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취임 2개월이 채 되지 않아서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6사단에서 현역으로 복무중인 장남이 후임병 폭행과 성추행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남경필 지사는 SNS에 사과문을 올리고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어 급하게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파문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또한 사건이 보도되기 이틀 전인 지난 15일에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 칼럼에서 남경필 지사는 "아들 둘을 군대에 보내놓고 선임병사에게 매는 맞지 않는지, 전전긍긍했다. 병장이 된 지금은 오히려 가해자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며칠 전 휴가 나온 둘째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걱정 붙들어 매시란다."며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소회를 밝혔다. 논란이 일자 경기도 관계자는 "기고문은 12일에 보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기고를 철회하지 않은데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사건을 알기 전에 기고문을 송고했다는 남경필 지사측의 해명을 믿고 넘어가자면, 기고를 철회 할 이유가 없어보인다. 남경필 지사 본인에 대한 방어가 적절하게 드러나있기 때문이다. 인용문의 첫 문장과 두 번째 문장을 보면 군 시스템에 의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하는 구조를 보여준다. 아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또한 본인이 평소 아들이 군에서 가해자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 자식의 인성교육에 무관심하지 않았음을 항변한다. 세 번째 문장에서는 한 발 더 나가 적극적으로 아들의 문제에 신경쓰는 모습이 엿보인다. 특히 문제가 되지 않은 '둘째'를 내세웠다.


  필자는 차기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정치인이 경황이 없어서 기고를 철회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 자신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철회를 하지 않았거나 더 나가서는 기고문을 일정부분 수정하지 않았을까 의심해본다. 맞기도 전에 방어논리가 3문장으로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복무하던 때에 부모로부터 "선임에게 맞지는 않냐"는 말은 들어봤어도, "후임들을 때리지는 않냐"는 질문은 들어본 적은 없다. 자식이 없어서 모르긴 하지만 부모맘이란게 그런거 아닌가?


  조사 결과 일회성 폭행이 아니라 지속적인 폭행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4월부터 이달 초까지 지속적인 폭행이 있었다고 하니 무려 4개월동안 일어난 일이다. 4개월간 매일 폭행을 했는지, 어느 정도 수위의 폭행이 있었는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상해보자. 갇힌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는 군의 특성상 매일 맞지 않는다고 해도 매일이 폭행 상태에 놓여있는 스트레스가 가해진다. 계급 때문에 반항도 어렵다. 학교 폭력보다 군내 폭력이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다.


  윤일병 사망사건으로 군대 내 폭행에 대한 경각심이 일지 않았더라면 이번 사건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폭행은 4개월이 아닌 남경필의 장남이 전역할 때까지로 늘어났을 것이다. 또한 전역후에도 타인에게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행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남경필 지사의 말대로 '사회 지도층'이란 이름으로 살 확률이 높은 인간이니까.


  현대 사회에서 정치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더욱 지켜져야한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가 근대의 귀족과 달리 국민에게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현주소는 어떤가. 권력을 휘두르는데만 익숙한 것처럼 보인다. 사병 사회의 정점인 병장만 되도 후임들을 때리는 것이 당연해보인다. 이등병이 조그마한 잘못을 하면 득달같이 혼을 낸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신입사원이 잘 못하면 '빠졌다'고 갈구는게 당연한 우리 사회다.


  필자가 경험한 미군은 그 반대였다. 갓 일병 계급을 달고 나간 한미연합훈련에서 지급받은 공포탄 한 발을 실수로 쏜 적이 있었다. 한국군 지휘관이 영창을 보내겠다는 둥 협박을 했다. 돌이켜보면 웃기지도 않은 협박이지만 일병이 뭘 아나. 근심 한 가득 안고 식사를 하러 가던 중 미군 대대장을 만났다. "너가 이번에 오발한 카투사지?"라는 질문에 "죄송하다"고 답했다. 일병 나부랭이가 군기가 빠져서 실수를 했으니 그저 죄송할 수밖에. 그때 그가 내게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미안할 것 없다. 그런 것을 훈련하기 위해 공포탄을 지급한 거다. 또한 자네 계급에서는 실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격려했고, 평소 한국군의 계급과 그에 따르는 대우에만 익숙해있던 필자는 벙찔 수 밖에 없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길 바란다. 어떤 것이 합리적인지.


  덤.

  남경필 지사는 사퇴하길 바란다. 본인 말대로 '사회 지도층'이라고 생각한다면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사퇴해야 한다. 단지 철없는 아들이 사고친 것 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 아니다. 같이 벌받는 마음으로 반성한다던데, 반성은 집에서 하시길.


  '남경필 지사 아들 두 명 모두 현역으로 보냈네, 대단하다'는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 이게 우리 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현주소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 만세다 젠장.


참조

[나를 흔든 시 한 줄] 남경필 경기도지사

남경필 '군에 간 두 아들 걱정' 일간지 기고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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