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잡설/생각의 조각'에 해당되는 글 35건

  제보조작 파문 보름째, 실종됐던 안철수 전 후보가 카메라 앞에 나섰다. 오랜기간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입장 발표였지만, 여론이 우호적으로 선회할지는 아직 미지수로 보인다.



  1. 발표시점이 너무 늦었다.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전 후보는 발표시점이 늦은 것에 대해 "검찰 조사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는 사실 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찰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판단은 오판이었다. 만약 오늘 회견문 수준의 발표를 제보조작 사건이 드러난 직후에 했더라면 어땠을까? 반응이 지금과는 천양지차였을 것이다.


  2. 책임의 내용이 너무 모호하다.

  안철수 전 후보는 회견문에서 책임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습니다. 모든 짐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본인은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상 그 내용이 없다. 모든 짐을 짏어지고 간다고 하지만, 결국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 전부다. 현재 안철수 후보는 당대표도, 국회의원도, 대선 후보도 아니다. 이미 대통령 후보로 체급을 키운 상태에서 내년 지방선거에 참전하는 것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3년이나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안철수 전 후보에게 남은 선택지는 5년 뒤 대통령 선거 밖에 없었다. 마치 엄청난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척 했지만, 실상은 빈 깡통을 내려 놓았을 뿐인 것이다.


  3. 의혹에 대한 해명이 단 한 줄도 없었다.

  안철수 전 후보가 사라졌던 지난 보름 동안 무수히 많은 의혹이 쏟아졌다. 주로 사건의 인지 시점에 관한 것이었다. 박지원 전 대표의 경우에는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안철수 전 후보와 관련해서는 이유미의 "죽을 것만 같다"는 문자와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의 면담이 의혹의 대상이 됐다. 제자가 심각한 내용의 문자를 보냈는데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답을 하지 않았다는 누가 했는지도 모를 해명. 사건이 세간에 퍼지기 직전에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면담을 하며 고소취하 건에 대해 이야기 했다고 알려졌는데, 정작 가장 중요한 이유미 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해명만 남아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이 없기에 입장 발표가 끝이 났는데도 찝찝함은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인 것이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안철수입니다.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번 제보 조작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저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국민의당 대선후보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무엇보다 저를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고개숙여 사과드립니다. 선거 과정에서 묵묵히 헌신해주신 당원 여러분, 동료 정치인들께 사과드립니다. 이번 사건으로 심적 고통을 느꼈을 당사자에게도 사과드립니다.

  저는 지금까지 검찰수사를 지켜보며 깊은 자성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 일찍 사과문을 발표하라는 요청도 많았지만, 검찰수사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는 사실 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검찰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고통스런 마음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어제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구속됐습니다. 법원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검찰의 공정하고 투명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당이 적극 협조할 것을 당부합니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을 통해 3당 체제를 만들었습니다. 국민들께서 역사적인 다당제를 실현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신생 정당으로서 체계를 제대로 잡지 못한 한계도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은 검증 부실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명예훼손을 넘어 공명선거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도 모두 저의 한계이고 책임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후보였던 제게 있습니다. 모든 짐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깊은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정치인으로 살아온 지난 5년 동안의 시간을 뿌리까지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원점에서 저의 정치인생을 돌아보며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번 사태로 존폐 위기로까지 내몰린 국민의당도 혼신의 노력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다당제를 실현해 주신 국민들의 뜻을 준엄하게 받들어 새로운 정당으로 거듭나리라 믿습니다.

  실망과 분노는 저 안철수에게 쏟아내시고 힘겹게 만든 다당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국민의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지금까지 항상 책임져 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반성과 노력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질책을 달게 받겠습니다. 처음 마음을 되새기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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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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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이 국회 보이콧에 나선지 일주일 째다. 고작 '머리 자르기' 발언 때문이다. 물론 국민의당 입장에선 아프겠다. 얄밉고 짜증날 수도 있다. 자기네들은 존폐의 기로에 섰는데, 가혹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가해자고, 민주당이 피해자다. 추미애 대표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정국을 돌파할 뾰족한 수가 없다보니 무리수를 던진 것이라고 보인다. '머리 자르기'가 막말이면, 이언주 의원의 '미친놈들', '그냥 밥하는 아줌마' 발언은 무엇인가?


  물론 추미애 대표가 여당대표로서 조금 더 너그러운 자세를 가지고 포용하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결국엔 국민의당을 흡수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차려진 상에 침 뱉은 꼴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민주당을 받치고 있는 지지자들은 누구인가? 국민의당이 당을 깨고 나갈 때, 민주당을 지켜야한다고 입당한 세력들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의석 40석을 탐해 도로 새민련으로 회기하길 바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데 소위 중진들의 생각은 다른가보다. 어제(11일) 중진의원연석회의에서(원혜영, 박병석, 오재세, 조정식, 박영선, 변재일, 문희상, 이상민, 이종걸, 설훈, 강창일, 이석현 참석) 흘러나온 이야기는 추미애 대표가 비판의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이종걸 의원이 YTN 신율의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추미애 대표의 과장된 표현이나 이런 것이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악화시키는 데에는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라며 "추미애 대표의 그런 과한 표현에 대해서는 유감 표명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신율의출발새아침] 이종걸 "추미애, 국민의당에 유감 표명해야"


  민주당 의리 없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 아니지만,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든다. 저런 이야기들은 평론가들이라면 몰라도, 동료 의원이 하기엔 부적절한 것 같다. 설령 추미애 대표의 발언이 대표로써 부적절했다 생각하더라도, 그 발언으로 국회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하더라도 이런식으로 흔들면 안된다. 우리반 친구가 어디서 맞고 들어오면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더라도 찾아가서 싸워주는 것이 의리 아닌가? 하물며 당 대표가 공격을 받는데, 울고싶은 아이 뺨 때려준 격이라고? 유감 표명을 하라고? 민주당 지지자의 한 사람으로 나는 당신들 고매한 정치 평론, 양비론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리 편이 맞으면 함께 맞아주고, 함께 싸워주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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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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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보조작 사건 공모 여부를 두고 조사중에 있는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지난달 폭행사건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TV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29일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인천의 한 공원에서 39살 남성을 폭행했다. 영상을 보면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말리는 듯한 두 명과 실갱이를 하고 있다. 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가 그 앞에 무방비 상태로 앉아있다.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와 몸싸움을 하는가 싶더니 앉아있는 남성의 얼굴을 향해 그대로 발길질을 한다. 남자는 멀리 도망가 주저앉는다. 저항 같은건 하지 않는다. 전치3주 진단을 받았고, 현재 경찰에서는 불구속 의견으로 송치된 상태로 알려졌다.




  이 폭행 사건이 국민의당과 연관이 있는지 아직 판단 할 단계는 아니다. 폭행의 이유도, 피해자, 동석자들의 신원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TV조선에서 영상을 입수한 경위, 한 달이 지난 이 시점에 공개된 것까지 궁금한 지점이 많다.


  이준서란 인물을 빼면 특별할 것 없는 영상이기 때문에, 관련 없는 3자가 우연히 촬영하여 한 달이 지난 지금 제보했을 확률은 없어보인다. 최소한 이준서 전 최고위원을 알고 있는 인물이 촬영하고 묵혀둔 것이라고 의심된다. 영상이 폭행 증거로 제출이 됐고, 경찰로부터 흘러나왔다고 하기에도 찝찝하다. 다른 증인이 없는 상황도 아니고, 제 3자가 경찰서에까지 출두해서 영상을 제출해야할 필요성이 납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가 어떠한 저항이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준서가 서 있고 피해자는 상체를 약간 숙인채 앉아있다.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발길질에 나가 떨어진 이후에도 별다른 대응이 없다. 개인사정이라고 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기에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할 정도로 화가 난 것일까? 그것도 원내 3당의 최고위원까지 지낸 당직자가 벌건 대낮에 보는 눈이 많은 공원에서 발길질을 할 정도로.


  현재 나온 정보만으로 '국민의당에서 이준서까지는 자르기로 결정하고 터트렸다'라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이준서를 끌어안기에 더 부담스러워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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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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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가 정치인, 아니 정치 대안으로 떠올랐던 2011, 누구도 안철수의 소통에 대해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글을 쓰기 위해 당시 기사들을 찾아보니 별 걸 다 '소통행보'라고 한다. 책을 내는 것도,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도 모두 소통이었다. 돌아보니 웃기다.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매체에 나오는 걸 소통이라고 하지 않잖아? '기업 광고를 찍어도 소통행보라 하겠네, 씨바'라고 생각했다.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도 당시에는 안풍에 취해있었기에 소통해주시는 안철수님께 감사했다. 돈과 시간을 들여 '안철수의 생각'을 읽었다. 사실 대단한 식견이 담겨있는 책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뭔가 고마웠다. 이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 그랬다. 뭐 메시아 같은 거. MB 가카 치하의 엄혹한 세상, 가끔이지만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안성행 첫 차에 몸을 싣는 삶은 피곤했다. 친구들은 시위 한 번 잘못 나갔다가 연행 되어서 군대도 원하는 때에 못가고. 추운 겨울 물대포 앞에서 '온수'를 외치던 그 때, 그때가 바닥인 줄 알았다. 박근혜가 당선될 줄 누가 알았겠나. 어쨌든 명박산성을 세우는 불통시대를 끝내 줄 메시아가 필요했다.

 

  안철수는 소통의 상징이었다. 전국을 순회하며 청년들과 만나 소통하고 공감했다. 나는 가본 적 없지만, 그런 이미지였다. 저 사람은 나이도 많은데, 가진 것도 많은데, 기득권인데도 우리들 목소리를 경청해주는구나. 이런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된다면 단지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을 넘어서 바꿔줄 수도 있겠구나.

 



  안철수의 소통에 의문을 갖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측근으로 알려졌던 금태섭 변호사의 저서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를 읽게 된 것이다이 책에서 금태섭 변호사는 안철수의 소통에 대해 신랄한 문제 제기를 한다캠프의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았고모든 중요한 결정이 비선라인을 통해 결정된다고. 2012년 대선후보 사퇴할 때도,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과정도 공식라인의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료 의원들과의 소통도 원활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김광진 전 의원은 팟캐스트 방송 장윤선의 팟짱에 나와 같은 당 의원 50명이 모였는데 안철수와 전화 연결되는 의원이 없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안민석 의원은 tbs 방송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서 국정감사 기간 동안 동료 의원들과 밥 한 끼 한 적이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국민의당은 안민석 의원이 밥을 못얻어 먹어 삐친 것처럼 발언을 호도했다. 본질은 동료 의원들과의 소통이 없다는 지적이었는데, ‘혼밥만 남고 뉴스공장은 방심위에서 징계를 받았더랬다.


  언론과의 인터뷰도 소통의 달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기자회견 후 질의응답이 없기로 유명했다질문을 받지 않는 기자회견은 사실 의미 없다그냥 보도자료를 텍스트와 영상 버전으로 만들어 보내면 그만일 일이다. 국민과 소통하자고 하면서 언론의 질문을 피하면 가가호호 방문하겠다는 건지.


