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과 박찬호 선수와의 작별인사가 올스타전이 열린 광주에서 있었다. 2012년 고향 무대에 돌아와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은퇴 선언을했으니 늦어도 많이 늦은 작별인사였다. 늦게나마 은퇴식을 갖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선수협의 발상과 올스타전에서 선수 은퇴식이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했던 KBO 나름의 유연한 대응 덕분이었다. 은퇴식 행사는 심플했다. 박찬호 선수는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라 덤덤하게 공 하나를 던졌다. 특별했던 것은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이 시포자로 공을 받은 것이다. 상패·액자 등을 선물받고, 간단한 작별의 인사를 팬들에게 전했다. 감동적이었던 부분은 각기 다른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헹가레를 하는 장면이었다. 그 만큼 박찬호 선수를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또 있을까. 수많은 후배들이 그를 보면서 꿈을 꿨고, 지금 한국 프로야구의 주축으로 성장해 올스타라는 이름으로 그를 높이 들어 올린 것이다. 다만, 선수들이 모두 61번을 등에 새기고 출전 하는 등 작지만 상징적인 부분들을 조금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박찬호 은퇴식


  박찬호 선수 은퇴식 관련 기사에 'IMF 때 힘이 많이 됐다'는 댓글이 달렸다. 그 글에 누군가가 또 댓글을 달았다. 요지는 'IMF 그만 팔아먹어라. 당시 박찬호 보면서 희망을 얻은 사람 아무도 없다. 내 회사가 부도나는데 야구 보겠나, 그것도 오전에 하는 야구를' 정도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하다. 대기업들이 도산하며 수많은 중소기업들도 줄도산 하던 시절,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로 인해 슈퍼·식당 등의 소규모 자영업자들 까지도 망연자실하던 시절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희망을 얻겠나. 하지만 인간이란게 참 신기한게 그 공놀이에서 희망을 보더란 말이지. 박찬호 선수가 우리를 대신해서 양놈들과 싸우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응원하게 되는 것은 그에게 우리 자신을 투영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결국 스포츠 응원은 대리전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필자의 이야기로 마무리하자. IMF 당시 어렵지 않은 집들이 얼마나 있었겠나. 당시 중학생이던 필자의 어머니는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 깎아줬다. 못나게 깎을까 조심조심 깎다보면 결국 바가지머리가 됐다. 선생들이 교칙 위반이라며 혼을 내면 그렇게 서럽더라. 이발소에서 반듯하게 깎은 스포츠 머리가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마음이 모나다 보니 교우 관계도 매끄럽지 못했다. 쉬는 시간, 박찬호 선수의 경기를 잠깐이나마 보는게 낙이었던 것 같다. 박찬호 선수, 고마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찬호 은퇴식 시구


사진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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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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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일어나보니 '22사단 총기사고'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와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몇몇의 안타까운 생명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9년전 22사단에서 근무했던 필자의 기억이 더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번 사건은 필자를 이등병으로 근무하던 2005년 11월의 어느날의 먹먹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많은 언론들이 보도하듯 22사단은 전통적(?)으로 사고가 많은 부대로 악명이 높다.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았는지 부대별칭을 '뇌종부대'에서 지금의 '율곡부대'로 바꿨다. 종에 벼락이 맞으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당시 필자는 법무행정병으로 사고가 나면 최초보고 부터 징계 및 법적처리 까지의 모든 과정을 정리해서 전산 행정업무를 맡았었다. 2년동안 '변사 사건'을 포함한 많은 사건과 사고를 보고 정리했던 필자에게 그때 그 사건은 9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죽음'이란 단어를 접할 때 가장 먼저 가슴에 박힌다.


  군에 들어가서 조금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인 11월 초 어느 날 책상위에 서류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선임병으로 부터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사건의 최초보고를 정리해서 전산망에 올리려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별다를 것 없는 교통사고 하나였던, 단순한 업무의 하나였던 그 사고가 아직도 트라우마로 기억되는 것은 사고로 중상을 당한 한 이등병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부터였다.


