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를 주인공으로 한 SBS 드라마 '비밀의 문'이 지난 주 시작되어 4회까지 방영되었다. 지난 8월 부터 방영을 시작한 동시간대 MBC 드라마 '야경꾼 일지'와 거의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시작이 좋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긴 한석규씨가 이번에는 자신의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게 만든 비정한 아버지로 기억되는 영조를 어떻게 연기할 지도 많이 기대가 된다. 

비밀의 문

 

  '비밀의 문'은 '맹의'를 둘러싼 갈등으로 시작된다. '맹의'는 영조(한석규 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자신의 형 경종을 몰아내기위해 노론의 영수 김택(김창완 분)과 결탁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이다. 왕위에 올라서도 '맹의'라는 아킬레스건 때문에 노론이 반대하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조는 10년전 '맹의'를 불 태워 버리려 했으나 현재에 나타나서 다시 영조의 목을 노린다. 그러던 중 세자 이선(이제훈 분)의 초상화를 그리는 예진화사이자 세자의 유일한 벗인 신흥복(서준영 분)이 '맹의'를 둘러싼 싸움에 휘말려 살해당한다. 드라마는 신흥복의 억울한 죽음의 비밀을 풀고자 하는 세자와 이 사건의 비밀이 밝혀짐과 동시에 세상에 나오게 될 '맹의'의 존재를 감추기 위하여 신흥복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이려는 자들 사이의 갈등으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어가고 있다.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감추려는 자의 싸움은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밀의 문'을 마음 편히 보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벌써 5개월이 넘게 이런 일이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자는 이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기 위하여 특별검협본부를 설치하여 병조판서 홍계희(장현성 분)에게 수사를 지시하지만 영조와 김택의 압박으로 홍계희는 엉터리 수사 결과를 내놓는다. 세자의 스승이자 소론의 실세인 박문수(이원종 역)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려 하지만 그가 가진 힘은 진실을 파헤치기에 역부족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5개월간 보여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모습과 드라마의 노론 소론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지점이다.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세상에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는 3회에 나온 서지담(김유정 분)의 아버지 서균(권해효 분)과 부용재 행수 운심(박효주 분)의 대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담을 걱정하여 지담이를 야단쳐두라는 운심에게 서균은 "억울하게 죽은 피해자와 그 유족이 안타까워서 진실을 밝혀 보겠다는게 뭐가 문제야. 우리 지담이 문제 없어. 문제가 있다면 자식 놈 귀한 뜻 하나 지켜주지 못하는 이 못난 애비가 문제고 진실이나 정의 따위엔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이 문제인게지"라고 따지 듯 대답한다.

비밀의 문

 

  세월호 사건이 있은지 5개월이 훌쩍 넘어갔지만 여전히 그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맹의'가 드러나면 안되는 영조와 노론 무리 같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세자와 서지담만이 신흥복의 억울한 죽음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지담은 사실상 신흥복의 죽음과 전혀 이해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노출시키고 있다. 필자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 분위기를 돌아보게된다. 5개월 동안 하나도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시간이 지났으니 덮어두자고 한다. 마음만 아프고 진실은 밝혀질리 없으니 힘빼지 말자고도 한다. 산사람은 살아야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까지 꺼내면서 지금 불경기의 책임을 세월호 희생자 및 유가족에게 떠넘기고 있다. 필자가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즐기면서 보지 못하는 까닭이다.

 

p.s.

  4회에 나온 지담이와 서균 부녀의 대화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정인 허정운(최재환 분)을 잃은 친구 춘월에게 이불 덮어 주고 나온 지담은 서균에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

 

지담 : 이불 덮어주고 왔어. 해줄수 있는게 그거 밖에 없더라구. 아부지 사람이 뭐야? 사람답게 사는건 어떻게 하는거야?
서균 : 지담아 그건...
지담 : 억울하게 정인 잃은 친구에게 뭘 해야 사람이지? 적어도 이불 덮어주는 것 보단 더 많은 일을 해야, 할 수 있어야, 그래야 사람아냐?
서균 : (한숨)

 

  억울하게 가족과 친구들을 잃은 이에게 뭘 해야 사람인가? 어떻게 해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동 분자 딱지 붙이고 아들 딸 팔아 신세 고치려 한다는 유언비어는 퍼뜨리는 자들이 사람이 아님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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