  '제보조작 사건' 국면에서 안철수는 소통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질의응답은 커녕 기자회견조차 없다. 조작에 관여를 했든 하지 않았든 선거의 최종 책임자이자, 범죄의 수혜자인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식 블로그엔 관련 질의를 하면 글이 삭제되고, 댓글이 제한된다. 안철수가 변한 것일까, 2011년의 내가 안철수를 오해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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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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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우리 국민이 뽑은 소통의 달인은 누구였을까? 2011년 12월 1일 MBN의 개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안철수였다. ('소통의 달인' 안철수…유명인 11명중 1위) 5점 만점에 3.87점. 문재인 현 대통령보다도, 유시민 작가보다도 0.8점 이상 높은 수치다. 이명박 가카와 비교하면 거의 더블 스코어. 그도 그럴 것이 2011년은 정치인 안철수가 탄생한 배경이 된 소위 '안풍'이 전국을 강타했던 해였다. 전국을 돌며 청년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청춘 콘서트를 통해 그는 '소통의 아이콘', '청춘의 멘토'로 급부상 했었던 해였다.


  

2011년 12월 1일 매일경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지도 벌써 열흘째, 소통왕 안철수는 아직 말이 없다. 즉각 페북으로 하려고 했다는 입장 발표는 하루하루 늦어지고 있다. 이러다 대법 판결이 난 이후에야 입장발표 하는 건 아닐런지.


  안철수가 어떤 입장 발표를 할지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이름을 검색해보지만 새로운 뉴스가 없다. 그러던 중에 검색에 걸린 글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해외동포인 내가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라는 글이었다.


  솔직히 후지단 생각밖에 안들었다. 무릎팍에 나온 안철수의 이미지를 늘어놓고 갑자기 미국을 찬양하고 그래서 안철수가 짱이라는 구조를 지닌 참으로 이해해주기 괴팍한 글이었다. 디씨 갤에서 퍼온 글이라는데, 링크 타고 간 원본 글에 수준 높은 글이란 댓글에 한번 더 놀랐다. 나도 글 쓸땐 집중해서 열심히 하는데, 하아. 무튼.




  또 한 번 놀란 건 찬양일색의 댓글 때문이었다. 몇 개만 캡쳐해봤다.




  문준용씨는 이 사건의 피해자 아닌가? 안철수는 범죄의 수혜자였고. 문준용이 조사 받으라는데, 조사 받는다면 결과는 믿을거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검찰, 정권 욕 하면서 안 믿을 거면서. 대한미국은 그냥 해프닝 아닌가? 대통령이 저런 실수도 공개 사과해야해? 국민의당이 민주당이랑 손 잡고 안철수 죽이기에 나선다는 대뇌망상은 참. 이유미는 안철수에게 도움 안되는 일(?)을 했다는데, 민주당이 기획을 했고 이유미가 프락치라는 거야? 그런데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지? 이상한 일이네. 하고 댓글을 남겼다. 조금 거칠었는지도 모르겠다. 밤꽃냄새가 너무 진해서 조금 흥분, 아니 짜증이 났다. 그런데 내 댓글에 누가 댓글을 달았다는 알림을 보고 다시 들러봤는데.


  얼레? 내 댓글이 다 지워졌다. 나를 거론하면서 시비터는 댓글은 남아있고. 그리고 내 아이디는 제한을 걸어서 더이상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재미있어서 댓글 단 거 아닌데, 허위 사실이 마치 사실인양 퍼지는게 싫었고, 걱정돼서 댓글 몇 개 썼는데. 솔직히 내가 10선비 기질이 다분해서, 지적질 하는걸 좋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그런데 댓글을 다 지울 일은 아니지 않나? 개인 블로그면 그럴 수 있지. 그런데 정치인 공식 블로그잖아. 팬페이지나 팬카페에 들어가서 그랬다면 매너가 아닐 수 있는데, 블로그 잖아. 팬이 아닌 사람들도 드나들 수 있는. 안철수는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인인데. 사안에 대해서 입장을 묻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소통의 달인이라면서, 이게 소통이야?


  그래서 형 아이디를 빌려 다시 댓글을 달았다. 또 지울까 싶어 이번에는 조금 더 정중하게. (파란 박스가 본인)



  다 지워버려서 현재 남은 건 쉐도우 복싱 뿐.




  참 기분 더럽다. 지울거면 얘 것도 지워야지. 꼭 내가 삭제될 만한 수준의 댓글을 달았거나, 얘 주장대로 무논리, 일관성 없는 억지 주장을 한 것 같잖아. 더 짜증나는 건 내가 진 거 같잖아? 


  안철수의 블로그에는 안철수 비판 댓글은 달면 안되는 거구나. 안철수식 소통은 듣고 싶은 말은 박제하고 듣기 싫은 말은 지우는 '조작'인 것이구나. 게다가 문빠는 문재인 블로그 가서 놀라는 안빠의 발상. 안철수에게 듣고 싶은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왜 문재인 블로그에 가야하지? 좋은 말만 듣게하고 싶은 그 마음 모를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이라면 응당 겪어야 할 일 아닌가? 그에게 안철수는 연예인일 뿐인 것일까?


  꼬운 안빠들은 댓글 달아라. 나는 이제껏 댓글 지워본 적 한 번도 없다. 이 블로그는 소통하자고 만든 블로그니까.


ps. 안철수가 블로그 운영하는 건 아니잖아요, 하면 더 할 말은 없다. 안철수는 뭐 얼굴 마담일 뿐이고 죄다 수족들이 잘못하는 거면. 뭐하러 안철수를 비판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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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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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에서 '제보조작 사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는 '첫째, 이유미의 단독범행이다. 둘째, 국민의당은 최선을 다해 제보를 검증했지만 실패했다'로 요약할 수 있었다. 내 말로 바꾸자면, 정치 지망생 하나에 의석수 40석을 보유한 원내 3당이 놀아났다. 최선을 다해 제보자 검증을 한 결과가 겨우 이메일 주소 하나일 정도로 무능했고, 그것 하나 믿고 폭로할 정도로 순진했다. 정치9단 박지원 의원이 대표를 맡고 있었던 정당 꼴이 참 우습다.




  나는 이유미의 단독 범행이라는 국민의 당의 발표를 믿지 못한다. 해결되지 않는 의심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첫째, 범죄를 통해 이유미가 얻을 이득이 보이지 않는다.

  범죄의 목적은 뚜렷하다. 문재인의 낙선, 안철수의 당선. 그런데 그로 인한 개인적 이득이 드러나질 않는다. 국민의당의 설명대로 안철수와 이유미가 친하지 않다면 더더욱 이해가 가질 않는다. 정치 지망생이라는 이유미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가장 구미에 당기는 이익은 '공천'일 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도 약속받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의 생각으로 범죄를 실행한다? 


  만약 정치 공작이 성공해서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국민의당의 주장처럼 이유미의 단독범행인 경우 이유미는 어떻게 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1. 안철수가 알아서 보상을 해준다.

  2. 범죄 사실을 들고 가서 안철수를 협박해서 받아낸다.

  3. 안철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니 만족하고 입 다물고 산다.



  둘째, 들통날 경우 이유미가 잃어야 할 것은 정치 지망생에게 너무 커보인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BBK 관련 허위사실 유포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살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10년간 피선거권 박탈이다. 사실상 정치적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과 비교해본다면 이유미가 치르게 될 죄값은 만만치 않아보인다. 모든 죄값을 치룬다 하더라도 증거조작으로 전국민을 기만한 정치인에게 표를 줄 사람은 없지 않을까?


  선거가 끝나면 모든 고소를 취하할 것이라고? 이 말을 범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상대의 넓은 아량을 기대하며 범죄를 저지르자는 것인데, 게다가 실패했을 경우 상대는 대통령인데, 이것만 믿고 실행했을까? 그리고 고소고발 사건들이 취하되는 것은 대게 상대의 아량 덕분이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의해 어느 정도의 딜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범인이라면 이 말을 믿는 경우는 두 가지 밖에 없을 것 같다.


  1. 문재인 대통령에게 고소 취하를 약속 받는 경우.

  2.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치적 딜을 받아 낼 수 있는 파워를 갖춘 인물에게 약속을 받는 경우.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안철수와의 면담에서 "대선시기에 고소고발 건에 대한 검찰수사 진행상황에 대해 당에서 당의 관심이 적어 서운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알려졌다.


  셋째, 이유미가 알기 힘든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다.

  국민의당 진상조사단은 제보를 신뢰하게 된 근거로 "실제 유학생활을 같이 안 했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유미는 "실제 유학생활을 같이 안 했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을 어떻게 알았을까?


  소설가적 재능이 뛰어났스까? 국정원이 알려줬스까? MB가 알려줬스까?


  누군가가 소스를 줬다면, 한낱 정치인 지망생에게 주는 것은 좀 부자연스럽다. 유력 인사를 통해서 내려간 것이 아니라면.


  넷째, 지도부는 공교롭게도 부재중이었다.

  선거 막판, 다 넘어간 상황에서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는 이용주 의원의 변명은, 오히려 뒤집기 위해서는 무리를 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초대형 폭탄이 손에 들어왔다. 실제로 의원들과 캠프 인사들을 비롯해 국민의당 전체가 선거 막판 이 폭탄을 곳곳에 터뜨리고 다녔다. 제조사는 확인해야하지 않나?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박지원 대표에게 바이버로 보고를 했다고 한다. 박지원 전 대표는 보좌관이 관리하던 핸드폰이라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최고위원에게서 올라온 핵폭탄급 보고를 보좌관이 자의로 커트했다는 말이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박지원 대표에게 답이 없자 전화로 확인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확인을 했는데, 조작 의심을 하지 못했다. 감쪽같이 속았다'라고 해명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데, 굳이 거짓말까지 하면서 보지 못했다고 잡아 뗀다. 마치 봐선 안될 보고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정리하자면, 단독범행이란 국민의당 결론에 따르면 이유미는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한다. 상대는 제일 유력한 대통령 후보. 어떠한 보상도, 안전 보장도 약속 받지 못한 채. 참 대단한 배짱과 충정이 아닐 수 없다. 한낱 정치인 지망생이 조작을 했는데, 그 내용이 개인의 조사로 알 수 없는 정보가 담겨있다. 정보력이든 소설적 상상력이든 참 대단한 인재다. 이번 사건으로 대한민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정치인 지망생 하나를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한 문장만 바뀌면 이해가 된다. '단독범행이 아니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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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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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전의원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문준용 취업특혜 의혹 제보가 거짓이었다는 발표 이후 벌써 나흘째다. 여론이 잠잠해지길 기다리는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안철수 전의원에 불리하게 흘러간다. 모든 언론이 그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6년전에도 그랬다. 안철수가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선언을 기대하며 모든 언론이 그의 입을 주목하던 때였다. 고민하고 있다는 한 마디에 온갖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다. 측근으로 알려진 박경철씨는 나꼼수와의 인터뷰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하면 정말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안철수의 화법에 대해 설명했다. 기존 정치인들의 문법과 다른 안철수 화법에 참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었다.


  정치인이 된 이후로도 변하지 않았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지만 신중한 이미지를 계속 고수한 것이다. 나는 이런 안철수의 특성이 정치인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법관이라면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 억울한 사람이 없게 판단을 해야겠지만, 정치인은 법관이 아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때로는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내는 결정을 하는 것이 정치인이다.




  안철수의 입장에서 정계은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억울할 수도 있다. 수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나는 안철수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안철수가 조작을 지시할 정도로 추악한 인물은 아닐 것이라는 마지막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수의 국민들도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흘 전으로 돌아가서, 만약 박주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이 아닌 안철수가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을 발표했더라면 어땠을까? 현재 당직을 내려놓았다는, 이유미의 단독 범행이라는 당위적 변명 뒤에 숨지 말고, 대통령 선거 캠프의 수장으로 책임을 지고 정계를 떠난다고 발표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까? 오히려 책임질 줄 아는 리더쉽을 보여줄 기회였을 것이다. 대선은 5년 후의 일이고 그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 것이 정치판 아니겠는가?


