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22사단 총기사고'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라와 있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몇몇의 안타까운 생명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9년전 22사단에서 근무했던 필자의 기억이 더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이번 사건은 필자를 이등병으로 근무하던 2005년 11월의 어느날의 먹먹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게 만든다. 많은 언론들이 보도하듯 22사단은 전통적(?)으로 사고가 많은 부대로 악명이 높다.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았는지 부대별칭을 '뇌종부대'에서 지금의 '율곡부대'로 바꿨다. 종에 벼락이 맞으니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나 뭐라나. 당시 필자는 법무행정병으로 사고가 나면 최초보고 부터 징계 및 법적처리 까지의 모든 과정을 정리해서 전산 행정업무를 맡았었다. 2년동안 '변사 사건'을 포함한 많은 사건과 사고를 보고 정리했던 필자에게 그때 그 사건은 9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죽음'이란 단어를 접할 때 가장 먼저 가슴에 박힌다.


  군에 들어가서 조금 업무에 익숙해질 무렵인 11월 초 어느 날 책상위에 서류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선임병으로 부터 교통사고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사건의 최초보고를 정리해서 전산망에 올리려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별다를 것 없는 교통사고 하나였던, 단순한 업무의 하나였던 그 사고가 아직도 트라우마로 기억되는 것은 사고로 중상을 당한 한 이등병의 이름을 확인했을 때부터였다.


  주삼일. 삼일절날 태어나서 아버지가 삼일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던 중학교 친구. 중학교 졸업 후 몇년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22사단 신교대에서 같은 내무실 옆자리에서 중학교때 처럼 티없이 웃던 녀석. 매일 밤마다 '다단계는 절대하지마'라며 자신의 다단계 피해담을 무용담 처럼 읊어대던 내 친구. 하필이면 그 녀석 이름이 제일 위에 있었다. 5분대기조 명령을 받고 출동하던 중 차가 논두렁에서 전복되면서 대부분의 병사들이 타박상 정도의 경상을 당한 그 사고에서 이등병 주삼일은 머리를 다쳤고 한달이 채 지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필자의 기억에 따르면 필자가 복무하던 당시 육군에서 한해에 5~60명 정도의 장병들이 자살과 사고사로 목숨을 잃었다. 60만명 규모의 육군에서 60명이 사망했다면 10만명당 33.5명이 죽었던 2010년의 대한민국과 비교할 때 많은 사람이 죽는건 아니라고 볼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쳇말로 '군에서 죽으면 개죽음'이라고 하는 이유는 국가가 복무해도 될 정도라고 판단한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20대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점과 군대의 폐쇄성으로 인해 그 죽음의 원인규명과 보상, 책임자 처벌이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번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한다. 실탄을 들고 탈영한 임모병장은 아직 그 행방이 묘연하다. 군과 정부는 최대한 빨리 그를 잡아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억울한 죽음을 맞은 유족들과 피해자 가족들에게 최대한 투명하게 조사내용을 밝혀서 조사에 대한 억울함 만큼은 남지 않도록 해주길 바란다. 5명 장병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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