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덧 100여일이 지나갔다. 박근혜씨는 국민들이 보는 카메라 앞에서 세월호 전과 후로 완전히 달라진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며 처음으로 울었다. 새누리당도 한번만 도와달라며 자신들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읍소하였다. 그러나 무엇이 바뀌었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정홍원 총리는 문창극 사태로 인한 유임 결정으로 그간 정 총리의 의전에 소홀하던 총리실 공무원들을 두려움에 떨게하며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의 컨트롤 타워가 청와대가 아니라는 발언으로 유가족과 상다수의 국민들의 공분을 샀던 김기춘 실장도 여전히 청와대에 있다. 세월호 특별법은 여전히 새누리당의 발목잡기로 한발짝 나가지도 못하고, 진상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제대로 조사해서 알려달라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유가족들을 자식들을 앞세워 보상이나 받으려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한다. 아무것도 바뀌어지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저들은 또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세월호 참사에서 수많은 학생들과 승객들이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에서 나오지 못해서 배안에 갇힌 채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이유는 선장의 '가만히 있어라'는 방송 때문이었다. 선장의 말을 믿고 배 안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었던 어린 영혼들은 선장의 말을 믿은 죄로 살아 나올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해경이 구조하러 왔을 때라도 선내 방송으로 탈출 명령을 내렸다면 희생을 조금은 줄일 수 있었을 텐데. 배 안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들은 마지막 명령은 '가만히 있어라'였다.


  세월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서 김광진 의원이 녹취록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자신의 말을 섞은 것을 빌미로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파행으로 끌고 갔다. 이 과정에서 조원진 의원과 일부 야당 의원들이 언쟁을 벌이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싸우지 말라"며 "나갈 거면 그냥 나가라"고 항의했다. 이 때 조원진 의원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 "당신 누구야"라고 '종이질'을 하며 물었고, 이에 "유가족 입니다"라고 답하자, 조 의원은 "유가족이면 좀 가만히 있어라"고 고성을 질렀다. 여당 간사가 유가족에게 "가만히 있어라"고 소리치는 판국이니 국정조사가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약속한 16일은 물론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한 세월호 참사 100일이 되던 24일도 훌쩍 넘어버린 지금까지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유가족들은 사고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의미로 전날 안산 합동 분향소를 출발하여 서울광장까지 51km 도보 행진을 했다. 유가족들은 장맛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가운데서 1박 2일간 식사도 하지 않고 서울광장까지 걸었다. 세월호 유가족 180여명을 포함한 주최측 추산 3만여명, 경찰추산 7천여명의 시민들이 서울광장에서 '네 눈물을 기억하라'는 추모 음악회와 시낭송을 마쳤다. 그 후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시민들과 함께 행진하는 것으로 추모제를 마무리하려는 유족들과 시민들을 향해서 경찰들은 또 다시 "가만히 있어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찰 병력으로 담을 쌓아서 광화문 광장까지 1km 남짓의 행진을 못하도록 막았다.


  세월호 이전과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던 이들이 어디 있는가? 그들은 여전히 "가만히 있어라" 하면서 선거를 앞두고 다시 한번 도와달라며 읍소하고 있다. 지금 저들의 말대로 가만히 있는다면 대한민국은 세월호 처럼 침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희생자는 세월호 참사의 몇배가 될지 모른다. 가만히 있지 말라. 자신의 지역구에 재보궐선거가 있다면 투표하라! 선거 때만 도와달라며 고개 숙이고, 선거 지나면 "(국민이면) 가만히 있어라"는 저들을 심판해달라!!


참조

[서울신문] 조원진 막말, “(세월호)유가족이면 좀 가만히 있어라”…세월호 특위 파행 끝 가까스로 재개

[연합뉴스] 세월호참사 100일…'특별법 촉구' 빗속 51㎞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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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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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4일째 아침이 밝았다. 새누리당의 반대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는 가운데 세월호 유족들의 단식도 보름째에 들어간다. 단식이 길어지면서 건강 악화로 병원에 실려가는 유족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러다 더 나쁜 소식이 들려오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뉴스를 보며 "칼은 나눠 먹으면 산다"는 영화 '와일드 카드'의 대사가 떠올랐다.