  이미 한 차례의 기회는 지나갔다. 정계은퇴를 하더라도 선제적으로 책임지는 모습보다는 코너에 몰린 이미지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버티는 것 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다. 정치인 안철수는 역설적으로 서울시장 후보사퇴를 통해 탄생했다. 정계은퇴는 역설적으로 정치인 안철수가 죽지 않는 유일한 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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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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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神)으로 불리던 프로야구 감독이 있었다. 최다 경기 출전, 최다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응용 전 감독((2910경기,1554승 68무 1288패)의 별명이 고작 '코끼리' 였던 것을 떠올린다면 과분한 별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성근 감독의 기록은 2651경기, 1388승 60무 1203패로 2위.) 아이러니하게도 '야신'이란 별명의 유래가 김응용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낸 김응용 감독은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이후 팬들 사이에서 '야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쨌든. 


  야신(野神)이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 75세의 나이와 한화 이글스에서의 성적, 구단과의 반복된 갈등 등을 고려해 볼 때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성근 감독은 약팀을 맡아 중상위 성적을 내는 팀으로 변모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1984년부터 7개의 프로야구 팀의 사령탑을 거치면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현재 프로야구 감독 중 그와 사제 관계에 있는 명단(조범현(KT), 김기태(기아), 김경문(NC), 양상문(LG), 조원우(롯데), 김태형(두산))만 봐도 한국프로야구사에서 그의 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다. 독단적인 선수단 운영으로 매번 구단과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고 상위권의 성적을 내고도 경질(대표적으로 2002년 LG,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경질)되기 일쑤였다. 재일교포 출신인 그는 학연, 지연으로 뭉친 프로야구 판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현재까지도 야구팬들에게 비판을 받는 지독한 승리지상주의의 원인은 그의 배경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선수 혹사, 사인 스틸, 지나친 심리전 등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하는 감독으로 비치며 야구팬들의 공적(公敵)이 되기도 했다. 투수 교체, 희생 번트 등 감독의 고유 권한까지도 안티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반쪽발이', '세이콘' 등 저열한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김성근 감독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신이 사령탑에서 내려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시는 김성근표 야구를 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성근 야구의 종언이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부임할 때만 하더라도 야구팬들은 김성근표 야구에 의문이 없었다. 성적 외적인 부분에서 잡음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런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 예견하지 못했다. 그가 '야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2015년 초반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킬 때, 상식을 넘어선 투수 운용에 물음표가 붙었음에도 누구도 감히 그의 야구관에 도전하지 못했다. 구단의 유례 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 했을 때, 한화 팬들은 화를 내기 보다는 내년의 희망을 기약했다. 2015년의 실패를 거울 삼아 한층 보완된 팀을 만들어 주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2016년엔 한 단계 하락한 7위로 마감. 2017년 현재 9위로 성적면에서 누구도 김성근 감독의 경질을 반대하기 힘든 처참한 성적이다.


  성적 뿐만 아니라 그의 야구관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잦은 퀵후크, 변칙 기용 등 단기전을 치르듯 매 경기 전력을 쏟아 붓는 운영이 한 시즌 144경기를 치르는데 올바른 방식이 아니란 인식이 싹튼 것이다. 또한 타팀에 비해 월등히 많은 훈련양, 비상식적인 불펜운용 등에 따른 주전선수의 잦은 부상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성근 야구 속에 투수의 분업이 확실하지 않던 시절 새 시대의 지평을 연 김성근이 빠져있었다. 현대 야구에서 투수는 더욱 분업화 되고, 철저하게 관리되는데 반해 김성근의 야구는 과거 김성근의 성공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한화 이글스의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니 씁쓸하다. 국민감독 김인식, V10의 김응용에 이어 야신 김성근까지. 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감독들의 마지막 발자국이 너무나 닮아 그렇다. 또한 은퇴할 때가 다가오는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렇다. 무엇보다 세대를 뛰어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이 비쳐 그렇다. 이제 일구이무(一球二無)의 극한의 스트레스를 내려 놓고 편히 쉬시길 바란다.


ps. 구단 입장에서 경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난 시즌 이후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실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모양새는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스타전에서 김응용 감독의 은퇴식을 치른 전례도 있듯, 지금이라도 예우를 갖추는 것은 어떨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야구를 지켜보고 사랑했던 팬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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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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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이 알고싶다는 매 회 우리 사회의 충격적인 민낯을 보여준다. 지난 28일 방송된 '소년 잔혹사 - 그 여름, 18년 만의 고백' 편 역시 충격적이었다. 18년 전 여름, 피해자 김건우(가명, 당시 15세)는 아이비리그 대학원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전도사의 집에서 함께 생활하게 됐다. 공부를 도와준다는 목적이었다. 명문대 대학원생에, 교회 전도사라는 타이틀 덕분에 가족들은 너무 쉽게 그를 믿었다. 15세 소년은 그 집에서 전도사를 포함 전도사의 동생, 또 다른 가해자 등 세명으로부터 체벌을 빙자한 '고문'을 당했다. 전도사로부터는 성폭행까지 당했다. 당시 가족들이 미국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전도사는 이미 런던으로 출국한 이후였다. 전도사의 동생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고, 단 한명 기소되었던 가해자는 보석금을 내고 나온 뒤 한국으로 도주, 기소중지 상태다. 전도사는 현재 한국에서 버젓이 목회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직후 네티즌들에 의해 가해자가 오창 성산순복음 교회 오베드로 목사라는 것이 밝혀졌다. 한미간 범죄인 인도조약이 맺어져 있으므로, 한국 법무부의 의지가 있다면 오 목사는 미국으로 송환돼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수도 있다. (미 백악관 서명 : 오베드로 목사는 아니고, 보석금 내고 한국으로 도망친 공범 안재필씨 송환을 위해 6월 30일까지 10만명의 서명이 필요합니다. 클릭하시면 바로 링크된 주소로 이동합니다. 이름과 메일 주소 적으시고, 메일 컨펌 하셔야 완료 됩니다)




  소위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나는 많은 목회자를 만났다. 존경할 만한 인격을 지닌 목회자도 여럿 만났고, 다수의 목회자는 존경까지는 몰라도 좋아할 만한 사람이었다. 한 명의 미친 목사 때문에 전체 목사를 욕하지 말라는 소리를 하려는 거냐고?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존경을 넘어 추앙하고, 신의 위치에 목사를 놓은 교인들에 관해서다.


  목사가 밥을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년 전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에 부임한 목사가 식사비를 낸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수십년 신앙생활 중 그런 경험이 처음이란다. 밥 한끼 사는 것이 대단한 일화처럼 회자될 만큼 목사들은 대접을 받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마태복음 20: 28)"이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공허할 뿐이다.


  목사는 평신도보다 우월한 존재인가? 어릴 적 목사가 직업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교회 형들과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월급을 받아서 생활하는데 직업이 아니라면 뭔지 따져 물었다. 당시 형들의 사고 체계에서 목사는 천한 노동자, 월급쟁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기억이다. 단적으로 목사들의 월급은 사례비란 이름으로 지급된다. 또한 목사님이 아닌 목사라고 부르는 것은 불경하다는 의식이 지배적인 것을 볼 때, 교회 공동체 내에 목사가 우월한 존재라는 편견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종교 공동체의 리더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맹목적인 신뢰로 이어졌을 경우 일어나는 부작용들을 우리는 수차례 목격해왔다. "빤스 내려라 해서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내 성도가 아니다"라는 주옥같은 명언을 남기신 불세출의 빤스 전광훈 목사,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전병욱 목사 뿐만 아니다. 큰 목사님 얘기는 잘못 했다간 명예훼손으로 고발 당할 수도 있으니 패스. 무튼 목사와 관련된 내연녀, 돈문제와 관련된 스캔들은 계속 터져나오고 있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분들은 괜찮은가? (여자 문제 불거져 사임할 뻔 한 임OO목사님 미국 가셨다면서요? 잘 지내시나요? 그러게 디카로 여자 알몸 사진은 왜 찍으셨어요?)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터졌을 때, 교계나 기독교인들의 제식구 감싸기식 행태다. 사탄의 시험에 빠졌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단골 레파토리. 그럼 불륜 관계를 가진 여성이 사탄이냐? 목사의 부정과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언론사 앞으로 달려가기 일쑤.("조목사 관련 PD수첩 방영 말라"...목회자·성도 등 1000여명 MBC 사옥 앞서 시위)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면 세상의 핍박으로부터 교회를 지켜야 한다며 달려든다. 우여곡절 끝에 노회 재판에 회부되어도 솜방망이 징계에 그친다.('성추행 논란'전병욱 목사 판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겼다) 이들 덕분에 빤스 전광훈 목사 아무 문제 없이 목회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병욱 목사는 삼일교회에서 사과하고 사임했지만, 1년 6개월 만에 홍대 새교회를 개척해서 잘 살고 있다.


  목사도 인간이다. 그들이 인간으로 살 수있게 돕자. 죄를 지으면 합당한 벌을 받고, 월급을 받으면 세금도 낼 수 있게.


  ps. 오베드로 목사님, 설교를 잘하신다는데 유튜브에서 삭제되고 있대서 안타깝네요. 꼭 들어보고 싶었는데... 설교 못 듣는 아쉬움에 설교 좀 할게요. 방송이 나간 이후에도 강단에 서셨다면서요? 암요, 그러셔야죠. 홈페이지 닫으셨더라구요. 그런다고 없던 일이 되지 않을 거에요. 얼굴이 팔려서 한국에서 살기 힘드실 거에요. 미국 이민 추천 드려요. 가서 처벌 받고, 피해자분께 사과하고 그렇게 죗값을 치룹시다. 하나님께만 무릎꿇고 회개기도 하지 말고, 피해자분께 꼭 회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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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건 것이 언제였을까. 회사를 그만둔 뒤 이어진 긴 백수 기간. 가끔 걸려오는 전화만 받아왔다. 아마 서른 둘 나이에 기생하고 있는 내 처지가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한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반찬을 보냈다며 전화를 한다. 아버지는 용돈을 보냈다고.


  전화벨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아침까지 잠을 못 이루다 겨우 잠들었기에 피곤했다. 그 이후로도 두 통의 부재중 전화가 더 와있었다.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성곽길을 걸어내려가다 아직 피지 않은, 하지만 벌써 붉은 홍매화 봉오리를 보다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 도서관에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았다고 둘러댔다. 아버지는 집에 내려와서 아버지 공장 일을 도울 생각은 없냐고 하신다. 당장 취업을 해서 받을 돈 보다 더 많은 월급을 주겠다고.


  아버지는 평생을 기름밥을 드셨다. 어렸을 적엔 가끔 아버지 공장에 가서 기름때 절은 기계를 닦고 용돈을 벌었다. 아버지는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강한 분이었지만, 내가 가업을 잇길 누구보다 반대했다. 아버지 주위엔 일을 배우는 자식들이 제법 있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혀를 찼다. 내겐 기름밥 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사향산업이 되어버린 탓도 크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시대에서 끝내길, 자식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길 바라셨던 것 같다.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좋아했던, 재능 없음을 탓하며 소설 한 문단을 써내지 않아도 끝내 믿어주던 아버지였다. 부끄러운 첫 직장에서 누구도 읽지 않는 짜깁기 기사를 쏟아낼 때 회원가입을 하고 댓글을 달아주었던, 두 번째 직장에서 나름대로 보람된 기사를 쓰던 땐 문자를 보내 눈물이 난다’ ‘대기자가 될 것 같다며 응원해주던 아버지가, 그만하자고 하신다. 내려오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든 알아서 생계를 꾸리라고 하신다. 평소 사랑한다, 믿는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으셨다.


