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시작(창비시선 112)

저자
박노해 지음
출판사
창작과비평사 | 2012-10-22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이 시집은 『노동의 새벽』에 이은 박노해의 제2시집으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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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인 박노해


  전남 함평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장흥 벌교 등지에서 자랐다. 15세에 상경해 선린상고(야간)를 졸업하고, 섬유·금속·정비 노동자로 일했으며,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 개포동까지 운행하는 98번 버스를 몰기도 했다. 유신 말기인 1978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91년 3월 10일 안기부에 검거되었다. `반국가단체 수괴` 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며, 1998년 8월 15일 정부수립 50주년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1983년 『시와 경제』 제2집에 「시다의 꿈」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 시작. 1984년 첫시집 『노동의 새벽』 간행. 진지하고 구체적인 노동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한 사실주의의 정신으로 노동해방이라는 현실적인 목표를 지향해 가고 있다.  1988년 제1회 노동문학상 수상. 1989년 산문집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사람만이 희망이다』 (1997) 간행. 1991년 시선집 『머리띠를 묶으며』 간행. 1993년 시집 『참된 시작』간행.


2. 사노맹사건


  1990년 10월 30일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발표하였다. 사노맹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약칭으로서 6·25전쟁 이후 남한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최대의 비합법 사회주의 혁명조직이다.  이 조직은 오랜 노동현장경험이 있는 학생운동출신자들과 1980년대 이후 혁명적 활동가로 성장한 선진노동자들이 결합하여 1988년 4월 ’사노맹출범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사회주의를 내건 노동자계급의 전위정당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그리고 1989년 초까지 조직정비 및 훈련에 집중하고, 이후 대중사업의 활성화에 나서 경인지역 외에도 마산·창원·울산·부산·포항·대구·구미 등으로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조직체계는 중앙위원회·편집위원회·조직위원회·지방위원회 등의 정규조직과 노동문학사·노동자대학·민주주의학생연맹 등의 외곽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계속되는 공개수배와 검거과정에서 1991년 4월 3일에 중앙상임위원 박기평(필명 박노해) 등 11명이, 1992년 4월 29일에는 중앙상임위원장 백태웅 등 39명이 구속됨으로써 사실상 이 사건은 종결되었다.


3. 노동자 시인? 노동계급 시인!


  박노해가 등장하는 80년대 중반은 한국사회에 카프의 등장 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른 구조적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던 시기이다. 자본주의적 발전 모델에 입각한 산업근대화, 노동계급의 형성, 노사갈등의 심화등은 이 시기의 특징적이고 중요한 변화들을 대표한다.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근대화의 빠른 진척과 함께 노동계급이 급격히 형성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부터 발생하는 사회모순의 발전수준이 상당한 정도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 80년대 한국 사회이다. 노사 갈등이 심화킨 사회적 긴장은 이미 70년대 말부터 몇차례의 폭발과 위기 국면을 발생시킨다. 이런 변화들은 카프문학과 노해문학운동의 객관적 기반이 현격히 다른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체제 내적 모순의 심화를 포함한 현실 조건의 성숙이 어떤 문학운동의 긴요한 사회적 토대가 되기는 하지만 그 토대가 반드시 박노해같은 노동계급 시인의 출현이나 노동해방문학의 등장을 ‘불가피한 사건’이 되게 할 자동적 결정력을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회모순이 반드시, 모든 경우에, ‘노동계급에 의한 노동해방문학’을 낳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박노해가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들고 등장한 1984년은 한국 노동계급이 어던 통일성을 발휘할 만큼의 계급적 결속력을 갖고 있었던 시기도 아니고, 노동계급의 의식적 자기표현이 괄목할만한 ‘문학 작품’의 형태로 조만간 나타날 것이라는 예측이나 기대가 강한 가능성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시점도 아니다.


