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조금 받는다고 해서 감정이 조금 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상고객에 대한 인터뷰를 나눴던 마트 노동자 A씨께서 마지막으로 청취자들에게 남긴 말이다. A씨의 말에 따르면 마트에 일명 '진상 고객'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마트 진열을 옮겨서 자신이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으니 보상하라는 황당무계한 생떼 부터 "불지른다", "확 쑤셔버린다" 등등 폭언에 물건으로 폭행까지 일어난다고 한다. 충격적이면서 동시에 일상적이다. 그런일이 일어나는 것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종종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떼를 쓰고 화를 내고 폭언하는 등의 모습은 쉽게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익숙하다.

 

  마트만 그럴까.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필자의 지인에 따르면 그곳에도 정말 많은 '진상 고객'들이 있다. 커피 반을 마시고는 맛 없다고 다시 달라거나, 아메리카노가 쓰다고 욕설하는 사람 (그럼 라떼 처먹어. 씨바.) 바리스타 눈빛이 마음에 안든다고 성추행이라고 진상피우는 여자부터 바리스타에게 마음에 안든다고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붓는 사람까지 갖가지 '진상고객'들이 다 있다. 어디 커피전문점 뿐이랴. 식당, 휴대폰 대리점, 아이스크림가게, 미용실, 백화점 등등 어느곳에나 진상고객은 있다. 물론 만족스럽지 못한 서비스에 항의를 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지만 어디까지가 '합리적'인지 '진상'인지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의 '진상 고객'은 도를 넘어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개그콘서트의 '정여사'라는 코너가 많은 사람의 공감과 사랑을 얻었다는 점은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넓게 퍼져있음을 보여준다. 

개콘 정여사

 

  무엇이 한국 사회를 이렇게 '진상 천국'으로 만들었나? 필자는 그 책임이 우선적으로 기업에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이 '손님은 왕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앞세워서 고객을 대하다 보니 왠만한 고객의 항의는 고객의 입장에서 해결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손님의 항의에 대하는 객관적인 시스템에 의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응대하는 직원의 재량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해결하게 된거다. 그런데 이럴 경우 같은 사안을 가지고도 조금 항의한 고객과 말그대로 '진상'을 부린 고객 사이에 보상이 달라게 된다. 그렇게 되면 조용하고 합리적으로 항의한 고객의 경우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큰 소리를 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되면 그때 부터는 '진상 고객'을 키우는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기업에서는 진상짓에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한 커피전문점의 경우 고객 불만글을 올리면 무료음료를 제공하는 등의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고객 불만을 해소하겠다는 동기에서 시작했겠지만 적절한 평가기준 없이 이뤄지는 4~5천원 짜리 공짜 커피 한 잔은 '진상 고객'들에게 생트집의 충분한 동기가 된다.

 

  더욱이 기업들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의 대부분을 자신들이 책임진 것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전가했다. 바로 '고객 서비스 만족도 조사'라는 이름의 족쇄 말이다. 몇해 전 오랜만에 귀국해서 카센터를 갔을때 예전과 사뭇 달라진 그곳의 분위기에 조금 놀랐다. 마초 형님들이 퉁명하고 터프하게 서비스를 해주던 곳에 상냥하고 친절한 남자들이 있었다. 세세하고 꼼꼼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고맙고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차를 고치고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차 정비를 받고 돌아가는 필자에게 카센터 남자는 서비스 만족도 조사하는 전화가 오면 좋은 점수 부탁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때 필자는 거세당한 수컷을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비스에 만족했지만 왠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카센터 뿐만 아니라 커피전문점, AS센터 등등 일정 규모 이상 되는 대부분의 기업이 만족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이 평가 점수가 개인의 고가에 반영이 되고 대리점의 경우 그 대리점 전체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캐치프레이즈에 그친 '손님은 왕이다'가 아니라 고객과 직원사이에 실제 권력 구조가 형성된다. 게다가 A씨는 인터뷰에서 "저희는 무조건 죄송합니다, 잘못한 게 없어도 무조건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있고요."라고 말한다. 큰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혹은 회사 이미지를 위해서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손님과 싸우지 마라', '잘못한게 없어도 잘못했다고 빌라'고 직원들을 교육시키 것은  쉽게 부릴 수 있는 직원 회사가 감당해야 할 몫을 넘기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중간 매니저들은 '일 크게 만들어봐야 당신만 손해니까 참으라'는 말로 말단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방치한다. 물론 거물급 '진상 고객'이 와서 중간 매니저를 불러서 까면 또 그위에 매니저가 같은 말로 참으라 종용하니 먹이사슬이 따로 없다.

 

  감정노동연구소 김태흥 소장은 인터뷰에서 월 150만원 남짓 받는 비정규직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충분한 대가를 받는 정규직 전담팀에게 고객 항의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면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단순히 전담팀만 만들어서는 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진상짓의 이유에는 경제적 보상을 위한 것도 있지만 사회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분출구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보상 기준을 명확히 세워서 '진상'에 대한 인센티브를 차단하고 '욕설'과 '폭행'으로 진상짓을 하는 고객은 법적 대응 및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해서 직원을 지켜주게 되면 직원의 이직률도 낮아지게 될 것이고 '진상 고객'도 줄어들 것이다. "월급을 조금 받는다고 해서 감정이 조금 상하는 것은 아닙니다."는 말이 '진상 고객'들과 잠재적 '진상 고객'들의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참조

 

[CBS 현정의 뉴스쇼] "얼굴에 돈 던지고 먹던 수박 먹여도"..마트 수난사

[동아일보] “고객이 왕이면 직원도 왕” 진상고객 전화 끊으니 놀라운 결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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