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만번의 트라이 (2014)

One for All, All for One 
9.2
감독
박사유, 박돈사
출연
문정희
정보
다큐멘터리 | 일본, 한국 | 107 분 | 2014-09-18


  팟캐스트 '이이제이'에서 박사유, 박돈사 감독과의 인터뷰를 접하고 나서 꼭 봐야지 하던 차에 유시민, 노회찬님이 GV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바로 예매를 했다. 영화는 기대이상이었고 한시간 남짓 이어진 GV도 알찼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하는 마음에 몇 줄이나마 리뷰를 남긴다.



  이 영화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에 포커스를 맞춘 '다큐멘터리 영화'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는 한 편의 잘 만든 '극영화'를 본 듯했다. 스포츠로 사회를 바꾼다는 사명감을 가진 열혈교사 '오영길 감독', 실력과 리더십을 갖춘 주장 '김관태', 에이스 '권유인', 개그 담당 '황상현' 등 캐릭터가 뚜렷하게 드러난 때문일 것이다. 또한 주전 선수의 부상으로 인한 빈 자리를 메워야하는 후보 선수의 부진, 그 과정에서의 팀원들 간의 불화, 갈등 해소를 통한 팀워크 성장 등 벌어지는 상황들이 스포츠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생략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변변한 샤워장 하나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을 딛고 전국을 제패하는 한 고등학교 럭비부의 성공담을 그려내는 스포츠물이냐면 그렇지 않다. 이 영화 전체를 표현할 수 있는 키워드는 '노사이드(No side)정신'이다. 노사이드란 경기 종료를 뜻하는 럭비용어로 경기 중에는 어느 스포츠보다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지만 경기 후에는 편을 가르지 않는 정신이다. 어른들이 정치논리와 이념으로 편을 가른 탓에 고교 무상화 정책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크고 작은 차별을 받아온 아이들이 그 차별의 벽에 노사이드로 대변되는 관용정신의 화두를 던진다.


  슬픈 역사를 지닌 '재일 동포'를 다룬 영화인 만큼 눈물샘만 자극할 것이란 편견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게 되는 장면들이 곳곳에 있다. 하지만 해맑은 아이들(특히 황상현)이 어느 순간 눈물을 그치게 만든다. 눈물도 웃음도 있는 것이 인생아니냐 말이라도 해주듯.



  영화 밖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민족이란 낡고 촌스러운 개념으로 치부해왔다. 어린 시절 세뇌 당하다시피 교육받은 '단일민족'이란 허무맹랑한 신화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를 우리의 장점이라 배웠던 것과 함께 헛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기억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민족의 혼'을 지키겠다며 반 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온갖 차별을 버텨온 그들의 삶을 머리는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분단 조국의 현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선'이란 사라진 국가를 자신의 국적이라 표기하는 그들의 삶이 바보같단 생각이 들었다. 귀화한다고 욕 먹을 일도 아니고, 귀화하지 않는다고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반면에 가슴은 눈치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어대다 결국 안구의 습도를 높였다. 사실 민족이란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선택으로 인해 차별을 하는 사회는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재일동포의 차별 문제를 다루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필자의 시선은 우리 현실로 돌아왔다. 관용을 잊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모습들이 떠올랐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용하는 차별적 언어들. 특히 '반쪽바리'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말아야하는 단어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읽었던 재일동포 야구단 관련 칼럼이 생각났다.


  “일본에서 ‘조센진’이란 소릴 듣고 자란 아이들이었네. 그래도 모국이라 찾아온 아이들에게 그들은 ‘쪽바리’라 했네.” 득점기회가 오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일본으로 돌아가라”는 야유가 쏟아졌다. “어른들이야 참는다지만 아이들은 어땠겠나. 아이들은….”

([박동희의 야구탐사] ‘슬픈 전설’, 재일동포 야구단 [4]편)


 위의 칼럼은 시간 내서 꼭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영화에서도 이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국제 대회에서 만난 외국인과 대화중 자신이 한국인임을 밝히자 옆에있던 한국 선수가 "유 어 재패니즈, 아임 오리지널 코리안"이라고 해서 상처를 받았다는 이야기한다. 한 세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구나. 그러고 보면 대학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수시나 정시를 통해 들어오면 순혈, 편입시험을 치러 입학하거나 전과를 하면 잡종. 필자는 또래보다 4년 늦게 입학을 했는데, 나이와 학번을 들은 선배들에게 꼭 듣는 질문이 있다. "편입했니?" 그럴땐 참 역겹다. 그래도 문학에 꿈을 가졌던 새끼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수능시험을 치러 입학하길 잘했단 생각이 불쑥 드는 것을 보면 결국 나도 역겨운 새끼다.


  법이 만능이 아니란 것은 알지만 비하와 차별에 대한 엄격한 사법적 차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치한다면 사회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험한 미군은 차별에대해 아주 엄격했다. EO(Equal Opportunity)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성별·인종·종교 등 어떤 조건에 따른 차별이라도 신고를 할 수 있었고, 여기에 걸리면 제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중징계를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이 수차례 무산되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린 멀었구나 싶어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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