  안다,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란 걸.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란 걸. 아버지 성정 상 독립하라는 말을 모질게 하고 미안했을 것이다. 자신이 더 부유하지 않음을 자책하셨을 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사랑한단 말을 하셨더라면 끝내 울음을 감추지 못하셨을 분이란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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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방경찰청이 내 통신자료를 훔쳐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 딱 7일이 지났다. 나는 수사기관의 정보수집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수사기관이 필요한 정보를 요청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법적 제한을 둬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수사기관이 개인 정보에 접근할 때에는 영장이든 어떤 형태든 다른 기관이 심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수사 종료 후에는 개인정보에 접근한 사실을 알리고, 그 사유 또한 밝혀야 한다. 수사 종료 후 개인정보의 처리에 관해서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현재 우리 제도는 이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영장이 없이 개인 정보를 요청하면 이동통신사는 조건 없이 내어준다. 이 과정의 편의 때문에 수사기관은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한다. 이런 행정 편의주의만 수정해도 1년에 1000만여 건에나 달하는 정보조회는 줄어들 것이다. 게다가 정보 조회 사실을 알려주지 않기에 따로 확인하지 않는 한 그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테러방지법 반대를 위한 필리버스터 중에 논란이 일지 않았다면 대부분 확인하지 않고 넘어갔을 일이다. 정보조회 사실을 알아낸다 하더라도 이유조차 들을 수 없다.


  나도 이동통신사와 서울지방경찰청에 수차례 전화했지만 핑퐁게임 속에 그 답을 듣지 못했다.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2)엿본건 사실이지만 이유는 묻지마) 현재는 자료제공 요청서 정보공개를 신청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답답한 마음에 나름대로 이유를 추정해보기도 했다. 나는 정답에 가까울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경찰이 내 통신자료를 엿본 이유(추정)) 그래도 그 이유를 꼭 들어야겠다. 그리고 현행의 수사관행이 바뀔 때까지 계속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어제는 오픈넷을 통해 한겨레 기자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은 오픈넷에서 통신자료 제공과 관련된 공익소송을 진행한다고 해서 참여하기로 했다. 승소할 가능성은 낮다고 하지만. 끝까지 물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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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수준 낮은 어뷰징 기사, 짜깁기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들을 통칭한다. 더 나아가 기본적인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취재기자들도 기레기라 불리기도 한다. 심지어 기사의 정확성과 상관없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기자를 조롱하는 언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나는 전직 기레기다. 어뷰징은 하지 않았다. 어뷰징을 할 만큼 큰 언론사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취재도 하지 않았다. 기레기로 일하던 6개월간 취재 건수는 단 세 . 그나마도 전화 통화로 팩트 체크한 것이 한 번, 기사는 쓰지 않고 취재 연습차 한 번, 선배 취재에 동행 한 것이 한 번.


  내가 담당한 일은 여러 언론사 기사들을 짜깁기해 새로워 보이는 위클리 기사를 생산하는 일, 연합뉴스를 긁어 문장을 조금 손봐 데일리 기사를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일이었다. 또 한가지, 선배 기사를 고치는 일도 종종했다. 선배는 기사를 쓰고 나면 내게 문장 확인을 부탁했다. 기본적인 문장력이 되지 않았던 선배는 부장에게 혼나는 것이 일상이었고, 내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사전 검열을 부탁한 것이다. 큰 틀에서 세 가지 다 교정 교열이라고 할 수 있으니,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한 셈이다.


  이 글은 기레기가 창궐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전직 기레기의 경험을 통해 기레기는 무엇을 먹고 사는지 확인하고, 기레기를 욕하는 우리가 먹이를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려고 한다.




 

소형 보수신문의 먹거리


  20139, 대학교를 수료한 상태에서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으로부터 취업 자리를 소개받았다. 아마 제 앞가림하기 힘들어 보이는 제자를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셨을 것이다. 학과 선배가 광고영업을 하고 있는 신문사라는 간단한 설명만 듣고 이력서를 넣었다. 그렇게 면접 날짜가 잡혔고, 사무실에 들어간 순간 몸이 굳었다. 어쩌면 건물 앞에 서 있는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상을 보고 발길을 돌렸어야 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신 나는 사진을 찍어 조롱 섞인 문자를 친구에게 보냈던 것 같다.


  사무실에 쌓인 신문 1면 제목이 무려 좌빨 본색’. 내란음모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쓰고 수감되는 이석기 전의원의 일그러진 표정이 내 얼굴 위로 겹쳐졌는지도 모르겠다. 빨갱이 소굴이라고 오해받는 학과의 학생회장을 하며 학내 투쟁을 지휘하기도, 대규모 집회에 참가하기도 하며 교류하던 소위 운동권친구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소설 빨치산의 딸로 알려진 선생이 내게 이 회사를 소개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 사회생활을 이런 곳에서 시작해도 되는가따위의 고민을 하는 통에 면접에선 한문으로 내 이름을 쓰라는 간단한 문제에도 답하지 못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온 내게 선배는 이념같은 건 신경 쓰지 말자고 했다. 선생은 회사에 다니며 소설 쓸 생각이나 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기레기가 됐다.


  출근을 하면 연합뉴스에서 기사를 받아(후불 계약을 했으나 대금을 지불하지 않았으니 갈취해가 더 적확한 표현) 개작한 후 회사 홈페이지에 올렸다. 어뷰징을 위한 복붙은 하지 않았다. 어뷰징도 어느 정도 규모(포털에 등록된 업체)는 되야 한다.


  기자들은 기사 클릭 수를 확인 할 수 있다. 이 회사의 기사 클릭 건수는 두 자리를 넘었던 기억이 잘 없다. 그나마도 기사를 올리고 확인할 때마다 카운트가 되고, 발행인이 확인하고, 회사에서 내세우는 기사의 경우에는 기자가 F5 버튼을 눌러 세자리 수를 만드는 정도다. 외부인들은 아들이 살아 있는지 궁금한 내 아버지 외엔 아무도 안 들어온다고 보는게 맞을 거다. 기본적으로 인건비, 사무실 운영비, 인쇄비를 벌어야 신문사를 운영할 수 있다. 이 신문의 판매가는 1000, 매주 2만부 정도를 찍어냈지만 시중에서 이 신문을 사봤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온라인 광고 수입조차 올리지 않는 이 신문사는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1. 폐지 값

  반은 농담이다. 아니, 반만 농담이다. 지난 신문들이 창고에 가득 있었다. 찍어낸 순간부터 폐지 이외의 효용가치가 없는 이 신문이 문자 그대로 폐지가 되어 쌓여있는 것이다. 회사가 문 닫기 전, 창고에서 이 폐지들을 꺼내 차에 싣는다고 땀 흘려 일했다. 그 날이 내가 이 회사에서 한 일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고, 회사가 유일하게 정직하게 돈을 번 날이었다. 그날 번 돈으로 우린 퇴직 회식을 했다.

 

2. 지면 광고

  거대 언론사들이 하는 짓거리를 어설프게 따라한다. 기업을 까는 기사, 빠는 기사, 기사로 위장한 광고까지. 하지만 취재력이 메이저 언론사에 나온 뉴스를 베끼는 수준이기에, 광고 수입이라는 게 떼쓰는 아이 사탕 주는 정도일 수밖에 없다.


  기억나는 일이 있다. 한 번은 경기도 모 대학교 총장의 추문에 대해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한 여성이 젊은 시절 총장에게 성적 학대와 폭행을 당했다며 주장했고, 1인 시위를 하는 현장에 취재를 나가는 선배를 따라 나갔다. 나와는 다르게 선배들은 매주 취재를 나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선배의 취재란 것도 별다를 것이 없었다. 여성이 온라인에서 주장한 것을 육성으로 들었고, 크로스 체크 같은 건 없었다.


  기사가 나가고 대학교 측에서 연락이 왔다. 기사를 내려주는 조건으로 광고를 고려해보겠다는 전화였나 보다. 국장의 지시에 따라 기사를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이 누가 기사 내렸냐며 소리를 질렀다.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인데 좀 달리 보였다. “광고비 입금도 되기 전에 기사 내려버리면 뭐가 되냐는 말을 듣기 전까지 잠시. 무튼 선배는 특종비 명목으로 소정의 상금을 받았고, 회사는 광고를 받지 못했다.

 

3. 연맹의 후원

  내가 월급을 받을 수 있었던 사실상 유일한 이유는 연맹이란 단체 덕분이었다. 관변단체 중 하나인 연맹은 회사 설립에 제법 큰 돈을 출자했다. 사무실 역시 연맹에서 빌렸는데, 임대료를 냈는지는 모르겠다. 2만부의 폐지는 전국의 연맹 지부로 뿌려졌다. 어떤 사람들이 몇 부나 읽었는지, 폐지를 팔아 회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안타까운 점은 이 연맹이란 단체에 국가보조금이란 이름으로 막대한 세금이 지원된다는 점이다. 횡령 등의 비리 문제가 끊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회사가 반쯤 문을 닫고 전 직원이 퇴직을 하게 된 것도 연맹의 지원이 중단 되면서부터였는데, 길고 긴 무직자 생활이 시작됐지만 자연보호의 측면에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매주 발행되는 폐지란 참. 현재 이 회사는 이름을 바꾸고 2~3개월에 한 번 신문을 발행한다. 연맹에 필요한 이슈가 터지는 경우에 발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소형 진보언론의 먹거리


  퇴직을 하니 홀가분했다. 당시 대표가 새로운 신문을 창간한다며 일자리를 제안해왔다. 수개월 옆에서 봐온 입장에서 전혀 공정하지 않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의 신문사였다. 한 번 선택은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번째 선택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망하지 않은 것을 보니 제안을 받았으면 아마 나는 계속 기레기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실업수당을 받으며 연명할 수 있었기에 거절했다. 일자리가 그리 없을 줄을, 실업수당이 아닌 부모님 등골을 빼먹으며 연명할 줄을 그때는 몰랐다.


  201312월 조그마한 신문사의 면접을 봤다. 진보적 논조의 소규모 언론사였다. 멋들어진 홈페이지는 아니었지만 정치·사회보다 노동·인권, 통일, 참살이 등의 카테고리가 전면에 배치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무실은 홈페이지보다 더 초라했다. 석유 곤로 위에 놓은 양은 냄비에서 물이 끓고 있었다. 석유 곤로 때문인지 벽지는 누렇게 변색 되었고,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면접을 봤던 국장의 인상이 좋았다. 언론인으로의 곤조가 말투와 얼굴에 배어있었다. 사무실에 국장 외에 편집기자 한 명 밖에 없었는데, 다른 기자들은 어디 있냐는 질문에 국장은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은 건 무려 4개월이 지난 후였다. 조금 이상했지만 기뻤다. 언론사가 아닌 회사에 더 나은 조건으로 입사가 거의 결정된 상황이었지만, 이 조그마한 언론사를 선택한 것은 아마 과잉수정 오류였을 것이다. 기레기였던 지난날에 대한 참회의 마음도 조금 있었다. 1개월이란 짧은 기간이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나는 기레기가 아니었다. 매주 1천부 정도의 신문을 발행했지만 무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회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1. 후원

  하루는 국장이 취재 나가기 전에 점심이나 먹고 나가라고 했다. 흔한 일은 아니었다. 점심시간 전에 기사 마감을 하고 취재를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식대로 10만원을 받았는데, 한 달치일 거라고 당시엔 생각도 못했다. 취재를 나갈 때면 국장은 밥은 꼭 맛있는 걸 사먹어야 한다. 건강해야 일도 할 수 있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취재나가는 24일 점심 저녁을 괜찮은 음식을 사먹기에 10만원은 턱없이 부족했다.


