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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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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스무 살. 부산대학교에 갓 입학한 새내기였던 나는 생전 처음 대규모의 전경 무리를 목도하게 되었다. 그들을 불러모은 이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겐 그냥 '운동권'이었을 뿐. 수배중이던 그 양반이 5년만인가 학교 정문을 나선다고 했다. 정문 앞에는 수백의 전경들이 에워싸고 있었고, 그는 수십명의 운동권 대원들에 둘러싸여 정문 앞을 나섰다가 10여분 후 다시 학교 안으로 피신했다. 나는.

  "씨바 병신같군"

  했다. 그의 한 걸음이 누군가에겐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이었을 지 모르겠지만, 내겐 요식행위에 불과해 보였다. 차라리 혼자 당당히 나섰더라면 조금 멋있어 보였을 지 모르겠다. 



  장면 둘.

  스물 넷.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겨 수능시험을 다시 봐서 들어간 학과에는 소수였지만 '주사학습'을 하는 무리가 당당히 존재했다.. 21세기에 '주사파'라니...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김일성 수령의 일화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술자리 농담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그들은 내게 시대에 뒤쳐진 인간 군상이었다. 그들이 뿌린 유인물은 감정적이고, 논리적 비약이 심해서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지점들도 있었다. 광우병 촛불집회에 학교 깃발 아래 집결해야한다던 그 말을 나는 공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집회에 참여했고, '형'들을 따라 집회에 참여했던 친구들의 면회를 다녔다. 청와대 앞에서 전의경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새내기들은 밖으로 빼내자는 의견을 묵살했다는 소위 '지도부'의 결정에 듣고 난 뒤 나는 그들과는 섞일 수 없단 생각을 했다.


  장면 셋.

  스물 여덟. 이런 저런 이유로 졸업이 늦어진 나는 학과 학생회장을 하게 됐다. 나 같은 인간이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운동권'의 규모나 영향이 많이 줄어든 탓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단과대는 여전히 옛 방식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진영을 나눴고, 반대 진영의 잘못을 꼬투리 잡아 우리도 잘못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운영위원회에 후보자가 참석해 선거운동을 했고, 과별로 학생들을 줄세워서 '투표'해야한다고 했고, 모 과 여성들이 체육과 남자에 홀려서 '잘못된' 투표를 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했다. 그것이 '옳다'고 했다. 나는 "우리 구성원들은 그런 비민주적 투표를 할 수 없다"고 운영위를 나왔고, 내 결정과 별개로 총학 선거에서 소위 '우리 진영'은 졌다.


  나는 내가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해왔다. 사사건건 운동권들과 시비를 붙었기 때문이다. 올바른 보수주의자가 없이 친일 뿌리의 민정당 계열이 보수를 자임하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기숙 교수의 '왕따의 정치학'을 읽기 전까지. (조기숙 교수의 분류에 따르면 나는 '신좌파'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주저리 주저리 내 이야기를 늘어 놓은 것은 나를 주사파로 오해가 없길 바라는 때문이다. 하지만 오해한다면 뭐 어쩔 수 없고. 한편으론 그놈의 주사파니 빨갱이니 프레임에 갖혀 백기 먼저 흔들고 내 주장을 해야하는 현실이 뭣 같기도 하고.




  이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한상균 위원장이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의 형을 확정 받았다. 


한 위원장은 2012년부터 2015년 9월까지 13건의 집회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업무방해·일반교통방해)로 지난해 1월 기소됐다. 1심은 “한 위원장이 불법행위를 지도하고 선동해 큰 책임이 인정된다”며 징역 5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했으나, 2심은 “경찰의 일부 조처가 시위대를 자극했던 측면도 있어 보인다”며 일부 혐의를 무죄로 판단해 징역 3년으로 감형했다.