  이런 사실은 노동계급의 시인 박노해와 『노동의 새벽』이 왜 우리 문학사에서, 그리고 범위를 넓혔을 때 세계문학사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를 말할 수 있게 한다. 노동계급 시인이란 단순히 ‘노동자 시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노동자 출신의 시인은 어느 시대에나 가능하다. 그러나 노동자 시인이 꼭 노동계급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이 의식적인 자기 표현을 문학의 형식으로 시도할 때 ‘노동계급 시인’이 탄생한다. 이 종류의 시인, 노동계급의 고통과 꿈과 의식을 직접 표현히기 위해 그 계급으로부터 진출하는 노동계급 시인의 등장은 그리 흔한 가능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극히 희귀한 사건이다. 박노해는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그같은 노동계급 시인이고 『노동의 새벽』은 노동계급이 문학의 형식을 통해 자기를 표현한 최초의 목소리이다. 이것이 박노해와 그의 문학을 우리 문학사의 특별하고도 중요한 사건이 되게 하는 이유이며, 카프 문인들과 박노해를 갈라놓는 근본적인 차이이다.

「박노해- 그 <길 찾기>의 의미와 중요성」, 도정일


4. 읽기 쉬운 시


  박노해의 시가 가진 특성이자 장점으로서 우리에게 문젯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은, 그의 시가 참으로 쉽게 읽힌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박노해의 시는 독자대중들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아마도 우리 시단의 다른 많은 시인들의 시를 접하다가 박노해의 시를 읽는 사람이라면, 시가 이렇게 쉽게 읽힐 수도 있는 것인지, 시가 그렇게 쉽게 읽혀도 괜찮은 것인지, 하는 의문을 가지면서, 시의 본성, 시의 언어적 특성, 시와 독자와의 관계 등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의 시를 읽어나가면서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일차적으로 그의 시가 독자들을 만나는 데 성공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그의 시가 이와 같이 쉽게 읽히면서도 결코 전달하는 내용이 낮은 수준의 것도 아니며, 그 내용을 형상화하는 기교가 유치한 수준의 것도 아니라는 점이 돋보인다. 그렇다면 박노해는 수준 높은 내용을, 수준 높게 형상화하면서도, 독자들이 쉽게 시를 접하고 읽을 수 있도록 만든 시인이다.

「박노해의 시는 왜 감동을 주는가」, 정효구


5. 변화


  박노해의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은 여하튼 아픔이었다. 그리움과 구슬픔, 안쓰러움 혹은 착잡함…… 자꾸만 읽어갈수록 마음결은 폭풍우 속의 물살처럼 흔들렸다. 『노동의 새벽』이 수행한 역할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새로운 전망과 단계를 열어가는 제2시집을 반드시 발간할 것이라고 공언했던 그였기에 아픔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크게 4부로 이루어진 이 시집 속에 『노동의 새벽』과 함께 우리의 노동문학, 그 격량의 10년 역사가 구비치고 있다.


  제3,4부에 실린 시편들은 급격한 변모, 새로이 형성한 활화산의 삶이 내뿜어낸 뜨거운 ‘혁명시편’이다. 그간 여러 잡지 등에 이들 시들이 단편적으로 발표될 때마다 벌어졌던 뜨거운 논쟁의 소용돌이를 우리는 기억한다. 『노동의 새벽』에 대하여 일대 문학사적 사건으로서 바라보던 그 나름의 일치된 평가의 초점이 두 줄기 물길로 나누어지듯 가장 예민한 찬반의 시선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는 결국 100여명의 구속자를 낳게 한 ‘사노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1991년 ‘자유민주주의 파괴세력의 수괴’로 체포되어 지금 무기징역형을 받고 경주교도소에서 기약없는 세월에 파묻혀 있다. 1,2부에 실린 작품은 바로 이 기간에 쓰여진 시들로서 일종의 ‘옥중시편’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옥중시들 역시 3,4부가 보여주었던 시와는 너무나도 급격한 경사를 보여주고 있어 이미 또 다른 산등성을 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급격한 변모에 대한 최근의 단편적인 비평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진보적 이상주의의 새로운 출발을 예감하기도 하고, 아득한 추락속에서 새로이 싹 틔우는 ‘강철 새잎’을 주목하기도 한다.