  반주를 한잔 하고 알딸딸해진 국장은 내가 후원 계좌를 열면 1억 모으는 건 일도 아니다라고 허세 가득한 말을 했다. “후원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런데 손 벌리기 싫어서 안한다따위의 이야기를 늘어놨다. 하지만 나는 후원계좌를 여는 일을 보지 못하고 퇴사했다.

 

2. 광고

  광고 가격까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광고 수입을 통해 내 월급이 입금 된 것은 확실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외에 수입이 떠오르지 않는다. 10년간 직원들 월급 밀린 적이 없다니 분명 적자는 아닐 텐데. 그렇다고 광고지면이 많은 것도 아니라 아직도 신기할 따름이다.

 

3. (혹은 보지 못한 선후배들)

  첫 날, 정장에 구두를 신고 출근했다. (그 전에는 취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보니 구두가 불편한 줄 몰랐다. 발이 퉁퉁 부어 다음날부터는 등산화만 신고 다녔다.) 탐방 기사를 써오란 지시를 받고 취재를 나갔다. 지시 사항은 딱 한 가지, ‘이화동 벽화마을’. 사진기자는커녕 사진기, 노트북 하나 지급되는 것이 없어 형에게 빌린 DSLR15인치 노트북을 들고 취재를 다녔다. 회사에 있는 데스크탑은 윈도우 xp가 버거워 보였고, 요즘은 찾기도 힘든 CRT 모니터가 연결돼 있었다. 불편해도 개인물품으로 해결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취재를 하고 돌아와서 기사를 작성하는데 이상하다. 편집기자와 국장 외에 선배 기자들이 없다. 알고 보니 우리 회사에 소속된 취재기자는 나 혼자였다. 이후 나는 필명을 하나 만들었다. 너무 많은 기사가 내 이름으로 올라가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내 기사 외에 나머지는 국장의 인맥으로 받는 외고 기사들이었다. (그들도 필명으로 활동했다.) 퇴직 후에 내게도 외고를 쓰라고 연락한 것을 보면 아마 퇴직한 (일면식 없는) 선배들이 용돈 벌이를 하는 모양이다.


  일 자체에는 자부심을 느꼈다. 한달 동안 100여개의 기사를 작성했는데, 단 하나도 남의 글을 베껴 쓰지 않았다. 거의 매일 광화문에 나가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참여연대·환경운동 연합의 활동가를 만나고, 민노총·전교조 소속 조합원을 인터뷰 하며 메이저 언론에서 깊이 다루지 않는 이야기를 기사로 써냈다. 매주 수요집회에 나갔고, 동자동 쪽방촌을 찾아 소외된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회의를 느낀 건 4.24 총파업 결의대회를 취재하면서였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의 구호가 내게 와닿지 않았다. 오전 8시 반에 출근해서 전날 취재한 메인기사(A4 4~6장 분량)를 마감하고 집회 현장 취재하러 출발, 스케치 기사 (1) 마감, 이후엔 또 다음날 메인 기사 인터뷰. 8시 퇴근은 기본에 일정이 맞지 않은 경우 12시 퇴근. 광화문 스케치 기사 (1) 마감 하고 인터뷰 녹취록 작성. 그나마도 주말 중 하루는 취재, 하루는 기사 마감.


  식비로 10만원을 지급 받았을 뿐 교통비, 전화비 등 기본적인 취재비용도 모두 120만원이라는 알량한 월급에 포함돼 있었다. 내가 글을 쓰는 속도가 늦다며 “1장짜리 기사는 5~10분이면 써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국장 입장에서는 내 탓이겠지만, 계산을 해보니 최저임금이 되지 않았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정신승리를 하려는데 내 자신이 역겹단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저들의 노동은 가치가 없어서 돈이라도 받아야 하는 건가?


  고민을 하던 중 월급을 받았다. 현금으로. 그래도 무려 1년을 놀고 나서 번 돈이라 그런지 노동 의욕이 샘솟는 듯 했다. 우편함에 꽂힌 익숙한 봉투 하나를 보기 전까지. 건강보험 지로용지였다. 찾아보니 수습 혹은 인턴의 경우에도 4대 보험 가입은 법적 의무였다. 돌아보니 정신없이 취재하고 기사 작성을 하던 나는 정작 중요한 근로 계약서 한 장 작성한 적이 없었다. 다음날 출근해 지급받았던 사무실 열쇠를 책상에 놓고 나왔다.


  회사는 양심 있는 언론인 척 하며 기자의 노동력을 먹고 있었다. 난 기레기가 되지 않는 대신 먹이가 된 것이다. 어쩌면 면접 이후 출근까지 4개월 동안 누군가 먹이 역할을 하다 그만뒀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만둔 이후 누군가도 그러겠지. 요즘처럼 대졸 무직자들이 넘치는 세상은 커다란 뷔페일 테니. 수구 언론사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계속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3개월으로 정했던 수습기간을 줄여준다는 언질을 받기도 했으니. 홈페이지 전면에 내세운 노동·인권이라는 카테고리를 보며 든 헛헛한 마음이 들었다.

 

전문지는 무엇을 먹고 사나?


  전문지에서 근무한 경험은 없다. 면접을 한 번 봤을 뿐이다. 이달 초에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구직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보고 연락했다며, 면접을 보자고 했다. 전문지에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연락 온 전문지가 다루는 영역은 신문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뚱맞은 곳이라 고사할 마음이었다. 하지만 오랜 무직 생활에 지쳐 조건이라도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업계 1위라는 대표의 말에 신빙성이 느껴질 정도로 신문은 광고로 가득했다. 24면의 주간 신문의 12면이 광고였으니. 이건 광고지야 신문이야 싶었다. 대표의 첫 질문은 광고 영업 할 생각은 없어요?”였다. 기억나는 또 하나의 질문은 희망연봉을 조금 낮추면 안되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은 경력 5년은 돼야 맞춰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였다. 참고로 희망연봉은 2200이었다. 네고는 불가하단 말에 대표는 광고 영업 할 생각은 없어요?” 또 물었다. 아마 광고 영업을 하면 그 값을 맞춰 줄 수 있는가 싶다. 역시 신문에서 기사보다 광고가 중요한 세상이다.

 

기레기는 왜 양산되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무도 기사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는 기사를 생산하는 사람들이다. 기사를 팔아 돈을 버는 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진보 보수를 가르지 않고 누구도 기사를 팔아 돈을 벌지 않는다. 기업을 까거나 빠는 기사를 쓰고 그 신문을 들고 기업들을 돌아다니며 광고 영업을 한다. 한 번의 클릭을 더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쓴다.


  언론사들이 어뷰징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적은 비용을 들여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질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기레기를 욕하는 그대들에게 묻고 싶다. 양질의 기사를 소비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돈을 소비하느냐고. 자전거를 받기 위해, 현금 몇 만원을 받기 위해 조중동을 소비하던 천박함이, 인터넷의 발달 이후로 기사는 공짜라는 인식으로 치환되어 기사보다 광고가 우선인 기레기들을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은 언론 환경을 원한다면 기사를 사주길, 후원해주길 당부한다.


  두 번째로 우리 의식 수준을 돌이켜보자. 유명 연예인 비키니, . 이런 제목을 보면 나도 모르게 클릭하고 있진 않은가?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면 유입 로그를 확인하게 된다. 424 총파업과 관련해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인터뷰 글을 올린적이 있다. 민중총궐기 이후로 한상균 위원장 관련해 유입 수가 증가했다. 그런데 들어오는 유입 키워드를 보면 한상균 월급’, ‘한상균 자식따위가 많다. 엄마부대봉사단 주옥순 대표의 블로그 탐방기에는 주옥순 자식따위의 키워드로 유입된다. 왜 민주노총이 파업을 했는지, 주옥순 씨의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보다 신상 털이식의 개인 정보에 관심이 많은 듯 보인다. 국민은 그들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고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면 언론의 수준도 올라가지 않는다.


  기레기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기레기라고 욕하고 조롱하고 넘어가는 것으로는 기레기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쓰레기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사와 기레기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을 하자. 이에 앞서 어뷰징 기사를 클릭하지 말자. 먹이가 사라지면 기레기는 자멸할 것이다. 더 나아가 좋은 언론을, 기자를 키우길 원한다면 열심히 쓴 기사를 소비하는데 드는 돈을 아까워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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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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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내 정보를 제공받은 사실을 알고 난 뒤 가장 궁금한 것은 '왜?'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정보공개포털을 통해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그 답을 기다리는 현재, 나름대로 그 이유를 추정해본다.


  내가 받은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는 몇가지 단편적인 사실을 알려줬다.




  1. 서울지방경찰청이 자료 제공을 요청했다.

  2. 제공요청 사유는 블라블라블라.

  3. 고객명, 주민번호, 이동전화번호, 주소, 가입일, 해지일의 정보를 제공받았다.

  4. 2015년 11월 18일, 2015년 12월 23일에 제공받았다.


  나는 제공일자에 집중했다. 당시 통화기록은 이미 핸드폰에서 지워진 상태. 문자를 주고 받은 내역을 들여다보던 중 당시가 민중총궐기로 한참 시끄러웠던 시기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박근혜 정권이 보호장구 하나 갖추지 않은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발포한 날, 기사로 그 장면을 접하고 화가 나서 광화문으로 향했었다. 경찰청이 자료를 제공받은 날은 그 다음주 수요일. 12월 19일, 제3차 민중총궐기. 시청앞에서 시작, 백남기 농민이 입원중인 서울대학교 병원 앞까지 행진했던 날. 경찰청이 자료를 제공받은 날은 그 다음주 수요일.


  두 날짜의 공통점을 발견했지만 이유를 짐작할 수는 없었다.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5만여명 중 한명일 뿐인 내 정보를 들여다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한 이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자 민중총궐기의 주동자로 지목된 바 있는 그와 통화했던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처음부터 그를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와 통화한 것이 꽤 오래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던 것은 4월 20일. 민주노총 424 총파업을 앞둔 시점이었고, 인터뷰 일정을 조율하기 위해 몇 번 통화한 것이 전부였다. (4.24 총파업 나서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인터뷰) 당시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낸지 꽤 된 나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이다.


  내 추정이 사실이라면 끔찍하다. 이 일은 국가기관이 마음 먹는다면 7개월(정보 제공 당시 기준)이 지난 두세번의 짧은 통화를 빌미로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들여다 볼 수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테러방지법이 어떻게 악용될 것인지 미래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그마한 빌미로 저들이 영장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정보는 이제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의 기본정보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공된 정보가 어떻게 이용되고 이후 어떻게 폐기되는지 조차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이를 통해 국가에서 이념지도를 빅데이터로 만드는데 활용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밖에.


