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 불어넣기

저자
메도루마 ?? 지음
출판사
아시아 | 2008-03-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왜, 오키나와에 주목하는가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으로 독립된 섬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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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도루마 슌의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은 오키나와의 깊고 오랜 상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인데 오키나와라는 곳은 역사적인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다. 그 상처에 대해서는 옮긴이의 말에서 발췌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독립국이었던 류큐 왕국은 일본 본토의 무력 침공으로 종속 관계가 되어 오랫동안 경제적 수탈을 당하다가 결국 일본 본토에 오키나와 현으로 복속된다. 그리고 제 2차 세계 대전 때는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으로 전화에 휩쓸려 주민들은 피난 생활 속에서 굶주림과 말라리아로 죽어 갔다. 더구나 아군인 줄 알았던 일본군은 식량을 강탈하고 주민을 학살하기도 했다. 심지어 ‘살아서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지 말라’고 집단 자결을 유도하여, 전쟁으로 사망한 오키나와 주민의 수는 15만 명에 달한다. 일본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으나, 포츠담 선언과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으로 군사 전략적 요충지인 오키나와는 오랜 기간 미군정하에 놓이게 되며,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 본토 사람들과 달리 많은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신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여기는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끔 자신의 이야기에 너무 빠진 나머지 상처를 준 상대에 대한 분노를 내게 표출해 화가 나게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자기연민에 빠져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처음엔 그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것도 한번 두 번 계속되다보면 짜증이 나곤 한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술』이라는 소설집에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가 여섯 개나 있다. 자칫하면 독자로 하여금 공감하기는커녕 화가 나게 할 수 있었지만, 메도루마 슌은 그 깊은 상처에 대해 격양된 어조로 이야기 한다던가 지나친 자기연민에 빠지는 우를 범하지 않고 있다.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나감으로 오히려 그 상처를 공감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게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점이 가장 잘 드런난 소설이 「이승의 상처를 이끌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소설의 화자는 어려서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고, 젊은 시절 사랑하는 이와의 가슴 아픈 이별을 겪고 마지막엔 강간을 당해 죽은 한 많은 귀신이다. 그렇게 깊은 상처를 안고 죽은 그녀가 가주마루 나무아래에 오는 이유는 이승에의 미련이나 복수 따위가 아니다. 그녀는 ‘나를 이렇게 만든 그놈들은 지금도 죽이고 싶어. 하지만 그런 놈들.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어, 내가 여기에 오는 이유는 말이야, 이 가주마루 나무 아래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곳이어서야. 여기서 이렇게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이젠 건물도 다 없어져 버렸지만, 그 사람이 저 건너편 강가에 서서 날 바라보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가 하면 「투계」에서는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요시아키는 유능한 다우치 조련사이다. 주말이면 사람들이 찾아와 조련하는 것을 배워가기도 했다. 그는 아들인 다카시에게 다리를 저는 병아리를 한 마리 준다. 그 병아리에게 아카라고 이름붙이고 정성들여 키운다. 연약한 다리를 가졌던 아카는 최고의 투계로 자라고, 사토하라의 눈에 띄게 된다. 사토하라는 조직 폭력배로 요시아키가 아끼던 분재를 팔라고 강요하다 결국 훔쳐간 인물이다. 이번에도 요시아키는 그의 힘에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카가 거의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오고, 아카를 묻으러 가던 다카시는 분노를 느낀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안면을 베이고 머리통이 깨져도 숨이 끊어지지 않는 다우치에게도, 그런 다우치를 묻으라고 시키는 아버지에게도, 아버지의 말을 순순히 따르고 있는 자신에게도 혐오감과 분노가 솟구쳐 내장까지 소름이 쫙 끼치는 기분이었다.

 

  다카시는 사토하라의 닭장에 불을 붙이고, 온 마을이 다 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통쾌한 결말이었지만 만약 여섯 개의 소설이 모두 이런 결말을 가졌더라면 그 분노의 크기가 오히려 반감되어 다가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소설을 읽은 모든 사람들은 모두 오키나와에 가보고 싶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키나와를 좀 더 알고 싶어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사회적, 역사적으로 엄청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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