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는 길이 없었다.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을 뿐 어느 곳에도 길은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방법대로 자신이 가고 싶은 어느 곳이든 가서 존재 할 뿐, 어떠한 비교도 하지 않았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만이 존재했지 절대적인 우위의 평가 따위는 존재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중에 양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곳이 다른 곳 보다 나은 곳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을 '목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자신이 걸어온 발자취를 '길'이라고 불렀다. '길'이라고 불렀지만 그 것은 발자국 몇개가 남아 있을 따름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허무맹랑한 말을 무시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주장에 냉담하던 사람들 중 소수의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하나 둘씩 그 길을 따라 걷자 그들이 지나간 자리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길이 도드라짐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가 보아도 또렷한 '길'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그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모두 함께 그 길을 걸을 수 없게되자 사람들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힘이 센 사람들만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을 밀어버리고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곳을 '목표'라고 부르지 않고, '성공'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 걷거나 동경하기 시작했다. 볕이 드는 양에 따라 자리의 높고 낮음이 나뉘어 졌고, 비교적 서늘한 곳을 좋아하던 사람들마저 자신들의 취향은 잊은 채 양지만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종종 길을 따라가다가 그 옆으로 새어서 '성공'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과 그 길을 걷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낙오자'라는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따라 걸어가서 '성공'에 도달하는 법만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길이 없어도 충분히 자기가 원하는 곳을 찾아 갈 수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길이 아닌 곳을 걸어가는 시도 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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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조약돌

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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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14일 경향신문에 "우리는 정권 교체를 원합니다"는 선언문을 광고로 실었던 137명의 시인 소설가의 대표로 손홍규 소설가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었다. 그리고 함께 목소리를 내었던 문인들도 언제 소환 될 지 모른다고 한다.

 

  선언문에 참여한 작가들의 명단엔 익숙한 이름들이 꽤 많다. 그 중엔 개인적 친분도 있는 분들도 몇 분 있었다. 이번에 검찰에서 소환 조사를 받은 손홍규 소설가와도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2009년 1학기에 선생님의 소설 창작 수업을 수강했던 것이다. 당시 뵈었던 선생님의 선한 얼굴이 떠올랐다. 뿐만아니라 2010년 1학기에 배웠던 전성태 선생님과 김종광 선생님 역시 그 선한 웃음 때문에 투사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직접 수업을 듣진 않았지만 학과사무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김근 선배님과 이재웅 선배님, 초청 강연회 때 뵈었던 김애란, 김숨 작가님도 그러하다. 그런 작가들을 투사로 만드는 것은 누구인가?

 

  이번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학과 사무실에서였다. 역시나 137인에 이름을 올린 김근 시인은 "나 잡혀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덤덤한 선배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은 느낄 수 없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링 위에 올라 가기 전 복서의 흥분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들이 투사가 되길 원한다면, 문인의 입에 재갈을 물려라.

 


선언문 전문


  우리는 정권교체를 원합니다 - 그로써 자유의 영토가 한 뼘 더 자라나리라 믿습니다.

 

  지난 5년간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삶의 고통이 더해지고 삶의 가치가 몰락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철거민들은 망루에서 검은 연기로 타올랐고 노동자들은 철탑 위에 둥지를 틀어야 했으며 수천년을 휘돌아 가던 강은 혼탁한 수로가 되었습니다. 유례없는 언론탄압이 자행되었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어 우리 모두를 경악케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쌍용차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있으며 아름답기 그지없던 갯바위는 잰쟁의 기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절망과 죽음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젊은 시인과 소설가들은 조금이라도 삶의 고통이 덜어질 수 있는 세상, 그래서 조금이라도 삶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을 바랍니다. 우리는 그 출발이 정권교체에 있음을 절실히 공감하며 그것을 위해 잠시나마 각자의 작업실에서 나와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자 합니다. 시와 소설을 쓰던 손으로 선언문을 써야할 때의 열패감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 세계의 몰락을 그저 지켜볼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그가 진보적인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약자의 신음에 더 잘 귀 기울일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에 절망하여 이 세계를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는 시대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계에 절망이 아닌 희망을 파종하는 대총령을 간절히 희망합니다. 그 답은 정권교대가 아닌 정권교체입니다.