  주삼일. 삼일절날 태어나서 아버지가 삼일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던 중학교 친구. 중학교 졸업 후 몇년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22사단 신교대에서 같은 내무실 옆자리에서 중학교때 처럼 티없이 웃던 녀석. 매일 밤마다 '다단계는 절대하지마'라며 자신의 다단계 피해담을 무용담 처럼 읊어대던 내 친구. 하필이면 그 녀석 이름이 제일 위에 있었다. 5분대기조 명령을 받고 출동하던 중 차가 논두렁에서 전복되면서 대부분의 병사들이 타박상 정도의 경상을 당한 그 사고에서 이등병 주삼일은 머리를 다쳤고 한달이 채 지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필자의 기억에 따르면 필자가 복무하던 당시 육군에서 한해에 5~60명 정도의 장병들이 자살과 사고사로 목숨을 잃었다. 60만명 규모의 육군에서 60명이 사망했다면 10만명당 33.5명이 죽었던 2010년의 대한민국과 비교할 때 많은 사람이 죽는건 아니라고 볼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쳇말로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국가가 복무해도 될 정도라고 판단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20대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점과 군대의 폐쇄성으로 인해 그 죽음의 원인규명과 보상, 책임자 처벌이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번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실탄을 들고 탈영한 임모병장은 아직 그 행방이 묘연하다. 군과 정부는 최대한 빨리 그를 잡아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억울한 죽음을 맞은 유족들과 피해자 가족들에게 최대한 투명하게 조사내용을 밝혀서 조사에 대한 억울함 만큼은 남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 5명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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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에게 주변사람들이 종종 미국은 뭐가 우리랑 다르더냐고 묻곤한다. 농담으로 다들 영어를 잘하더라 하고 이야기 하곤 하지만 필자가 미국에서 느낀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운전을 하거나 걸어다닐때 사람들이 도로위에서도 경쟁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마치 서킷의 레이서가 된 마냥 경쟁적으로 운전을 한다. 조금의 틈이라도 놓치지 않고 틈새를 공략하는 한편 다른 차의 차선 변경을 막는다. 앞차가 조금이라도 지체한다 싶으면 경적을 울리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앞차가 서행 하는데는 자신이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종종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추월하려 하다가 앞에 벌어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런 운전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운전을 매우 잘한다고 생각하고 서울-부산을 몇시간에 끊었네 하면서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차들 끼리 경쟁하는 것 까지는 그나마 낫다. 횡단보도에 사람이 서 있어도 자동차가 서행을 하거나 멈추는 경우가 적다.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미국 처럼 차가 서겠지 하는 마음으로 건너다가 차에 치일 뻔 하기도 했었다. 미국에서는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있든 없든 서야하고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야 한다. 가끔은 멀리서 횡단보도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을 발견하고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사람을 미안하게 만들고는 한다. 미국에서 친구들에게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좀 멀리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가면되지 왜 기다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조금 생각해보더니 "차가 사람보다 강하고, 차가 조금 기다리더라도 사람보다 더 빨리 가기 때문아닐까"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즉, 도로에서는 사람이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인 차가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팟캐스트 '여행수다'에서도 들은 기억이 있다. 유럽에서는 모터바이크가 자동차에 비해서 약하기 때문에 모터바이크 운전자를 배려해서 운전한다고 했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착해서 그렇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수십년에 걸친 경쟁교육에서 우리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챙기지 못했다. 남에게 배려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만한 여유가 생길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쟁은 심화되어가고 있고 경쟁교육 속에서 자라난 다음 세대 또한 경쟁의 미덕 외에는 배우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의 어린 희생자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겼고 그로 인해서 이번 선거에서 진보적 교육감들이 압승을 한 것에 희망을 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교육에도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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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전 오늘 노무현 대통령(故, 前은 아직 붙이고 싶지 않다)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했다. 5년전 그날 아침처럼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서야 '아, 오늘이구나'했다. 부끄러웠다. (매년 5월 23일은 부끄럽다.) 5년간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구나. 또한 미안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의 부재가 아프지 않구나 싶어서. 이어 노트북 화면에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는 울컥했다. 아직 아프구나. 글이라도 써야겠다 싶어 컴퓨터에 앉아 이 생각 저 생각. 글 한 편 올리고, 맥주 한 캔 사다 놓고 또 노무현 대통령을 회상.