한상균 징역3년 확정..국제사회 "석방" 촉구(한겨레)


1. 시위 과열 양상은 한상균 위원장의 책임일까?
  기본적으로 시위는 국민의 주권행사라고 생각한다. 물론 헌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권리를 행사함에 있어서도 자유의 일정적 제한이 필요하다. 백남기 열사의 사고가 일어났던 2015년 11월 14일, 제 1차 민중총궐기 대회. 분명 시위가 과열화 된 양상을 띄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민주노총 지도부 때문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봐야한다.

  대학생 때부터 수차례 시위 현장에 나갔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때는 '백골단'이란 자들의 진압 모습을 목도하기도 했다. 2015년, 기자로 일하며 취재차 나갔던 시위 현장은 2008년과도 사뭇 달랐던 기억이다. 아직 해가 지기도 전에 물대포를 쏘았고, 물대포엔 캡사이신을 섞었다. 취재를 위해 버스 위에 올라있던 기자들을 향해서도 물대포를 쏘았다. 방송을 통해 "기자들은 안전지대로 몸을 옮기라"고 했지만 어디가 안전지대인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버스 바로 앞(보통 이 곳은 쏘지 않는다고들 했다)에 옹기 종기 모여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기자들에게도 어김없이 물벼락이 떨어졌다.

  

  제1차 민중총궐기에는 늦은 시간에 참여했다. 더이상 기자도 아니었고, 갈까 말까 망설이던 중에 백남기 열사의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서 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 전에 어떤 양상이었는지 잘은 모른다. 다만 도착했을 때 매케한 냄새, 눈 내린 듯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 앉은 흰 가루를 기억한다.


2. 징역 3년은 적당한거야?

  나는 법을 모른다. 그런데 최소한 그 형량의 기준이 사회 통념을 따라가야하지 않나? 포털에 징역 3년을 검색해보라. 온갖 성폭력범들에 대해 죄질이 나쁘고, 블라 블라~ 엄벌에 처한다며 2~3년 선고한다. 대기업 총수들은 블라블라~~ 집행유예다. 몇 백억의 횡령을 하고, 불법을 저질러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회사 구성원들을 옥죄고, 그들을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해고하여 수많은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누군가는 목숨마저 끊게 만들었는데.


3. 알고보니 노조가 나쁜놈들 이었어?

  사실 이 새벽에 잠도 못자고 글쓰고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이것저것 찾아봤더니 노조가 나쁜놈들이었어ㅠㅠ 연봉도 많이 쳐받으면서ㅠㅠ 이것저것 뭘 봤는데? 귀족노조들은 '몸쓰는 현장직'하면서 연봉이 니가 꿈꾸지 못하는 정도라고? 강성노조 때문에 기업들이 채용을 안하고 해외로 빠져나가서 니가 취직할 자리가 없다는 홍준표의 구라?


  일베에서 정보를 찾는 꼬마들에겐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며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합리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노조는 선한가 악한가? 나는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조는 이익집단이다. 선악의 판단 대상이 아닌 것이다. 특히나 구성원의 불법, 탈법적 행위를 들어서 노조가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말엔 속아넘어가지 말자. 그렇게 따지면 이 사회에 남아있을 집단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현재 노조가 하는 일이나 주장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노동조합의 운동방식에 나는 공감하지 않는다. 나는 전체주의가 싫다. 문화적 차이가 크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노조가 한 일이 없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일부 동의한다. 다만 지금 있는 노조가 없어지면 비정규직의 천국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란 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노조 조직률이 높아지면 노동자의 삶이 나아진다는 점이다.



ps. 한상균 위원장이 구속된 것이 2016년 1월이니 현재 절반 정도 형을 산 셈이다. 남은 1년 반, 한 개인을 생각한다면 너무 긴 세월이지만 관점에 따라 짧다면 짧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재인 정부에서 한상균 위원장을 특별사면하길 기대한다. 한상균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니다.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책임을 대표로 지고 옥에 갇혔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특별사면은 개인을 사면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되었던 노동자의 표현의 자유를 풀어주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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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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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神)으로 불리던 프로야구 감독이 있었다. 최다 경기 출전, 최다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응용 전 감독((2910경기,1554승 68무 1288패)의 별명이 고작 '코끼리' 였던 것을 떠올린다면 과분한 별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성근 감독의 기록은 2651경기, 1388승 60무 1203패로 2위.) 아이러니하게도 '야신'이란 별명의 유래가 김응용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낸 김응용 감독은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이후 팬들 사이에서 '야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쨌든. 


