞까지 나아갔다. 그 이상은 넘어갈 수 없었다.


  50여명 남짓의 유가족들을 막겠다고 나선 병력은 세 배는 족히 되어보였다. 병력이 디귿자로 가족협의회를 감쌌다. 지나가던 시민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했으며, 또 누군가는 잠시 서있었다. 외국인들은 사진을 찍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광화문으로 나아가려던 한 시민과 경찰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50대 남성으로 보이는 그는 왜 자꾸 따라오냐? 경찰이면 다냐? 움직일 자유가 내게 있는 것 아니냐며 경찰에 따져 물었다. 경찰은 당신이 자꾸 넘어가려 하니까 그러지라며 대꾸했다. 따라오지 말라는 남성을 경찰은 결국 세종대왕상까지 따라갔다. 그를 따라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경찰이 광화문 가는 길을 막기에 뒤돌아서 농성장으로 가려했다. 그 순간 경찰 여섯 명이 따라 오더라.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울분을 토하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재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은 대통령께 면담을 요청하기 위한 청와대 항의 방문일 뿐 가두시위나 행진이 아니라고 행사의 성격을 확실히 규정했다. 그런 연유로 경찰이 막아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공동상황실장은 경찰이 계속 막더라도 그 자리에 앉아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또 청와대로 가기 위해 날마다 항의행동을 계속할 것이라며 의지를 밝혔다.


  이 공동상황실장은 가족들이 왜 또 광장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는지 (국민들이) 잘 모르고 계신 것 같다. 특조위 조사권을 무력화 시키는 시행령 폐기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광장으로 나오게 됐다고 세월호 가족협의회가 광장으로 다시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대통령 면담을 요청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힘이 절실하다. 411일부터 추모주간을 선포, 촛불집회(11)대규모 추모문화제(16)범국민 대회(18) 뿐만 아니라 1주기를 맞아 전국에서 다양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국민들의 참여를 부탁했다. 끝으로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됐는데, 특별법이 제대로 시행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라며 언론이 더욱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보도할 것을 촉구했다.

 

그래도 아직 희망 갖는다

  시민단체 간사인 조은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민들에 유인물을 건네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면 광화문 농성장에 찾아와 일을 돕는다고 밝힌 그는 시행령 제정안 철회와 세월호 선체 인양 등 문제들이 하루 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반대 주장을 가질 수는 있지만, 농성장에 찾아와 유가족들에게 욕을 하는 분들을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며 관용의 정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몇 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유인물도 잘 받아 주시고, 다른 유인물과 달리 길바닥에 버리는 분들도 많지 않다그런 모습을 볼 때 아직 우리 사회에 희망이 남아 있음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바닥에 나뒹구는 유인물이 없었다.



가족협의회는 왜?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왜 다시 광화문 농성장으로 나왔을까? 가족협의회는 지난 327일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제정안은 특별조사위원들이 제안한 시행령안을 완전히 묵살한 전혀 새로운 안이라고 소리 높였다.


  이들은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대상을 정부가 조사한 것에 대한 검증 수준으로 축소 위원장과 위원들의 위상과 역할을 약화 사무처의 인력과 예산을 축소하고 위원회 사무처의 주요 직책을 정부 파견 고위 공무원이 장악했다며 조사대상이 되는 기관의 공무원들이 특조위를 사실상 통제하는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세월호 특별법과 특조위의 조사권을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또한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이런 초법적이고 불법적인 시행령안을 일개 부처인 해양수산부가 단독으로 마련했을 리 없다청와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독립적 국가기구의 시행령이 아니라 청와대가 작성한 진상규명 통제령이며 간섭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가 특별법 시행령 논의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세월호 인양 약속에 대해서도 손바닥 뒤집듯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며 세월호 선체에 대한 온전하고 조속한 인양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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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4일째 아침이 밝았다. 새누리당의 반대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는 가운데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도 보름째에 들어간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건강 악화로 병원에 실려가는 유족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다 더 나쁜 소식이 들려오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뉴스를 보며 "칼은 나눠 먹으면 산다"는 영화 '와일드 카드'의 대사가 떠올랐다.


  참사가 일어난 것도 벌써 100일이 넘어간다. 인간 같지 않은 자들은 이제 그만하자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또 그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고, 내가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번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다음번에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은 더 어려워 질 수 있다. 분명 또 '전례가 없다'는 핑계를 댈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최근 사회의 움직임을 보면 희망과 동시에 절망감도 느낀다.  종교계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25일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26일에는 한국교회교단장협의회 소속 교단장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북노회는 이윤상 목사를 광화문 광장에 파송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에는 3만여명(경찰추산 7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추모제에 참가한 필자의 느낌으로 3만명이란 숫자에 의문이 들긴 하지만, 주최측의 말대로 3만명이 모였다고 생각하자. 평일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물론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6일과 27일에 광화문 광장에 찾아 갔다. 26일에는 2000여명(경찰 추산 900여명)이 모여 촛불을 밝혔지만, 27일에는 단 스무명 남짓이 자리했다. 우리의 문제로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닌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유족들의 단식 농성은 광화문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칼을 나눠먹을 때다. 어떤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글을 쓰고, 공유하며 잊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유족들의 옆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한 끼 단식 참여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방법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유족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다 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데 있다.


  덤. 대선에서의 부정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이 대선에 관여했다. 304명의 국민이 서해에서 주검으로 떠올랐다. 54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선배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행동했고 부정한 정권을 심판했다. 50년 후 이 땅에 살 우리 후배들에게 우리는 어떤 선배로 기억될 것인가. 결정할 때다.


참고

세월호 단식 유족들 건강 악화로 줄줄이 병원行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세월호 가족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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