「박노해 최근 시의 성격과 변화에 대하여」,임규찬


6.참된 시작


  어쩌면 최근 시편이 위치하는 바에 대해서 박노해 자신은 이미 답을 내려놓고 있는 듯하다. 시집의 표제인 ‘참된 시작’이 이를 말해준다. 실제로 이 말은 시 「그해 겨울나무」와 「그리운 사람」의 핵심어이며, 어찌보면 1,2부 시편 전체를 떠받들고 있는 밑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해 겨울나무」란 시는 1,2부 시편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면서 「민들레처럼」과 함께 1,2부 전체를 대표하는 시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집 발문에서 김병익이 이미 잘 지적한 대로 첫 연의 끝에서 “그해 겨울 /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고 고백하고는, 마지막 3연의 끝에서 “그해 겨울 / 나의 패백는 참된 시작이었다”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증적인 변용’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그해 겨울 / 나의 시작’이 의미하는 새로운 단계, ‘나의 패배’와 ‘참된 시작’이 의미하는 삶의 변화, 그 내적 변정법이야말로 박노해 최근 시편을 이해하는 열쇠인 것이다.

「박노해 최근 시의 성격과 변화에 대하여」,임규찬


7. 감상


  사실 나는 시를 즐겨 읽지도 않고, 잘 읽지도 못한다.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기 전엔 시집 한권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정말이지 시는 모르겠다.’고 입에 달고 다니는 내가 읽어도 ‘이게 무슨 뜻이지?’ 라며 고개를 갸우뚱 한 적이 한 번 없을 정도로 『참된 시작』은 쉬웠다. ‘이렇게 시가 쉬워도 되나?’ 라는 의문이 절로 고개를 들었다. 함축이나 압축의 미란 찾아볼 수 없는 긴 장문의 시편들을 보면서는 ‘이것이 시인가? 그저 행갈이 한 산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이 시가 ‘노동시’ 라는 것을 환기하고는 그가 이렇게 쉽게 써야 했던 이유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참된 시작』을 읽고 난 후에 나는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아버지 생각이 났다. 지금은 자기 공장에서 일을 하시지만 이 시가 씌어진 당시엔 누군가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셨을 아버지의 잘릴 뻔 한 흔적을 앉고 살아가는 오른 손 네 번째 손가락이 생각이 났다. 2008년, 이제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텍스트로 존재하는 이야기들이 당시 절절히 체험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읽혔을까 상상하니 어느 한 군데가 막힌 듯 먹먹해졌다.


  하지만 그의 시가 다 좋았던 것은 아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이 세계를 자본가와 노동자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지니지 않았나 싶은 것이었다. 그리고 선전·선동의 색체가 너무 강해서, 조금 과장하자면 내가 읽은 것이 시집인지 아니면 ‘북한의 삐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노맹 사건’에 관한 오래된 기사를 읽던 중 본 한 문단은 나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박노해씨의 이름이 국민들에게 처음 알려질 때는 지금 같은 혁명가가 아닌 시인이었다. 지난 84년 박씨가 지은 『노동의 새벽』은 문단의 지축을 바꿔놓았다. 어떻게 촉망받는 노동지식인이 직업적인 혁명가로 탈바꿈했을까? 그러나 그와 함께 조직했던 사람들은 “박노해씨는 단 한순간도 직업적 시인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는 애초에 조직운동가였으며 시는 철저히 운동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심층취재, 박노해와 사노맹」, 최진섭


  수단으로서의 문학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나는 실망했다. 그것이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선전문학이나, 일제시대의 친일문학, 멀리 나치문학까지 떠올린 것은 그의 숭고한 정신에 대한 모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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