  다수의 기자들 정보가 제공된 사실도 드러났다. 주로 민주노총을 취재하거나 집회 현장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라는 소리도 있다. 기자들의 통화 내역조회는 기사의 출처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털리는 줄 모르게 기자들도 털렸다)


  내 추정이 틀리길 바라지만, 그럴 확률은 낮아보인다.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니 기다려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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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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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방 경찰청에서 내 정보를 가져갔다는 확인은 했지만 이유를 들을 수는 없었다.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2)엿본건 사실이지만 이유는 묻지마) 그렇다고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일. 오픈넷에서 이통사 통신자료 제공에 대한 알권리 찾기 캠페인(여기)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고, 캠페인에 참여하기로 했다. 오픈넷에 메일로 내가 받은 자료와 이동통신사 서울경찰청에 전화했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메일을 보냈다. 오픈넷에서는 아직도 제보를 받고 있다. 만약 수사기관에서 본인의 통신자료를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한다면 영장없는 통신자료 제공 제도 개선을 위해 꼭 제보해주시길 바란다.





  오픈넷에 제보하고 기다리던 중 '제한'이란 분의 댓글을 통해 자료제공요청서 정보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료제공요청서 정보공개청구방법) 위 링크를 따라가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 덧붙이자면 정보내용란에 예시대로 작성하되, 문서번호를 기입해야 한다. 국정원에서 자료를 제공받은 경우에는 국정원 홈페이지에서 정보공개청구가 가능하다. 정보공개청구를 접수받은 기관은 10일 이내에 청구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니 10일만 기다리는 그토록 궁금했던 이유를 알게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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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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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기관에서 내 정보를 들여다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찝찝하다. 이름·주민번호·전화번호·주소 등 기본 정보라 하더라도. 졸지에 범죄자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요청하지 않았다면 내 정보를 수사기관에서 열람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날 뻔 했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열람사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신 정보' 엿본 이유 알려달랬더니.."법적 의무없다"며 거부)





  나는 이유를 듣기 위해 우선 서울지방경찰청에 전화를 했다.


  나 : 통신사에서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서를 받았는데,

       서울지방경찰청에서 2회 정보제공 받으셨더라구요.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A : 선생님, 흥신소에서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제공받은 사실을 확인하셨다고요?


  나 : 통신사에서요.


  A : 아, 통신사에서. 어떤부분을 제공받았다고 하세요, 서울청에서?


  나 : 고객명, 주민번호, 주소, 가입일, 해지일 이렇게요.


  A : 잠시만요. 고객명 전화번호 주소 담당자 누구로 되어 있으세요?


  나 : 담당자는 없고 그냥 요청 기관만 있구요, 문서번호 있는데 불러드릴까요?


  A : 요청기관이 서울지방 경찰청이에요?


  나 : 네네


  A : 잠시만요. 문서 번호가 있다고요 선생님?


  나 : 네


  A : 선생님 그러시면요, 이부분이요 어떻게 해서 지금 제공받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거고 왜 그렇게 제공 받았는지 하는거잖아요. 통신사에서요. 잠시만요. 저희가 이부분으로 확인 가능한지는. 서울청이라 함은 수사과도 있고 형사과도 있고 너무나 많아요 선생님. 때문에 이건 어디서 확인을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사실은.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저희 민원실 좀 확인 한번 해보겠습니다.


(대기음~~~)


  A : 여보세요 선생님 제가 확인 한 번 해봤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이런 경우가 있었다고 하는데, 저희가 문서반이라고 있습니다. 문서반 쪽에서도 저희가 확인 한 번 해봤는데요. 이렇게 해서는 선생님 안나온다고 해요. 저희 쪽에서. 선생님께서 통신사랑 한번 더 통화를 하셔서 문서번호가 2015 하고 아마 그게 청문이면 청문 수사면 수사 이런게 있을 거에요. 그걸 조금 더 자세하게 여쭤보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쪽에서는 선생님 그것만 가지고는 확인이 안된다고 하세요.


  전화를 받은 서울청 직원분은 상당히 친절했다. 그런데 통화를 끝내고 나니 영 개운치가 않다. 녹음한 파일을 다시 들으면서 그 이상한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붉은 글씨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나는 문서 번호를 불러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직원분께 번호를 불러준 적은 없다. 그런데 문서반에 확인했다는 그 직원은 이렇게 해서는(내 해석으로는 내가 받은 문서 번호로는) 안된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받은 문서 번호는 제2015-09***호 이런식이다. 청문이니 수사니 이런 글자는 없다. 문서번호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경찰청은 어떻게 알았을까?


  경찰청 직원과의 통화를 마치고 SK텔레콤 상담사와 통화를 했다. 두 분의 상담사 분과 통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깜빡하고 녹음하지 못했다. 녹음을 못한 앞선 통화에서는 요청 수사기관의 담당부서와 담당자를 알려 달라고 하자 수사기관을 통해서 요청해야 그 부분을 알려달라고 했다. 수사 기관에서는 통신사에서 그 내용을 받아와야 이유를 알려준다는데?? 다음은 두 번째 통화한 상담사 분과의 통화 내용이다.


  B : 고객님 조금 전에 통신자료 제공 사실확인서 문의 주셔가지고, 통화드렸었던 상담사인데요.(전화문의 후 약 1시간 이후에 걸려온 전화) 말씀해 주신 거, 열람한 이유가 궁금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희쪽에서 확인해보니까요, 저희 쪽에서 제공된 내용 같은 경우에는 담당 수사기관에서 열람을 요청하신 이유는 따로 확인이 안되고요, 저희는 그 수사기관으로 요렇게 제공을 했다는 제공 내역에 대해서만 확인되시는 걸로 그렇게 확인되세요. 


  나 : 그러면 어느 부서에서 했는지, 담당자가 누구인지도 알려주실 수 없나요?


  B : 네, 수사기관으로 한 번 문의를 해봐 주셔야 할 것 같아요.


  이렇듯 수사기관과 통신사는 핑퐁게임을 하듯 서로에게 떠밀고 있다. 그 사이에 낀 나는 수사기관이 내 정보를 엿본 이유를 듣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저 알고 싶을 뿐이다. 수사기관이 내 정보를 열람한 이유를. 현재 내가 밖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컨대 나는 죄가 없다. 그러면 이유를 알려줘도 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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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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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통신자료 제공사실 확인 요청을 했다. 별 생각은 없었다. 설마 하면서도 찝찝한 마음을 덜기 위한 요식행위였다. 나는 현재 가족 외엔 소속된 집단이 없다. 직장도, 정당도, 단체도 없는 흔하디 흔한 취준생. 가끔 가족·친구들과 통화하는 것 외엔 연락하는 사람도 없이 산다. 통신자료 내역을 들여다 보는 수사기관의 노력이 미안할 정도다. 그래서 요청 사실도 잊고 있었다. 오늘 오전 메일 한 통을 받기 전까지.



  전해받은 pdf 파일에는 내 통신자료가 2015년 11월 18일, 2015년 12월 23일 두 차례에 걸쳐 서울지방경찰청에 제공되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전달해주었다. 이유는 명시되어있지 않았다. 사소한 범칙금조차 내본 적 없는 나는, 대학 동기들이 연행됐던 FTA 반대집회에서도 그들보다 비겁했던 덕에 유치장 반대편에서 면회하던 나는... 왜?? 라는 물음을 지울 수 없었다. 서울지방경찰청과 SK 텔레콤에 수차례 전화를 했지만 아직 그 이유를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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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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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을 앞두고 야권지지자들에게 희망이 보이는 듯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작은 안철수 김한길 등의 탈당이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향해 겨눠야 할 칼끝을 문재인 대표와 자당 의원들을 향해 겨누던 이들이 사라지니 당내 갈등이 줄어들었다. 10만명의 시민이 입당을 하며 지지를 보였다. 표창원·김병관·양향자 등 이른바 문재인표 인재영입에 지지자들은 만족했다. 더구나 비례대표라던가 호남의 어느 지역을 약속 받지 않았기에 이들의 진정성이 빛을 발했다. 이에 앞서 입당한 홍보전문가 손혜원은 차근차근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나갔다. 국민 공모를 통해 더불어 민주당이라는 당명을 만들고, 이전과 다른 홍보 전략을 세워나갔다.


  이런 성과를 낸 후 문재인은 당권을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 넘겼다. 김종인의 과거 국보위 전력이 마음에 걸렸지만 눈감고 넘겼던 것은 선거 전문가라고 알려진 그가 승리를 안겨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표시절 완성한 시스템 공천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을까? 이기러 왔다는 김종인의 감언이설에 눈이 먼 탓일까? 누구도 현재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


  정청래는 2차 컷오프를 통과하지 못했고 재심마저 기각됐다. 뛰어난 의정활동 성적, 뛰어난 지역구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공천을 받지 못하자 지지자들의 극심한 반대가 일었다. 공천관리위원회는 납득할 만한 이유를 내놓지 못하고 '막말'이라는 궁색한 변명만 내놓았다. 이해찬 역시 공천을 받지 못해 결국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막상 쳐냈지만 대안조차 없는 형국이다. 공천관리위원회 역시 이 문제를 인정한다. 공천배제에 대해 묻는 기자를 향해서는 "정무적 판단"이라는 애매한 대답만 돌아왔다. 계속되는 기자의 질문에 김종인은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막말을 했다. 문재인 대표시절 영입한 김빈 예비후보는 청년비례대표 심사에서 떨어졌다. 김빈 예비후보는 트위터를 통해 "면접시간 5분도 이해하기 힘든데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온 것은 더욱 이해가 안 됩니다. 컷오프 이유에 대해 어떠한 설명이 없습니다.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내일 이의신청 할 생각입니다"라고 반발했다. 청년비례대표 부정심사 의혹이 언론을 통해 나오고 있다. ([단독] 더민주 청년비례대표 부정심사 의혹 있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떨어져서 지지자들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다. 누군가 심사에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하고, 기준은 공정해야 한다. 입학, 입사 시험도 그러할 진대.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선거에 나설 후보를 결정하는 일에서는 더더욱 엄정해야한다.


  30%까지 올랐던 더민주의 지지율은 정청래 컷오프 발표 이후 5% 급락했다. 정청래가 5%를 좌우하는 인물이라서? 아니다. 공천을 사유물처럼 생각하는 당신들의 행태가 꼴보기 싫어서다. 정신차려 더민주. 이대로 가다가는 100석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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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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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방영된 비정상회담 22회에서는 차별을 주제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각국의 국경과 국경을 둘러싼 분쟁에 관한 설명을 하던 중 독일 대표 다니엘은 “1차 세계대전 끝나고 독일이 잘못했다”며 독일의 과거 잘못을 인정했다. 이에 중국 대표 장위안은 “도킬(?)이 잘못했다는 다니엘의 말이 감동적”이라며 “우리도 언젠간 싸우지 않고, 국경선이 없는 날이 오면 진짜 좋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원래 마음이 닫혀 있었는데 프로그램을 하면서 마음을 점점 열고 있다”며 “아시아도 유럽 연합처럼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다 급기야 눈물까지 흘렸다.


  이후 이어진 토론에서도 독일 다니엘의 독일 과거사에 대한 반성은 이어졌다. "사실 한국에서 가끔씩 잘 몰라서 그러는 것 같은데 히틀러가 멋있는 사람이었다는 사람들이 있다"며 "히틀러는 절대 멋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도 좋게 보면 안되고, 정말 악마였다"고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택시타다가 기사 아저씨한테 그런 얘기(히틀러에 대한 찬양)를 들으면 독일 사람으로서 택시에서 내리고 싶다. 독일에서 이런 얘기하면 잡혀간다”며 히틀러에 대한 자신의 발언이 개인적 인식이 아닌 다수 독일인들의 의식임을 전했다.