  참사가 일어난 것도 벌써 100일이 넘어간다. 인간 같지 않은 자들은 이제 그만하자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또 그런 참사가 일어날 수 있고, 내가 다음 희생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게다가 이번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으면 다음번에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은 더 어려워 질 수 있다. 분명 또 '전례가 없다'는 핑계를 댈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최근 사회의 움직임을 보면 희망과 동시에 절망감도 느낀다.  종교계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다. 25일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26일에는 한국교회교단장협의회 소속 교단장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북노회는 이윤상 목사를 광화문 광장에 파송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에는 3만여명(경찰추산 7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추모제에 참가한 필자의 느낌으로 3만명이란 숫자에 의문이 들긴 하지만, 주최측의 말대로 3만명이 모였다고 생각하자. 평일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물론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6일과 27일에 광화문 광장에 찾아 갔다. 26일에는 2000여명(경찰 추산 900여명)이 모여 촛불을 밝혔지만, 27일에는 단 스무명 남짓이 자리했다. 우리의 문제로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닌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지금 이 시각에도 유족들의 단식 농성은 광화문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제 우리가 칼을 나눠먹을 때다. 어떤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글을 쓰고, 공유하며 잊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유족들의 옆자리에 앉을 수도 있다. 한 끼 단식 참여도 좋은 방법이다. 어떤 방법도 좋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를 유족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다 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데 있다.


  덤. 대선에서의 부정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이 대선에 관여했다. 304명의 국민이 서해에서 주검으로 떠올랐다. 54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선배들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행동했고 부정한 정권을 심판했다. 50년 후 이 땅에 살 우리 후배들에게 우리는 어떤 선배로 기억될 것인가. 결정할 때다.


참고

세월호 단식 유족들 건강 악화로 줄줄이 병원行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 세월호 가족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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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less.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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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들어 '관행이다' 라는 말과 '전례가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청문회에 출석한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당시에는 그랬다며 '관행이었다'는 말로 항변했다. 6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는 문제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 사이의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6월 국회 시한인 7월 17일까지 합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여당의원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에 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사법권을 침해하는 일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관행이다'와 '전례가 없다'는 말은 서로 다른 말인듯 하지만 동전의 양면 처럼 묘하게 닮아 있다. 무엇이든 새로 시작하는 일은 전례가 없을 수 밖에 없고 지금까지 해오던 관행에 역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전례 혹은 관행대로 따르면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

 

세월호 유가족 광화문 시위

 

  시계를 3개월 전으로 돌려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보자.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나? 바로 관행이라는 이름의 부패에서 시작되었다. 세월호 참사는 관리 감독해야할 해경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전관예우라는 관행으로 일명 '해피아'들이 대한민국의 해상을 장악하면서 생긴일이다. 이런 관행들은 뿌리가 깊어서 어지간한 힘으로는 뿌리채 뽑기는 커녕 가지치기 조금 하다 말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건국직후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서 부터 5.18 진상조사 위원회를 지나 가까이는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진상조사특별위원회까지 진상조사위원회가 기득권에 부딛힐 때마다 진실의 문 앞에서 무릎 꿇었던 역사들이 있었다. 심지어 수사권을 가지고 있던 반민특위는 어떻게 되었나? 친일 경찰들에 의해서 반민특위 사무실이 습격되고 빨갱이로 몰리고 무자비하게 폭행당하지 않았나.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 봤을 때 유가족들의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봤자 흐지부지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의심과 두려움은 매우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씨는 국가 개조론을 들고 나왔다. (누가 누구를 개조하는지, 지금의 여당과 기득권 세력에 누구를 개조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는지, 국가 개조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저들의 오만함에 대해서는 논외로 한다.) 국가를 개조하는 과정에서는 수 없이 많은 관행을 거스르고 전례가 없는 수 많은 일들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뻔하다. 사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것 보다는 있는게 낫겠지만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준다고 해서 워낙 견고한 기득권층의 썩은 뿌리 중 잔뿌리라도 쳐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진상조사위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듯한 저들의 작태는 박근혜씨가 유가족들에게 약속한 '성역없는 수사'에도 반하는 처사이다. 그리고 계속 자격없는 자에게 검사나 경찰의 지위를 줄 수 없다는 식의 논리로 말하는데, 특임검사(특검)를 선정하는 기준으로 위원회의 위원중 일부를 선정하면 해결 될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무엇을 가리기 위해서 이렇게 몽니를 부리는지 이제는 청와대에서 대답할 차례다.

 

참조

[한겨레] 법률 전문가가 본 '세월호조사위 수사권 부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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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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