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부모님께 전화를 건 것이 언제였을까. 회사를 그만둔 뒤 이어진 긴 백수 기간. 가끔 걸려오는 전화만 받아왔다. 아마 서른 둘 나이에 기생하고 있는 내 처지가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한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반찬을 보냈다며 전화를 한다. 아버지는 용돈을 보냈다고.


  전화벨이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아침까지 잠을 못 이루다 겨우 잠들었기에 피곤했다. 그 이후로도 두 통의 부재중 전화가 더 와있었다.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성곽길을 걸어내려가다 아직 피지 않은, 하지만 벌써 붉은 홍매화 봉오리를 보다 생각이 나 전화를 했다. 도서관에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았다고 둘러댔다. 아버지는 집에 내려와서 아버지 공장 일을 도울 생각은 없냐고 하신다. 당장 취업을 해서 받을 돈 보다 더 많은 월급을 주겠다고.


  아버지는 평생을 기름밥을 드셨다. 어렸을 적엔 가끔 아버지 공장에 가서 기름때 절은 기계를 닦고 용돈을 벌었다. 아버지는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강한 분이었지만, 내가 가업을 잇길 누구보다 반대했다. 아버지 주위엔 일을 배우는 자식들이 제법 있었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혀를 찼다. 내겐 기름밥 먹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사향산업이 되어버린 탓도 크겠지만,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시대에서 끝내길, 자식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길 바라셨던 것 같다.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 누구보다 좋아했던, 재능 없음을 탓하며 소설 한 문단을 써내지 않아도 끝내 믿어주던 아버지였다. 부끄러운 첫 직장에서 누구도 읽지 않는 짜깁기 기사를 쏟아낼 때 회원가입을 하고 댓글을 달아주었던, 두 번째 직장에서 나름대로 보람된 기사를 쓰던 땐 문자를 보내 눈물이 난다’ ‘대기자가 될 것 같다며 응원해주던 아버지가, 그만하자고 하신다. 내려오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든 알아서 생계를 꾸리라고 하신다. 평소 사랑한다, 믿는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끊으셨다.


  안다,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란 걸.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란 걸. 아버지 성정 상 독립하라는 말을 모질게 하고 미안했을 것이다. 자신이 더 부유하지 않음을 자책하셨을 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사랑한단 말을 하셨더라면 끝내 울음을 감추지 못하셨을 분이란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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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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