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경찰청에서 내 정보를 제공받은 사실을 알고 난 뒤 가장 궁금한 것은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정보공개포털을 통해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그 답을 기다리는 현재,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정해본다.


  내가 받은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는 몇가지 단편적인 사실을 알려줬다.




  1. 서울지방경찰청이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2. 제공요청 사유는 블라블라블라.

  3. 고객명, 주민번호, 이동전화번호, 주소, 가입일, 해지일의 정보를 제공받았다.

  4. 2015년 11월 18일, 2015년 12월 23일에 제공받았다.


  나는 제공일자에 집중했다. 당시 통화기록은 이미 핸드폰에서 지워진 상태. 문자를 주고 받은 내역을 들여다보던 중 당시가 민중총궐기로 한참 시끄러웠던 시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박근혜 정권이 보호장구 하나 갖추지 않은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발포한 날, 기사로 그 장면을 접하고 화가 나서 광화문으로 향했었다. 경찰청이 자료를 제공받은 날은 그 다음주 수요일. 12월 19일, 제3차 민중총궐기. 시청앞에서 시작, 백남기 농민이 입원중인 서울대학교 병원 앞까지 행진했던 날. 경찰청이 자료를 제공받은 날은 그 다음주 수요일.


  두 날짜의 공통점을 발견했지만 이유를 짐작할 수는 없었다.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5만여명 중 한명일 뿐인 내 정보를 들여다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이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자 민중총궐기의 주동자로 지목된 바 있는 그와 통화했던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처음부터 그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와 통화한 것이 꽤 오래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은 4월 20일. 민주노총 424 총파업을 앞둔 시점이었고,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몇 번 통화한 것이 전부였다. (4.24 총파업 나서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인터뷰) 당시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낸지 꽤 된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내 추정이 사실이라면 끔찍하다. 이 일은 국가기관이 마음 먹는다면 7개월(정보 제공 당시 기준)이 지난 두세번의 짧은 통화를 빌미로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들여다 볼 수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테러방지법이 어떻게 악용될 것인지 미래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그마한 빌미로 저들이 영장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보는 이제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기본정보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공된 정보가 어떻게 이용되고 이후 어떻게 폐기되는지 조차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이를 통해 국가에서 이념지도를 빅데이터로 만드는데 활용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다수의 기자들 정보가 제공된 사실도 드러났다. 주로 민주노총을 취재하거나 집회 현장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라는 소리도 있다. 기자들의 통화 내역조회는 기사의 출처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털리는 줄 모르게 기자들도 털렸다)


  내 추정이 틀리길 바라지만, 그럴 확률은 낮아보인다.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니 기다려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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