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유혹과몰입의기술

저자
전영태 지음
출판사
X생각의나무(주) | 2008-12-08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오랜 기다림을 통한 내적 치유의 세계 인간이 깨닫지 못하는 욕망...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예수는 수제자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전영태 작가는 예수로부터 이어지는 사람 낚시꾼의 계보를 이어가는 듯 보인다. 그는 화려한 입담(속된 말로 이빨)으로 독자들을 낚고 있다. 낚시에 걸린 물고기는 낚시꾼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덥석 문 미끼와 입에 걸린 바늘만 알 뿐, 그저 자신을 낚은 낚시꾼을 상상해볼 따름이다. 나는 이 책에 낚인 한 마리의 물고기로 건방지게 낚시 기술이나 낚시꾼에 대해 이야기하기 보단 그저 내가 낚인 미끼와 바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먼저 내가 유혹당한 미끼는 깊어 보이는 지식이었다. ‘깊어 보이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자칫하면 ‘전혀 깊지 않다’로 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예비 독자들에게 단언하고 말하건대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다. 낚시에 관한 그리고 그림과 문학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볍게 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량감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이 단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설명하기로 하자.


  이 책을 읽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낚시와 물고기에 관한 그림이 어쩜 이렇게 많은가 였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우리 옛 그림에서 중국과 서양의 그것에 이르기 까지 방대한 그림들을 가지고 와서 썰을 풀고 있다. 그리고 가끔씩 드는 생각은 얼핏 지나치면 보이지도 않을 만큼 초라하게 그려진 낚시꾼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256페이지에는 정선의 <소요정>이란 그림이 있다. 멀리 산이 보이고 가까이엔 깎아질 듯한 절벽이 그려져 있다. 그 밑에 물결이라 치부해도 아쉬울 것 없을 만한 크기로 두 낚시꾼이 배를 타고 가며 낚시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마치 이 그림의 존재 목적이 그들이 하는 견지낚시인양 법석을 떨고 있다. 202 페이지에 나오는 장대천의 <산수>에서도 분명 제목이 산수임에 불구하고 ‘이 모든 분위기의 초점은 낚시꾼이 고결한 품성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 모아진다. 이쯤 되면 낚시는 그냥 여기가 아니라 구도의 유력한 수단이다’라며 그림의 초점을 낚시에 모은다. 심지어 이 문장에서는 오타로 의심되는 부분도 있다.


  낚여서 파닥거리는 주제에 한번 웃겨보자고 어거지를 써봤다. 정말이지 이 책의 많은 그림과, 이야기들은 낚시 하나만을 향하고 있다. 이정도면 저자의 낚시에 대한 몰입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있다. 그는 많은 자료들과 깊은 지식을 미끼로 물고기를 유혹했다면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우격다짐을 바늘 삼아 물고기를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이 글이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쓰였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할 것인데, 우격다짐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못할 물고기들도 많을 줄 안다. 그래서 한 부분을 예로 들겠다.


   대향로 뚜껑에 등장하는 12명의 인물 중 하나가 낚시하는 신선이다. 호숫가 바위에 걸터앉아 낚싯바늘 모양의 낚싯대와 오늘의 릴과 유사한 중국의 조차로 물고기 낚기에 열중하고 있다. 낚싯대가 왜 낚시 바늘 모양인지, 신선이 들고 있는 것이 과연 중국 조차인지, 이 모든 것은 확실하지 않다. 전문가들에게 몇 번 문의해도 낚시의 문외한인 그들은 낚시꾼인 나만큼 관심도 없었고 고대의 낚시 방법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이럴 땐 비전문가인 내가 자신 있게 얘기해도 된다. 왜냐하면 내 설명을 반박할 사람이 없으니까!


   밑줄 친 구절을 유심히 보라. 사실 이 책에 실린 모든 그림에 대한 전문가들은 낚시에 있어 비전문가라 봐도 문제가 없지 않은가? 그 말은 모든 그림에 대한 그의 설명을 반박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우리는 저자의 이런 우격다짐에 정신을 못 차리고 그의 낚싯바늘 끝에 걸려 파닥거릴 수 밖에 없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 서평을 끝내려한다. 내 할아버지께서는 낚시꾼이셨다. 집안에서 알아주는 한량으로 날이 따뜻해지면 낚싯대를 가지고 팔도를 유랑하시다 날이 추워지면 돌아오셨다고 한다. 그 때문에 내 고모들과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생신이 양력 시월 즈음에 몰려있다고 할 정도다. 그런 할아버지의 혼이 담긴 낚싯대를 물려받은 것이 큰아버지가 아닌 둘째인 내 아버지였다. 하지만 차 뒷 트렁크에 모셔 다니던 것이 내가 어렸을 때 교통사고 후 아버지께서 입원해계신 사이 차를 폐차시키며 미처 챙기지 못했다. 아버지께서도 종종 낚시를 하시곤 했는데 그 이후로 새 낚싯대를 사셨으나 점점 멀리하시더니 결국 우리 집안의 낚시 대물림은 끊어지게 되었다. 낚시를 읽으며 우리 집안의 낚시를 잇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물고기 낚시가 아닌, 사람 낚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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