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엄동설한의 추위에 지상 70미터의 굴뚝에 올라간 사람이 있다.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이다. 그는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지난달 23일 내려오기까지 101일을 굴뚝에서 버텨냈다. 그는 굴뚝에서 내려온 뒤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지금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창근 실장과 전화인터뷰를 진행했다.


굴뚝에서 내려온 지 20여일 쯤 지났다 건강은 어떤가.

  이제 건강을 많이 회복했다. 처음엔 계속 어지럽고 몸이 무거웠다. 병원에서 치료 잘 받고, 지난주 금요일에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서 쉬다보니 많이 건강해졌다. 굴뚝 위에선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는데, 이제 조금 살 것 같다.


100여 일 만에 가족들과 만났다.

  그저 좋다. 굴뚝 위에서는 영상통화를 하는 중에도 그리웠다. 아들과 아내 손을 잡을 수 있게 돼서 감사하다. 가족들도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좋아한다. 하지만 아직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있다.


농성 중 어떤 생각을 했나.

  처음엔 ‘나의 약함’을 인정하게 됐다. 그동안 여길 못 올라와서 동료들이 죽었나 싶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나면서는 세상이 만만하더라. 세상의 허점, 모순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가 많이 났다. 80일을 넘기면서는 오히려 좀 차분해졌다.


농성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굴뚝에 올라갈 땐 한겨울이었다. 100일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봄이 왔다고는 하는데, 굴뚝 위는 여전히 춥다. 추위와의 싸움이 힘겨웠다. 그리고 바람이 많이 불면 굴뚝이 흔들려서 불안하고 괴로웠다.


굴뚝 위에 오른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오른쪽)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 출처 = 이창근 실장 페이스북


내려올 결심을 한 계기는.

  이유일 사장에서 최종식 사장으로 경영진이 바뀌게 됐다. 해고자들이 새 경영진과 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굴뚝을 지키는 것이 새로운 경영진에 부담을 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교섭 과정에서 혹여나 굴뚝농성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새 경영진이 선임되는 주주총회가 지난달 24일에 있었다. 그래서 23일 내려오게 됐다.

 

내려온 심경을 말해달라.

  다른 건 모르겠고, 쌍용차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만을 바란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 조만간 쌍용차 현장에 복귀할 생각이다.


내려올 때 신임 사장 믿고 내려온다고 했다. 그 믿음은 아직 유효한가.

  유효하다. 교섭의 기본은 상대에 대한 신뢰다. 상대에 대한 신뢰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를 신뢰하지 않고 교섭을 진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꾸 의심하면 자신만 괴로워질 뿐이다. 최종식 신임 사장을 비롯한 중역 그리고 사무관리직, 현장직 등 옛 동료들을 믿는다. 희망과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다만 교섭 진행내용을 보면 아쉬운 점이 있다. 26명의 희생자 문제를 포함해서 노사 협의가 형식적 측면만 부각되는 것 같다. 내용적 측면에서의 진전이 부족하다.


복직자 명단에서 스스로를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년이란 긴 투쟁의 시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이란 시간을 잃었다. 이 시간은 복직한다고 해서 보상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해고자라는 이름을 스스로 던져버리고 싶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쌍용차 해고자가 아닌 심리치유센터 ‘와락’ 기획팀장으로 살아가려고 했다. 제3자의 입장에서 쌍용차 문제에 도움이 될 땐 도움을 주고, 빠져야 할 땐 빠지려 했다.

  하지만 무위로 돌아갈 것 같다. 복직자 명단 삭제에 대한 전권은 지부장에게 있고, 아직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차지부 김득중 지부장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까지도 김 지부장에게 설득 전화가 왔다. 


좋은 결말 있기를 기도하겠다. 건강관리 잘하고 다시 굴뚝에 오르는 일이 없기를 바래본다.

  늘 관심을 가져주어서 고맙다. 힘이 돼준 많은 분들에게도 감사하단 말씀 꼭 드리고 싶다. 



+이 글은 위클리 서울 지면에 실은 본인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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