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으로 불리던 프로야구 감독이 있었다. 최다 경기 출전, 최다승의 기록을 가지고 있는 김응용 전 감독((2910경기,1554승 68무 1288패)의 별명이 고작 '코끼리' 였던 것을 떠올린다면 과분한 별명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김성근 감독의 기록은 2651경기, 1388승 60무 1203패로 2위.) 아이러니하게도 '야신'이란 별명의 유래가 김응용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일궈낸 김응용 감독은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이후 팬들 사이에서 '야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쨌든. 


  야신(野神)이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 75세의 나이와 한화 이글스에서의 성적, 구단과의 반복된 갈등 등을 고려해 볼 때 사실상 은퇴라고 봐도 무방하다. 김성근 감독은 약팀을 맡아 중상위 성적을 내는 팀으로 변모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1984년부터 7개의 프로야구 팀의 사령탑을 거치면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기도 했다. 현재 프로야구 감독 중 그와 사제 관계에 있는 명단(조범현(KT), 김기태(기아), 김경문(NC), 양상문(LG), 조원우(롯데), 김태형(두산))만 봐도 한국프로야구사에서 그의 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다. 독단적인 선수단 운영으로 매번 구단과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고 상위권의 성적을 내고도 경질(대표적으로 2002년 LG,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 경질)되기 일쑤였다. 재일교포 출신인 그는 학연, 지연으로 뭉친 프로야구 판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현재까지도 야구팬들에게 비판을 받는 지독한 승리지상주의의 원인은 그의 배경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선수 혹사, 사인 스틸, 지나친 심리전 등 승리를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하는 감독으로 비치며 야구팬들의 공적(公敵)이 되기도 했다. 투수 교체, 희생 번트 등 감독의 고유 권한까지도 안티들의 표적이 되곤 했다. '반쪽발이', '세이콘' 등 저열한 욕설까지 들어야 했다. 


   김성근 감독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나는 야신이 사령탑에서 내려오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시는 김성근표 야구를 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김성근 야구의 종언이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부임할 때만 하더라도 야구팬들은 김성근표 야구에 의문이 없었다. 성적 외적인 부분에서 잡음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런 성적표를 받을 것이라 예견하지 못했다. 그가 '야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2015년 초반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킬 때, 상식을 넘어선 투수 운용에 물음표가 붙었음에도 누구도 감히 그의 야구관에 도전하지 못했다. 구단의 유례 없는 지원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 했을 때, 한화 팬들은 화를 내기 보다는 내년의 희망을 기약했다. 2015년의 실패를 거울 삼아 한층 보완된 팀을 만들어 주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2016년엔 한 단계 하락한 7위로 마감. 2017년 현재 9위로 성적면에서 누구도 김성근 감독의 경질을 반대하기 힘든 처참한 성적이다.


  성적 뿐만 아니라 그의 야구관 자체가 도전받고 있다. 잦은 퀵후크, 변칙 기용 등 단기전을 치르듯 매 경기 전력을 쏟아 붓는 운영이 한 시즌 144경기를 치르는데 올바른 방식이 아니란 인식이 싹튼 것이다. 또한 타팀에 비해 월등히 많은 훈련양, 비상식적인 불펜운용 등에 따른 주전선수의 잦은 부상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성근 야구 속에 투수의 분업이 확실하지 않던 시절 새 시대의 지평을 연 김성근이 빠져있었다. 현대 야구에서 투수는 더욱 분업화 되고, 철저하게 관리되는데 반해 김성근의 야구는 과거 김성근의 성공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한화 이글스의 지난 10여년을 돌아보니 씁쓸하다. 국민감독 김인식, V10의 김응용에 이어 야신 김성근까지. 한국 프로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감독들의 마지막 발자국이 너무나 닮아 그렇다. 또한 은퇴할 때가 다가오는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그렇다. 무엇보다 세대를 뛰어넘지 못하는 우리네 삶이 비쳐 그렇다. 이제 일구이무(一球二無)의 극한의 스트레스를 내려 놓고 편히 쉬시길 바란다.


ps. 구단 입장에서 경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난 시즌 이후 과감하게 하지 못하고 실기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다만 모양새는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올스타전에서 김응용 감독의 은퇴식을 치른 전례도 있듯, 지금이라도 예우를 갖추는 것은 어떨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의 야구를 지켜보고 사랑했던 팬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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