  독일 다니엘의 발언을 들으며 필자의 마음에도 큰 울림이 있었다. 윗 세대의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전범 국가인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A급 전범들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모습과 대조되며, 가깝게는 선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친일·독재자의 후손들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과연 우리는 베트남 전쟁때의 학살과 만행 같은 잘못에 대해 얼마나 인정하는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의 교육을 받으며 역사 시간에 우리 선조들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 배운 기억이 없다. 친일과 독재에 대해서도 충분히 교육받지 않았다. 잘못이 반복되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역사 교육이 위정자들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 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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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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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최대의 돈잔치가 벌어졌다. 판이 벌어지기도 전부터 FA 시장의 규모가 지난해 기록한 총액 523억원을 뛰어넘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2000년 FA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인 19명이 FA 신청을 한데다, 잇딴 신생구단 창단으로 수효가 늘어난 때문이다. 뚜껑을 열자 예상보다도 뜨거웠다. 원소속 구단 우선협상 마감일인 지난 26일 하루에만 395억 5천만원의 계약이 이뤄졌다.


  초대형 계약들이 잇따라 체결됐다. SK는 최정에 4년 86억이라는 역대 최고액 계약을, 삼성은 윤성환에 4년 80억짜리 역대 투수 최고액 계약을 안겨줬다. 강민호와 장원삼이 기록했던 최고액 기록이 1년만에 깨진 것이다. 게다가 투수 최고액 기록은 올해 또 한번 경신될 확률이 높다. 장원준이 롯데의 4년 88억 제안을 거절하고 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장원준의 경우 몸값이1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보다 한단계 위로 평가받는 일본 프로야구보다도 FA 몸값이 비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7년간 75승에, 평균자책점 2.99를 기록한 지바 롯데의 좌완 에이스 나루세 요시히사는 3년간 우리돈 57억 원에 야쿠르트로 이적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의 평균 연봉은 우리의 4배에 달한다고 하니 현재 이뤄지는 80억짜리 계약들이 얼마나 거품이 낀 것인지 알 수 있다.


  비상식적인 FA 몸값 인플레의 원인은 무엇일까? 수효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 고교야구 팀이 4000여 팀에 달하는데 비해 우리는 고작 60여개의 야구팀 뿐이다. 게다가 9구단, 10구단이 창단 되면서 수효는 급격히 늘었다. 선수들의 몸값이 급격히 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최정상급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과거보다 늘면서 리그내 수준급 선수들의 수가 줄어든 것도 인플레의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인플레는 잡아야 한다. 대부분의 구단들이 모기업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상황에서 이런식의 과열 경쟁은 공멸의 길으로 이끌 수 있다. 특히나 전 세계가 경제 불황인 지금 이러한 지출은 기업들에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매년 적자 운영을 한다고 우는 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방법을 찾아야한다. 우리의 허접한 야구 저변을 봤을 때 사실 10구단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단한 팀을 없앨 수는 없는 노릇이니 공급을 늘이는 수밖에 없다. 


  FA 제도를 손질 하는 것이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FA 자격 취득 연한을 줄여 FA 선수 공급을 늘이는 등의 제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외국인 선수 제도를 조금 더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교 야구에 대한 지원이 중요하다. 매년 500억원 이상 돈잔치를 치르는 FA 시장에 낀 거품을 줄이고 그 돈으로 지역의 고교야구 팀을 지원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 할 수 있을 것이다.


  덤.

  고양 원더스는 야구 저변 확대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심지어 매년 40억씩 자비를 들여가며 한 푼의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 또한 매년 프로 선수를 수명씩 배출하며 그들의 길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했다. 프로구단들은 자신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고양원더스에 감사를 표하기는 커녕 외면하고 무시했다. 결국 고양 원더스는 3년만에 해체됐다. 하지만 원더스가 보여준 길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년 40억만 투자하면 선수를 만들어낼 수 있다. 75억짜리 강민호 하나면 원더스를 두 개 운영할 수 있다. 75억을 4년으로 나누면 18억 7500만원이다. 올해 강민호는 71개의 안타를 때려냈다. 안타 하나당 2640만원 꼴이다.


  준수한 성적을 거두는 경우도 생각해보자. 만약 장원준이 4년 100억 계약을 맺고 매년 10승을 한다고 생각하면 승리당 2.5억원이다. 매년 15승씩 해준다고 해도 승리당 1.6억이다. 결국 구단이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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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방송된 k팝스타 시즌4 첫 라운드에서 등장한 싱어송라이터 이진아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독특한 보이스, 뛰어난 키보드 연주실력에 더불어 신선한 음악, 심사위원들의 극찬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해 보였다. 박진영 심사위원은 "합격 버튼을 누르는 것이 미안하고 민망하다"며 그녀의 음악성을 치켜세웠다. 유희열 심사위원은 "자신도 단정 짓지 못했던 꿈꿔왔던 여자 뮤지션의 실체를 여기서 봤다"고 심사평을 했다.


  대중의 반응도 뜨겁다. 방송된지 몇시간만에 이진아라는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 상위는 물론 각종 음원 사이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대중이 열광하는 컨텐츠는 그동안 부족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하는 척도가 된다. 몇해 전부터 '슈퍼스타k'를 비롯한 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과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등의 프로 가수들의 경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었다. 이것은 K-POP이라고 불리는 '보는 음악' 위주로 제공된 편식 식단표로 인해 '듣는 음악'의 섭취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시원시원한 고음, 풍부한 성량을 갖춘 소위 '노래 잘 하는' 가수에 대한 필요도 어느정도 만족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최근 방송이 끝난 슈퍼스타k 6의 우승자인 곽진언도 이전까지 규정해오던 '노래 잘하는 가수'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담담한 저음이 경연 무대에서는 불리하다는 편견을 깨고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편곡과 작곡 능력 등 탄탄한 음악성이 뒷받침 된 덕분이었다. 이진아 역시 '노래 잘하는' 가수는 아니다. 그녀의 음악이 대중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진아의 음악에 대중이 환호하는 현상은 기성 음악계가 충족시켜주지 못한 대중들의 결핍을 그녀가 채워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k팝스타의 지난 시즌들은 보지 않았다. 오늘 보게 된 것도 그저 슈퍼스타k 시즌6 종료의 아쉬움을 달랠겸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었다. 별 기대가 없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거기서 거기지. 역시나 노래를 잘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그레이스 신의 폭발적 가창력은 가히 최고였지만, 결국 귀를 스치고 지나가는 음악이었다. 그러던 중 이진아라는 어리버리한 참가자가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녀가 입을 열자 호기심이 생겼다. 음성이 무척 독특한 때문이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린 순간부터 호기심은 집중으로 옮겨갔다. 이진아 자신의 자작곡인 시간아 천천히를 듣다가 순간 눈물이 돌았다. 아마도 기대하지 못했던 것 아니, 늘 갈망했지만 기대하고있는 줄조차도 몰랐던 음악을 만난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겨우 첫 라운드지만 이진아의 우승을 조심스레 점쳐본다. 그리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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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SBS 드라마 '비밀의 문'이 지난 주 시작되어 4회까지 방영되었다. 지난 8월 부터 방영을 시작한 동시간대 MBC 드라마 '야경꾼 일지'와 거의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시작이 좋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긴 한석규씨가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든 비정한 아버지로 기억되는 영조를 어떻게 연기할 지도 많이 기대가 된다. 

비밀의 문

 

  '비밀의 문'은 '맹의'를 둘러싼 갈등으로 시작된다. '맹의'는 영조(한석규 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형 경종을 몰아내기위해 노론의 영수 김택(김창완 분)과 결탁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이다. 왕위에 올라서도 '맹의'라는 아킬레스건 때문에 노론이 반대하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조는 10년전 '맹의'를 불 태워 버리려 했으나 현재에 나타나서 다시 영조의 목을 노린다. 그러던 중 세자 이선(이제훈 분)의 초상화를 그리는 예진화사이자 세자의 유일한 벗인 신흥복(서준영 분)이 '맹의'를 둘러싼 싸움에 휘말려 살해당한다. 드라마는 신흥복의 억울한 죽음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세자와 이 사건의 비밀이 밝혀짐과 동시에 세상에 나오게 될 '맹의'의 존재를 감추기 위하여 신흥복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이려는 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어가고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싸움은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문'을 마음 편히 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벌써 5개월이 넘게 이런 일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자는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기 위하여 특별검협본부를 설치하여 병조판서 홍계희(장현성 분)에게 수사를 지시하지만 영조와 김택의 압박으로 홍계희는 엉터리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 세자의 스승이자 소론의 실세인 박문수(이원종 역)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려 하지만 그가 가진 힘은 진실을 파헤치기에 역부족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5개월간 보여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과 드라마의 노론 소론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지점이다.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세상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3회에 나온 서지담(김유정 분)의 아버지 서균(권해효 분)과 부용재 행수 운심(박효주 분)의 대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담을 걱정하여 지담이를 야단쳐두라는 운심에게 서균은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와 그 유족이 안타까워서 진실을 밝혀 보겠다는게 뭐가 문제야. 우리 지담이 문제 없어. 문제가 있다면 자식 놈 귀한 뜻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이 못난 애비가 문제고 진실이나 정의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이 문제인게지"라고 따지 듯 대답한다.

비밀의 문

 

  세월호 사건이 있은지 5개월이 훌쩍 넘어갔지만 여전히 그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맹의'가 드러나면 안되는 영조와 노론 무리 같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세자와 서지담만이 신흥복의 억울한 죽음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지담은 사실상 신흥복의 죽음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고 있다. 필자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 분위기를 돌아보게된다. 5개월 동안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지났으니 덮어두자고 한다. 마음만 아프고 진실은 밝혀질리 없으니 힘빼지 말자고도 한다. 산사람은 살아야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까지 꺼내면서 지금 불경기의 책임을 세월호 희생자 및 유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필자가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즐기면서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p.s.

  4회에 나온 지담이와 서균 부녀의 대화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정인 허정운(최재환 분)을 잃은 친구 춘월에게 이불 덮어 주고 나온 지담은 서균에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

 

지담 : 이불 덮어주고 왔어. 해줄수 있는게 그거 밖에 없더라구. 아부지 사람이 뭐야? 사람답게 사는건 어떻게 하는거야?
서균 : 지담아 그건...
지담 : 억울하게 정인 잃은 친구에게 뭘 해야 사람이지? 적어도 이불 덮어주는 것 보단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수 있어야, 그래야 사람아냐?
서균 : (한숨)

 

  억울하게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이에게 뭘 해야 사람인가? 어떻게 해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동 분자 딱지 붙이고 아들 딸 팔아 신세 고치려 한다는 유언비어는 퍼뜨리는 자들이 사람이 아님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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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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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초짜리 기업 광고도 이보단 훨씬 흥미롭다. 한 문장으로 아시안게임 개막식을 총평하자면 그렇다. 개막식 같은 행사에 그리 관심이 없는 필자지만, 국내에서 치뤄지는 행사인데다 평소 좋아하는 장진 감독이 총연출을 맡고, 한국 영화계의 '거장'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은 유일한 감독이라 생각하는 임권택 감독이 총감독을 맡은 만큼 기대감을 가지고 봤다. 결과는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을 봤을 때보다 더 아쉬웠다. 다른 대회보다 저예산으로 꾸렸다고 하는데, 이런 결과물을 낼 것이면 차라리 돈을 많이 들여서라도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장진 감독 답지 않게 서사의 힘이 부족했다. '원래 아시아는 하나였다'로 시작되는 발상은 꽤나 흥미로웠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식상하고 지루했다. 역사적 근거가 없이 시작된 발상을 이끌어가다 보니 백제의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비류 왕자와 전래동화 속 효녀 심청을 연결했다. 그리고 그 둘은 편지, 전화, 철도, 비행기 등 발전하는 문물을 통해 어거지로 연결한 느낌이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보니 편지, 전화, 철도로 이어지는 근대화 과정을 드러내는 표현이 식상했다. 또한 근대 개항장으로서의 인천을 드러내는데 치중하다보니 '식민지 근대화론'의 색채가 강하게 느껴졌다. 특히 우체부들의 행진은 일제의 색채가 뚜렷하게 느껴져 불편했다.