 

  어린 시절, 그러니까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과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일본에 진출하기 전, 전라도 출신인 부모님을 따라 당연히 해태를 응원하던 시절이다. 부산 태생인 나는 친구들 앞에서 야구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학교 선생의 "전라도 놈(故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한다. 그래서 움직이기 힘든 노모를 모시고 투표소에 갔는데 결과가 그리 됐다"는 말을 들으며 올라오는 울화를 삭히는 수밖에 없었다. 어렸다는 말로 변명하기는 싫고, 비겁했다.

 

  비겁한 나와 다른 사람이 있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던 사람.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도 콩이고, 대구에서도 콩인' 세상을 만들자던 사람. 매번 부딪히고 떨어지면서도 지역주의의 장벽에 부딪히던 사람. 그 사람이 말하던 세상이 오기를 바랐다. 아니, 뒷짐지고 서서 그 사람이 그런 세상을 만들길 구경만 할 요량이었다. '이미 난 롯데를 응원하는 걸,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랬다. 아직 그가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았는데, 그는 이제 없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 사람이 오늘은 사무치게 그립다.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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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우연히 10원경매 사이트에(대부분의 10원경매 사이트가 비슷한 방법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서 사이트를 특정하지는 않음) 처음으로 들어갔다. 처음 접해본 10원경매 사이트는 내 상상을 초월했다. 30만원이 넘는 가격의 렌즈형 카메라 DSC-QX10의 낙찰가가 3만원 선이고, 5만원이 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무선 마우스가 4~5천원 선에서 낙찰되었다. '어떻게 이런 가격이 가능할 수 있지?'라는 궁금증과 함께 의심이 들어서 이곳을 조금 들여다 보기로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미 2011년에 한번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단돈 6만원에 아이패드 에어를 낙찰 받은 A의 예를 살펴보자. A는 실제로 얼마에 아이패드 에어를 산 것일까? 그리고 A는 얼마나 싸게 아이패드 에어를 산 것일까? 이 사이트에서 올려놓은 이 상품의 가격은 73만원이니 실제로 6만원에 샀다면 90퍼센트 이상 싸게 산 것이. 정말일까? 실제 A가 이 물건을 사기 위해 얼마를 썼는지 알기 위해 10원경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10원 경매는 상품을 10원부터 입찰에 붙여 10원씩 가격을 올려 입찰하도록 하는 방식의 경매다. 하지만 경매에 입찰하려면 500원짜리 입찰권을 사야하며, 낙찰에 실패해도 입찰권 구입비용을 반환받을 수 없다. 그리고 경매 종료 10초 안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입찰을 하면 다시 10초부터 카운트 다운을 한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10초 전까지는 가격이 낮고 10초가 남았을 때 부터 진짜 경매가 시작된다. A는 이 경매에 총 350회 입찰했다. 따라서 입찰하는데 쓴 금액이 17만 5천원, 낙찰가 6만원으로 아이패드 에어를 사는데 총 23만 5천원이 들었다. 또한, 같은 기종 아이패드 에어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55만원 선에서 살 수 있다. 따라서 90퍼센트 이상 싸게 산 것이 아니라 40퍼센트 정도 싸게 산 것이다. 그렇다해도 거의 반 값으로 아이패드 에어를 구입 것이니 A는 수지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A는 어떻게 이렇게 싸게 아이패드 에어를 살 수 있었던 것일까? A가 아이패드 에어를 싸게 구입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과정에서 돈을 잃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같이 경매에 입찰 했지만 낙찰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경매에 6천번의 입찰이 있었으므로 총 300만원이 입찰하는데 들어갔다. (이 사이트에서는 낙찰을 못 받은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어서 다음 경매에 입찰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는데 문제를 간편히 하기 위해서 이는 고려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하면 아이패드 에어 여섯대를 살 수 있는 돈으로 한 사람이 아이패드 에어 하나를 조금 싸게 산 것이다. 물론 그 차액은 사이트 운영자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간다.

