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에게 주변사람들이 종종 미국은 뭐가 우리랑 다르더냐고 묻곤한다. 농담으로 다들 영어를 잘하더라 하고 이야기 하곤 하지만 필자가 미국에서 느낀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약자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운전을 하거나 걸어다닐때 사람들이 도로위에서도 경쟁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자동차 운전자들은 마치 서킷의 레이서가 된 마냥 경쟁적으로 운전을 한다. 조금의 틈이라도 놓치지 않고 틈새를 공략하는 한편 다른 차의 차선 변경을 막는다. 앞차가 조금이라도 지체한다 싶으면 경적을 울리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앞차가 서행 하는데는 자신이 모르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종종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추월하려 하다가 앞에 벌어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경우도 많다. 또한 이런 운전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운전을 매우 잘한다고 생각하고 서울-부산을 몇시간에 끊었네 하면서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차들 끼리 경쟁하는 것 까지는 그나마 낫다. 횡단보도에 사람이 서 있어도 자동차가 서행을 하거나 멈추는 경우가 적다. 귀국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미국 처럼 차가 서겠지 하는 마음으로 건너다가 차에 치일 뻔 하기도 했었다. 미국에서는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있든 없든 서야하고 사람이 있으면 사람이 먼저 지나가도록 기다려야 한다. 가끔은 멀리서 횡단보도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을 발견하고도 서서 기다리고 있어서 사람을 미안하게 만들고는 한다. 미국에서 친구들에게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좀 멀리 있으면 기다리지 않고 가면되지 왜 기다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조금 생각해보더니 "차가 사람보다 강하고, 차가 조금 기다리더라도 사람보다 더 빨리 가기 때문아닐까"라고 대답을 해주었다. 즉, 도로에서는 사람이 약자이기 때문에 강자인 차가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를 팟캐스트 '여행수다'에서도 들은 기억이 있다. 유럽에서는 모터바이크가 자동차에 비해서 약하기 때문에 모터바이크 운전자를 배려해서 운전한다고 했다.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착해서 그렇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보다 조금 더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통치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가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수십년에 걸친 경쟁교육에서 우리는 약자에 대한 배려를 챙기지 못했다. 남에게 배려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만한 여유가 생길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쟁은 심화되어가고 있고 경쟁교육 속에서 자라난 다음 세대 또한 경쟁의 미덕 외에는 배우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세월호 참사의 어린 희생자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생겼고 그로 인해서 이번 선거에서 진보적 교육감들이 압승을 한 것에 희망을 건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교육에도 변화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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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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