2012년 12월 14일

정권교체를 바라는 젊은 시인 소설가 137명

 

강윤화, 구경미, 구병모, 권여선, 김경은, 김나정, 김도연, 김서령, 김선재, 김숨, 김애란, 김연수, 김유진, 김이설. 김종광. 김태용. 노희준. 박민규, 박성원, 박현욱, 배지영, 백가흠. 손홍규, 송경아, 심윤경, 안보윤, 안성호, 염승숙, 옥노욱, 원종국, 윤고은, 이기호, 이동욱, 이만교, 이연희, 이은선, 이재웅, 임수현, 전성태, 전아리, 정용준, 정한아, 조해진, 조헌용, 천명관, 천재강, 최용탁, 최은미, 최진영. 태기수, 하성란, 하재영, 한지혜, 해이수, 홍명진, 황정은 이상 소설가 56명

 

강성은, 고영, 고영서, 고찬규, 길상호, 김경주, 김경후, 김근, 김민정, 김민철, 김사이, 김산,김선우, 김성규, 김소연, 김안, 김영산, 김은경, 김일영, 김주대, 김중일, 김지유, 김태형, 김학중, 김현, 나희덕, 문동만, 박경희, 박성우, 박소란, 박순호, 박시우, 박시하, 박연준, 박준, 박찬세, 박형준, 박후기, 백상웅, 서대경, 서효인, 손병걸, 손택수, 송진권, 신동욱, 신용목, 신철규, 안주철, 유종인, 유현아, 윤석정, 이기성, 이명희, 이민호, 이설야, 이성미, 이영주, 이용한, 이우성, 이은규, 이재훈, 이종수, 이지호, 이진희, 이현호, 이혜미, 임경섭, 임희구, 장석남, 장시우, 장이지, 정영효, 정우성, 주하림, 채상우, 천수호, 최금진, 최명진, 함기석, 함순례, 휘민 이상 시인 81명

 

뉴스 링크

[고발뉴스] 선관위, ‘정권교체’ 바란 젊은 문인 검찰 고발

[프레시안]박근혜 지지 광고는 허용, 문재인 지지 광고는 불허?

[미디어오늘]'외눈박이’ 서울시 선관위의 문인 137명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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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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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계레 신문에 "박당선인, 'MB형님 사면'에 반대 뜻"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만 보고 MB의 마지막 특별사면이 계속 논란거리가 되자 결국 박근혜 당선인도 특별사면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을 읽어 보니 박근혜 당선인의 입이나 대변인의 논평으로 나온 얘기는 아니었고, 박근혜 당선인과 가까운 여권 핵심 인사의 사견에 불과했다. 그리고 인터뷰의 내용도 박근혜 당선인이 MB의 특별 사면을 반대한다가 아니라, 왜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서 침묵하는가에 대한 변명에 불과했다.

 

  기사의 내용은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첫째, 박근혜 당선인은 MB가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사면을 단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둘째,  MB가 이상득 전 의원과 측근들 사면 문제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박당선인이 공개적으로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여 침묵하고 있다. 이는 마치 강도가 칼을 들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데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서, '나는 저 강도가 저 칼을 사용할수 없을거라 믿기 때문에 신고하지 않습니다' 또는 '강도가 저 칼로 사람을 해치기 전에는 경고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하는 것과 같다.

 

  더욱 두려운 것은 이러한 사고 방식이 MB 마지막 특별사면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15년 동안 정치 판에서 유력한 정치인으로 살아오면서 박근혜 당선인이 어떤 논란이 있을 때 앞서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주장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박근혜의 장점으로 신중함을 꼽지만 논란이 있을 때 마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논란에서 피해있으려고만 하는 그를 신중함으로 포장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기사링크

[한계레] “박 당선인, ‘MB 형님사면’에 반대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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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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