  개막식에서 보여진 졸렬함의 압권은 마지막 순서로 준비된 성화 봉송이었다. 국민타자 이승엽으로 시작된 성화 봉송은 나쁘지 않았다. 이후 박인비 이규혁 박찬숙 이형택으로 이어지는 스포츠 스타들의 릴레이도 좋았다. 그리고 그 성화는 미래의 스포츠 스타가 될 어린이들에게 연결됐다. 거기서 멈췄으면 좋으련만, 왜 거기서 '장금이' 이영애씨가 나왔는지. 분명 드라마 '대장금'이 한류란 이름으로 아시아에 널리 팔려 유명한 탓일 것이다. 언론들은 非스포츠인 최초, 우아한 美 등의 수식어로 그녀의 성화 봉송 피날레를 포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불편했다. 그냥 아이 둘이서 성화 봉송의 피날레를 장식했으면 좋았을 뻔 했다.





  우리는 한류란 이름으로 아시아의 문화 선진국을 자임해왔다. 하지만 한류란 패스트 러너(Fast Learner)로서 획득한 경제적 이익일 뿐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은 우리의 문화적 밑천이 얼마나 얕은지 보여준 단편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은 진짜 韓流는 출발점에 서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분명 우리에겐 충분한 문화적 토양이 있다. 아직 제대로 발굴하고 연구하지 못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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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일간베스트(일베)에 대한 평가나 분석을 지양해왔다. 처음 일베가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을 때 식민지 파시즘이나 군부 독재시대의 공포 정치하의 방어기제로 그들을 이해해보려 한 적도 있지만, 소용 없음을 깨달은 탓이다. 그들을 집단으로 묶어 이해하는데 따르는 오류가 너무 크다. 그들을 한 묶음으로 묶을 수 있는 단어는 '재미' 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이해고, 그 '재미'는 상당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파시즘, 방어기제 같은 단어로는 그들을 온전히 묶을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일베 이야기 좀 해야겠다. 화도 나고, 술도 조금 마셨고. 불과 얼마전까지 그 자리에서 한 인간이 자신의 목숨을 오롯이 내놓고 46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문재인 의원은 그와 함께 하겠다며 10일간 동조 단식을 했다.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단식투쟁에 참여했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들에게 '굶어 죽어라' 저주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보란듯이 먹거리 집회를 한다. 야이 씹새끼들아. 나는 하루 두끼만 굶어도 집에 널부러져 있는 배달음식 전단지를 보면 미치겠더라. 꼭 거기 가서 뭘 쳐먹어야겠냐? 난 집에서 밥 먹는 것도 미안하던데, 꼭 조롱해야겠니? '굶으면 죽는다'는 건 '인간은 죽는다'처럼 확실한 명제인데, 진짜 누군가를 죽여야겠니? 니네가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사회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꼭 이런식으로 표현해야하니? 재미? 너네는 타인에게 죽으라고 말하는 것이 재미있니? 그리고 정말 우리 사회에 '재미' 외에 다른 가치는 없을까?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너네를 나는 '인간'으로 인정해야는지 모르겠다. 생물학적 'Human'인 것을 부정할 순 없으니……. 하지만 사람의(人) 가운데(間) 너희가 있는줄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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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합니다. 모두 내 탓입니다. 자연인 안철수의 삶의 궤적, 저서에 담겨있던 수사, 매체에 의해 가공된 이미지를 실재한다 믿은 내가 모자란 탓이겠지요. 정치에 입문한 뒤 당신을 지지하던 사람들이 돌아설 때도 '그럴 분이 아니다'라며 믿었던 것은 한껏 부풀려졌던 허상을 꿰뚫어 보는 눈이 부족한 탓이었겠죠. 이제 기대와 애정 모두 내려놓습니다.


  인지도면에서 한참 뒤쳐진 박원순 변호사에게 자신에게 향하던 국민적 지지를 조건 없이 양보하던 그 모습이 너무 좋아보였습니다. “오늘 존중하는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들었습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사회에 헌신하며 시민사회 운동을 꽃 피운 분으로서 서울 시장직을 누구 보다 잘 수행할 수 있는 휼륭한 분입니다”라던 당신의 수사가 진심인 줄 알았습니다. 돌아보니 윤여준씨의 회고가 사실이었나 봅니다. (윤여준의 '안철수 서울시장 불출마 내막' 3년전 인터뷰 화제 참고)


  단일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결국 문재인 의원에게 대선후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 범인은 아니구나' 생각 했는데. 양보만 하고 나니 후회가 남았습니까? 그래서 이번엔 내가 양보 받을 차례라고 아이처럼 구는 겁니까? 사실 노원 병 지역구에 국회의원 출마 할 때, 실망 많이 했습니다. 그 자리, 본인이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자리입니까? 그 자리가 왜 공석이었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을텐데. 그래도 계속 믿고 지지했습니다. 애꿎은 캠프 탓을 하고, 당신 주위의 인물들을 욕했습니다.


  본인 지지율이 왜 떨어지는지 모르시는 것 같네요. 안풍이 불었던 이유는 당신이 기존 정치인들과 다르다는 허상 덕분이었습니다. 더이상 언론이 화장을 해주지 않기에 지지율은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것입니다. 안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기억속에만 남을 것 같네요. 아무리 거센 태풍도 지나가고 나면 조용해지는 법이니까요. 태풍 매미도 이제 기억과 기록으로만 존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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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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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탐방기는 트위터에 남겨진 흔적들을 좇아 주옥순이란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주옥순의트위터 계정 (https://twitter.com/soonjoo56)을 참조하였다.


  본론에 앞서 주옥순의 트위터 탐방을 하게 된 계기를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엄마'를 사칭하고 세월호 유족에 막막을 퍼붓던 '대한민국 엄마부대 봉사단'의 동영상을 보고 주옥순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특히 유병언의 재산을 몰수해 유족에게 더 큰 이익을 주기 위해 유병언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그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수구 꼴통들 때문에 '엄마'를 잃다 참고) 경험상 이런 부류의 인간들의 트위터에는 재미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트위터를 탐방하게 되었고, 역시나 대박이었다.


  


  시작부터 한 방 먹었다. 유관순이라니. 설마 3.1 만세운동의 상징 유관순 열사? (어릴땐 유관순 누나라고 배웠는데, 요즘 내게 누난 '누나' 밖에 없으니까) 에이, 설마. 아줌마는 친일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문창극 인사참극때 피켓들고 응원하고 있었잖아. 문창극 인사 참극 과 관련해서는 여기를 참고.



  두 번째로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독제자'란 단어였다. 개인적으로 맞춤법 틀리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인간인지라, 곳곳에 '들어난' 맞춤법 오류는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그것도 교수란 작자가 말이야. (교수 사칭 논란과 관련해서는 엄마 사칭 주옥순, 알고보니 교수직도 사칭 참고) 맞춤법 오류는 너무 많고, 본론도 아니니 한 두개만 보고 넘어가자. 교정도 안하겠다. 이 정도면 초등학생 수준이다. 웃음포인트는 조중동 좌빨색깔론이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었다. 본론 들어가자. 


  1. 지사님바라기


  이해를 돕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2011년 11월 17일로 가보자. 트위터 개통을 하고 처음으로 트윗을 날린 시점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올렸을 그 첫 트윗.



  보통의 우리 어머니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있다. 이런 트윗은 갈수록 보기 힘들어진다. 이 트윗만 볼 때 그녀가 자식 잃은 부모에게 이익을 운운할 줄 누가 알았겠나. 이후 이어지는 트윗들에 등장하는 사람이 한 분 계셨으니 AKA 도지삽니다.



  지사님을 향한 일편단심은 이후로도 쭈욱 이어진다. 다수의 트윗이 지사님으로 시작하거나, 지사님이라는 단어가 꼭 들어간다. 한나라당 개혁에서 잠시 웃고 지나가면 되겠다. 이 시기의 트윗에도 막말의 조짐이 싹트는 것을 볼 수가 있다.


  11월 말 그 추위 속 물대포보다 더 강하게 어떻게? 최루탄? 고문? 아니면 발포라도 하시게? 그리고 당연하단 듯 맞춤법 틀려주는 센스.



  2.후보님바라기


  이 때 역시 지사님을 바라보던 시기이나 활동의 양상이 조금 달라졌다. 바로 18대 대선 새누리당 후보 경선에 지사님이 뛰어들며 후보님바라기로 접어든 것이다. 이 시기에는 주로 김문수 후보의 트윗을 리트윗 하는 활동에 주력한다. 




  아, 순애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시기의 트윗·리트윗 중 재밌는 것이 하나 있지만, 재밌는 건 마지막으로 미뤄두자.



  3.후보님바라기2



  영원할 것만 같던 첫 사랑의 추억. 하지만 '영원한 사랑'이 한갓 수사에 불과함을 우리는 첫 사랑의 실패와 함께 배우지 않았던가.

  


  이 트윗을 계기로 지사님의 이름은 트위터 계정에서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사랑이 다른사랑으로 잊혀진다는 것을. 




  바로 이 분 되시겠다. 그런데 맞춤법 틀리는 건, 여기나 저기나... 반듯이는 반듯하게란 뜻이다. 꼭 지키겠다는 의미였다면 반드시로 써야 맞다. 그래서 안지키는 건가? 무튼 반듯이든 반드시든 공약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


  4.누나바라기


    대선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라 보면 된다. 아들과 김장 준비한다는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던 어머니를 더이상 볼 수가 없다. 대신 그녀의 트윗에는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투쟁적 언어만이 남아있다. 아, 누가 그녀를 저 비오는 거리로 내몰았는가.


  덤.

  뿌린 떡밥은 회수해야지. 재밌는 거 남았다고 했으니. 재미없으면? 미안합니다. 미리 사과할게요. 이해를 돕기 위한 키워드는 '세상에'이다. 이 트위터 계정에서 '세상에'는 단 네 번 쓰였다. 






  용례를 봤을 때, 자신이 적대하는 상대가 자신의 상식에 어긋나는 경우 따져 묻는 수사로 보여진다. 공교롭게도 세 트윗에 등장하는 이름이 (노빨을 노무현 대통령을 지칭한다 봤을 때)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문재인 의원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마지막 네 번째 용례는 누구였을까?



  짜잔, 사랑이 다른사랑으로 잊혀...어? 어떤 일인지 모르시는 분은 여기를 누르시면 된다.


  이 글 쓴다고 꽤나 고생했다. 특히 맞춤법도 엉망인 트위터를 다 읽는 건, 필자에게 지옥같았다. 공감 눌러 달라거나, 공유해달라는 말이냐고? 부인은 안한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혹은 재미가 없었어도 손가락에 부상이 없으시다면 한 번만 눌러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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