 

  그럼 이 사이트 운영자는 손해를 절대 보지 않을까? 그렇다. 단, 사람들이 계속 경매에 참여하는 한 말이다. 만약 사람들이 입찰을 하지 않아서 물건들이 몇백원 단위에서 입찰된다고 하면 적자는 감당할 수 없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수익의 상당부분을 사이트 홍보비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여기서 또 다른 의심이 싹튼다. 과연 사이트 운영자들이 손해를 보는 가운데서 사이트를 공정하게 운영을 할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부정은 알바나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거짓 입찰을 유도하여 입찰건수를 늘리거나 자신이 낙찰 받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에 이와 같은 불법이 행해진 사이트가 적발된 적도 있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에게 경매 낙찰자가 실제 이용자인지 아니면 알바나 프로그램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0원경매 사이트를 둘러보면 볼수록 경매 사이트가 아니라 도박 사이트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용자들의 사행심과 경쟁심을 극대화 하여 운영자가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이용자들끼리 서로 등쳐 먹는다는 점에서 10원경매와 도박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경매에서 한 번 따고 판을 떠나지 않는 한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에서 도박과 판박이다. 그리고 10원 경매 사이트는 합리적 소비를 가장해서 도박의 길로 인도 한다는 점에서 도박 사이트보다 질이 더 나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일확천금 노리지 말고 합리적 소비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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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틀린 그림 찾기'라는 게임을 한 번 이상은 해봤을 것이다. 두개의 비슷한 그림을 보고 '틀린' 곳을 찾는 이 게임의 이름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좋지 않다. 이 게임의 영어 이름은 'Spot the Difference'로 번역하면 '다른 그림 찾기'가 된다. 우리는 왜 이 게임에 '다른 그림 찾기' 대신 '틀린 그림 찾기'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다르다'와 '틀리다'를 자주 혼동하여 쓰는 것을 본다. 심지어 TV에 나오는 사람들 조차 이 두 단어를 잘못 사용하곤 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라는 뜻이고,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라는 뜻으로 두개의 뜻이 명확하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두 단어를 습관적으로 틀리게 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사용하는 것을 보면,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언어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 같이 느껴져서 매우 안타깝다.

 

  우리 사회에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는 예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아니, 대부분 차별의 이유가 다름을 인정하지 않음에서 비롯한다. 국적, 태어난 지역, 졸업한 학교, 성별, 성적 취향, 가정형편, 가치관 등의 다름을 이유로 차별 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일간베스트(일베) 이용자들의 여성, 전라도,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극단적 혐오와 공격성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풍토를 반영한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종북좌파' 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다름'과 '틀림'을 구별하지 않고 쓰는 우리의 언어 생활에 녹아 있다. 몰라서 틀리는 것도 아니고 습관적으로 잘못 쓰는 표현인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사고를 반영하고 사고는 언어를 지배하기에 단순히 습관이라고 치부하고 넘어 갈 일이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으로 '틀린 그림 찾기'를 '다른 그림 찾기'라고 고쳐 부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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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에는 길이 없었다.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을 뿐 어느 곳에도 길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이 가고 싶은 어느 곳이든 가서 존재 할 뿐, 어떠한 비교도 하지 않았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만이 존재했지 절대적인 우위의 평가 따위는 존재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중에 양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곳이 다른 곳 보다 나은 곳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을 '목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길'이라고 불렀다. '길'이라고 불렀지만 그 것은 발자국 몇개가 남아 있을 따름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허무맹랑한 말을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주장에 냉담하던 사람들 중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하나 둘씩 그 길을 따라 걷자 그들이 지나간 자리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길이 도드라짐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또렷한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모두 함께 그 길을 걸을 수 없게되자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힘이 센 사람들만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을 밀어버리고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곳을 '목표'라고 부르지 않고, '성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걷거나 동경하기 시작했다. 볕이 드는 양에 따라 자리의 높고 낮음이 나뉘어 졌고, 비교적 서늘한 곳을 좋아하던 사람들마저 자신들의 취향은 잊은 채 양지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종종 길을 따라가다가 그 옆으로 새어서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과 그 길을 걷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낙오자'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따라 걸어가서 '성공'에 도달하는 법만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길이 없어도 충분히 자기가 원하는 곳을 찾아 갈 수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이 아닌 곳을 걸어가는 시도 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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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상을 해본다.