  야신(野神)이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 75세의 나이와 한화 이글스에서의 성적, 구단과의 반복된 갈등 등을 고려해 볼 때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성근 감독은 약팀을 맡아 중상위 성적을 내는 팀으로 변모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1984년부터 7개의 프로야구 팀의 사령탑을 거치면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현재 프로야구 감독 중 그와 사제 관계에 있는 명단(조범현(KT), 김기태(기아), 김경문(NC), 양상문(LG), 조원우(롯데), 김태형(두산))만 봐도 한국프로야구사에서 그의 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다. 독단적인 선수단 운영으로 매번 구단과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고 상위권의 성적을 내고도 경질(대표적으로 2002년 LG,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경질)되기 일쑤였다. 재일교포 출신인 그는 학연, 지연으로 뭉친 프로야구 판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현재까지도 야구팬들에게 비판을 받는 지독한 승리지상주의의 원인은 그의 배경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선수 혹사, 사인 스틸, 지나친 심리전 등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하는 감독으로 비치며 야구팬들의 공적(公敵)이 되기도 했다. 투수 교체, 희생 번트 등 감독의 고유 권한까지도 안티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반쪽발이', '세이콘' 등 저열한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김성근 감독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신이 사령탑에서 내려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시는 김성근표 야구를 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성근 야구의 종언이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부임할 때만 하더라도 야구팬들은 김성근표 야구에 의문이 없었다. 성적 외적인 부분에서 잡음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런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 예견하지 못했다. 그가 '야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2015년 초반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킬 때, 상식을 넘어선 투수 운용에 물음표가 붙었음에도 누구도 감히 그의 야구관에 도전하지 못했다. 구단의 유례 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 했을 때, 한화 팬들은 화를 내기 보다는 내년의 희망을 기약했다. 2015년의 실패를 거울 삼아 한층 보완된 팀을 만들어 주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2016년엔 한 단계 하락한 7위로 마감. 2017년 현재 9위로 성적면에서 누구도 김성근 감독의 경질을 반대하기 힘든 처참한 성적이다.


  성적 뿐만 아니라 그의 야구관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잦은 퀵후크, 변칙 기용 등 단기전을 치르듯 매 경기 전력을 쏟아 붓는 운영이 한 시즌 144경기를 치르는데 올바른 방식이 아니란 인식이 싹튼 것이다. 또한 타팀에 비해 월등히 많은 훈련양, 비상식적인 불펜운용 등에 따른 주전선수의 잦은 부상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성근 야구 속에 투수의 분업이 확실하지 않던 시절 새 시대의 지평을 연 김성근이 빠져있었다. 현대 야구에서 투수는 더욱 분업화 되고, 철저하게 관리되는데 반해 김성근의 야구는 과거 김성근의 성공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한화 이글스의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니 씁쓸하다. 국민감독 김인식, V10의 김응용에 이어 야신 김성근까지. 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감독들의 마지막 발자국이 너무나 닮아 그렇다. 또한 은퇴할 때가 다가오는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렇다. 무엇보다 세대를 뛰어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이 비쳐 그렇다. 이제 일구이무(一球二無)의 극한의 스트레스를 내려 놓고 편히 쉬시길 바란다.


ps. 구단 입장에서 경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난 시즌 이후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실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모양새는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스타전에서 김응용 감독의 은퇴식을 치른 전례도 있듯, 지금이라도 예우를 갖추는 것은 어떨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야구를 지켜보고 사랑했던 팬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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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돌이 형과 글쟁이 동생 쌍둥이 형제의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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