 

  어느 시골 학교, 아이들은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하고 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서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그 아이는 도시에서는 가위 바위 보에 새로운 룰이 추가되었다고 이야기 한다. 약지만을 곧게 뻗는 것, 편의상 이것을 뻥이라고 하자. 이 뻥의 특징은 나머지를 모두 이긴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은 이 말도 안되는 룰을 거부하거나 무시했다. 그러자 전학생은 이 새로운 룰을 받아들이는 친구에게만 맛있는 빵을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의 3분의 1이 이 룰을 받아들였다. 그 외의 친구들은 여전히 새로운 룰에 거세게 반대했다. 이번에는 전학생이 새로운 룰을 따르는 친구에게만 자신의 최신형 게임기를 가지고 놀 기회를 주었다. 3분의 1인 아이들이 또 그 룰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 불공정한 룰을 따르지 않는 아이들은 3분의 1 밖에 남지 않았다. 전학생은 그 남은 아이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불만이 있었지만 이제 그 룰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가위 바위 보 뻥 놀이는 언제나 지루했다. 모두가 뻥을 내었기 때문이다.

 

  지루하다. 이 지루한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없다. 새로운 룰을 만들어 보자. 중지를 당당히 내밀어 보자. 편의상 이 것을 뻑이라고 부르도록 한다. 이 뻑의 특징은 더이상 이 지긋지긋한 게임에 참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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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일 전 윤창중씨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 인선으로 야권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그가 이번 대선기간 동안 극우 논객으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전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자극하는 발언들을 쏟아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수석대변인이라는 자리의 중요성과 인수위 첫번째 인선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했을때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과는 별개로 '칼 한번 담그고 와라. 키워줄께'라는 조폭의 진부한 대사가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새누리당이 수 많은 논란의 중심, 위기상황에서도 해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조폭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영을 위해 나서는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힘이 진영 내부 결속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번에 손에 피를 묻혀도 조직에서 키워준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수 많은 똘마니들이 행동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논란회피 3호 꼬리짜르기 (1호는 오리발, 2호는 적반하장) 스킬도 바로 이런 힘이 있기에 가능하다.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 사찰이 문제되었을 때 말단에서 일을 수행했던 장진수 전 주무관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그의 입을 막기위해 국내 굴지의 대기업 취직자리를 알아 봐주겠다고 제의하고, 생활비로 쓰라며 관봉으로 보이는 돈다발 오천만원을 건냈다고 한다. 이러한 일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만 일어난 일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은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입막음 하려 회유한 사실마저 장진수 전 주무관의 입을 통해 폭로되었다. 하지만 '몸통'까지 가지 못하고 꼬리자르기로 끝나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지금 이순간에도 '손에 피한번 묻히고 오면 앞으로 키워줄께'라는 유혹이 수구 진영 내부를 결속 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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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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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된 공간에 쓰고 저장되는 글은 더욱 그러하다. 5년째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있지만, 세상에 한 문장 내어놓기가 여전히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문장 한문장 적어보려 한다. 글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겠다. 비판적 견해는 언제나 감사할 일이다. 이 블로그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고민하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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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less.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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